★해병일기/해병740기 김동훈

인간개조의 용광로-5

머린코341(mc341) 2019. 9. 24. 19:56

인간개조의 용광로-5


뜨거운 콜라


9월로 넘어가니 낮에는 여전히 뜨겁지만 조석으로는 시원한 바람이 인다.

기상하여 군가를 들으면서 쓰레기통을 들고 병사 주위를 돌며 청소를 한다.
 
이때 코끝을 맴돌던 알싸한 새벽녘의 냄새는 지금도 가만히 생각하면 여전히 느낄 수 있다.

고통의 연속이었지만 그 냄새의 기억만큼은 가끔은 그리울 때가 있다.


스무 살 성인으로서 그 많은 난관을 헤치고 이제 정점을 찍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사실에 대해 나 자신에게 부여하는 자긍심과 자부심. 이런 것들이 자양분이 되어 사십 대 중반으로 가파르게 치닫는 요즘에도 여전히 힘이 되어 준다.


이제 훈단 생활도 대미를 장식하는 몇 가지 훈련만 남았고 먹고 싶은 걸 실컷 먹을 수 있는 수료식도 얼마 남지 않았다.


적응할만 해도 여전히 배고프고 여전히 졸립다. 


훈단 입소 3주후엔 보급담배를 나눠줬는데. 3주 동안은 자연스레 금연이 되지만 앞서 말한바와 같이 담배를 짱박아두고 피고 있는 놈은 여전히 몰래 피고 있고 사단 울타리 밖으로 나가는 훈련이 있는 날은 길거리에 떨어진 꽁초를 주워다가 짱박아 둔 다음 몰래 피우곤 했다. 

 

물론 적발되면 교관의 하얀 장갑이 빨갛게 물들 만큼의 귓싸데기가 날아가지만 흡연의 욕구는 견디기 힘든 것 중에 하나다. 


난 중,고등학교 시절에 운동을 했기 때문에 담배를 대학 들어와서 본격적으로 피우기 시작해서인지 금연은 견딜만 했으나 지금도 처음 담배를 지급받고 단체로 필 때 핑~핑! 돌아가던 어지로움이 기억에 생생하다.


지급된 담배가 뭐냐고? 솔이었다. 백솔!


입에 단내가 나고 높은 곳에서의 공포스로운 유격훈련도 동기 전체가 별 다른 사고 없이 잘 치뤘고 이번엔 행군으로 천자봉을 정복한 다음 야전에서 1박을 하는 종합전술훈련이다.


훈단 때 번호가 6117번이었는데 앞쪽에 속한다. 신병3대대는 6중대 7중대로 이뤄지는데 항상 훈련을 나가면 6중 1소대가 선봉에 선다. 그 뒤를 2,3,5소대가 따라오고 7중대가 따라온다.


행군을 할때는 선두는 평균 속도로 행군을 해도 7중대 5소대 같은 경우는 거의 뜀박질로 따라와야 한다.


거리가 벌어지면 교관들의 개썅욕과 발길질이 난무하게 되는데 앞만 보고 걷는 것이 아닌 거의 경보 수준으로 따라 붙어야 하니 역시 군대는 줄을 잘서야 한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다.


천자봉 행군때는 개인당 콜라 2캔을 지급한다.


나름대로 탄산을 느껴보거라 하는 배려인데  더운 날씨에 상온에 보관된 뜨거운 콜라를 마시는 것은 물에 끓인 소주를 마시는 것과 같이 고통스럽다.


그래도 잠시나마 입안에 알싸한 탄산향이 들어가는 것으로 만족을 해야 하지만 캔 뚜껑을 타고 그 뜨거운 콜라가 목구멍으로 넘어갈 땐 이게 콜라인지 뭔지 구분이 가지 않을때가 많다.

 

천자봉은 해병대의 발상지 진해에 있는 것이 오리지널이나 훈단이 포항으로 넘어오면서 포항 인근의 산을 천자봉이라 명하고 해병훈련병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올라야 하는 의무적인 코스이다.


산세가 그리 힘들지는 않지만 여전히 뜨거운 높은 기온은 전투복 아래 위를 흠뻑 땀으로 젖게 만들게 충분했다.


앞서 교육을 받았던 737기 738기 선임들 중에서는 폭염에 의해 열사병으로 쓰러진 훈련병이 속출했고 한 두어명은 헬기로 응급 후송되었다는 얘기도 들었다.


몇 시간을 꾸준히 오른 다음 중대별 과 740기 전체 기념사진을 찍고 하산하여 지정된 장소로 이동해서 a텐트에서 하룻밤을 난다.


그때는 반합으로 직접 밥도 지어 먹고 캠핑 나온 것 처럼 나름 재미있다.


물집이 가득잡힌 발바닥은 고통스럽지만 교관의 눈을 피할 수 있는 a텐트 안에서의 생활은 호사스러웠다.


고체 연료로 지어 먹는 밥도 훈단 주계에서 먹는 밥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만큼 맛이 좋다. 반 밥을 해 먹고 모여서 담배하나 피우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나는 훈단 떄 "망치" 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의장대로 자대 배치를 받아 간 장정현이라는 동기놈이 지어 준 별명인데 허영만 선생의 만화에 나오는 망치와 내 모양세가 흡사하다 해서 망치라는 별명을 지어졌고 지금도 동기들 사이에서는 "망치" 라고 불리운다.

 

이름을 말하면 모르고 나 "망치" 야 하면 500명 가까운 동기들이 모두 기억을 해낸다.


망치라는 별명 이 동기들에게 각인된 것은 쉬는 시간 청소시간 재미로 교관(소대장) 흉내를 내다가 우연히 지나가던 교관이 그 흉내를 보았고 뒤지게 맞고 난 다음 오히려 쉬는 시간에 불려 나와서 교관 흉내를 내야 했다.


그 당시 교관들은 각각 나름대로의 특징이 있다.


그 특징만 유심히 파악하면 쉽게 할 수 있는 것이라서 뭐 별난 재주는 아니지만 교관도 나의 모습을 보고 소리죽여 킥킥 웃었고 동기들으 짧은 시간이나마 크게 웃을 수 있어서 좋았으리라.


빨간명찰


해병대의 고유 전통. 붉은 바탕에 노란 색으로 이름을 적은 명찰!  해병대원의 피와 땀을 상징하는 자랑스러운 해병대의 전통


멀리서봐도 그 빨간 명찰은 유독 돋보이는 터라 일부 해병대에 막연한 반감을 가지고 있는 "해병대 기피병" 에 걸린 댓글러 들의 표적이 되는 명찰!


우린 이 명찰을 받기 위해 5주간의 피와 땀을 흘렸다. 중대 대표로 키가 겁나 큰 놈들이 대표로 나가 빨간명찰수여식을 하고 교육생 전원에게 빨간명찰을 나눠 준다. 


훈단 교육생은 오바로크를 칠 수 있는 장소가 없기 때문에 손수 바느질로 한땀 한땀 꿔매야 하는데 바느질을 20년 동안 한번도 안해봤으니 당연히 할 수가 없다.


"신병 제 740기"
"악!"
"목소리 봐라 이거.. 이 개쉐히들 이제 수료 얼마 남지 않았다고 목소리마저 기합이 빠지나? 신병 제740기!"
"아~~악"
"지금부터 빨간 명찰 바느질 하는 방법을 알려주겠어. 바느질은 들어간 곳과 나온 곳이 같아야 한다 알았어?"
"악"
"전투복 안에서 부터 바늘을 밀어 올리고 전투복 바깥에서 밀어 올렸던 곳으로 다시 바늘을 밀어 넣는 방법이야 알았어?"
"악"
"실시"


이에 처음에는 알려준 데로 재대로 되지 않다가 옆에서 삯바느질 하나 온 놈 마냥 기게 막히게 잘 하는 동기놈이 있어 유심히 보고 문제없이 바느질로 빨간 명찰을 꿰매었다.


멋졌다! 훈련병 신분은 노란바탕에 검은색으로 이름 대신 번호로 5주가량을 생활하다 내 이름 석자의 빨간 명찰을 내 손으로 꿰매고 나니 여간 뿌듯한 것이 아니었다.


나 스스로를 칭잔하고 격려하고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이 보다도 더한 훈련과 실무생활도 문제 없이 너끈히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용솟음 쳤다.


수료식 준비가 들어간다. 사열과 행사중의 주의사항에 대해 교육을 받았는데 제일 강조하는게 국민의례 중 국기에 대한 경례이다.

이 때는 "필승" 이라는 구호를 붙이면 안된다. 


훈단장 (원스타) 과 여러 귀빈이 참석하는 자리에서 한명이 필승 이라고 악기있게 소리 쳤다가는 수료식 후에 개박살이 날 수 있다는 점을 교관들은 상기 시키고 또 상기시켰다.


경례 라는 구호가 나오면 무의식적으로 구호가 나갈 수 있기 때문에 국기에 대한 경례 구령이 나올 때 쯤엔 작게 "쉬~~~~~" 하고 소리를 내서 구호를 붙이면 안된다는 서로간의 약속 사인을 준다. 


다행히 우리 수료식때는 이런 사례가  없이 무사히 통화할 수 있었다.


수료식에 참석하게 되면 훈련중 우수 교육생에 대한 포상 등 이런 것들을 하는데 그 중에 훈련병 전체를 지휘하는 대대장 훈련병은 단연 돋보이게 된다.


그 당시 734기 선임인가 736기 선임인가가 동기들과 함께 수료하지 못하고 (질병 아니면 부상) 우리와 같이 교육을 받았는데 기수가 높으니 당연 대대장 훈련병을 했는데 이 양반의 목소리가 항상 문제였다.


모기 소리에다 소리를 꽥 지르면 터져 나가 버리는........


구령 훈련을 하다 교관이 마음에 계속 들지 않았는지 계속 개썅욕을 날린다.


그러다가 고참 교관이 나를 부르더니 구렁을 넣어 보라고 한다. 


나는 최대로 근엄하고 절도있고 악기 든 못소리로


"대대 차아렷!!"


하고 구령을 넣으니 아주 흡족해 했다.


"이 새끼 봐라... 소리가 좋아...어...소리 좋아... 열중쉬어 도 해봐"
"악! 대대 열주~~~~~~중 쉬엇!!"
"아 이 새끼 소리 좋아..."


그렇게 내 목소리에 대해 극찬을 하더니 고참 교관에게 뭐라고 얘기를 한다.


저 새끼 목소리 좋니 뭐니 어쨌니....  그러다가 다시 다가오더니


"야 너는 목소리가 참 좋은데 키가 작아서 안되겠다. 자리로 돌아가"


이런 C8 키 작은게 처음으로 서러웠었다. 아부지앞에 자랑스런 아들이 해병740기 전체를 지휘하는 늠름한 지휘자의 모습을 보여 줄 수도 있었는데... 하니 섭섭한 마음이 있었지만 항상 아부지께서 깨알같이 당부 하신 말씀이 불연듯 떠 올랐다.


1.탈영하면 절대 집으로 오지 마라
2.군대서는 모나지도 말고 튀지도 마라
3.군대서는 1등과 골찌는 고달프다 항상 중간만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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