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일기/해병740기 김동훈

인간개조의 용광로-7

머린코341(mc341) 2019. 9. 24. 19:59

인간개조의 용광로-7


이별


생판 처음보는 놈들과 6주동안 동거동락을 하면서 정이 듬뿍 들었다.


수료식을 마치고 본인에게 확정된 병과에 따라 위탁교육을 가거나 실무로 바로 배치받게 된다.  그렇게 악질로 불리던 교관들도 이병 계급장을 단 우리에게 전과 같이 가혹하게 대하지는 않았다. 훨씬 더 부드러워 진다.


포항,김포,백령,연평도,사령부 등... 각지로 동기들이 흩어져서 고향과도 같은 훈단을 떠나게 되는데 먼저 떠나는 동기들에게 항상 마중을 해주곤 했다.


더블백을 매고 동기들을 배웅할때면 눈물바다다.까까머리 해병신병이 뭐가 그리 서러워서 그렇게 우는지...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어 앞서 떠나가는 동기를 붙잡고 엉엉 운다. 그렇게 몇번의 동기와의 이별의 정을 나누고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후반기 교육을 위해 진해로 이동을 하였는데 내 옆에서 생활했던 장정현이라는 동기놈이 버스 타는 곳 까지 따라오며 운다.


"망치야..엉엉엉~~~ 잘가라 망치야.....몸조심 하고 군생활 잘하고....엉~~엉~~엉"


덩치는 산 만한 놈이 내 손을 잡고 그리 우니 나도 눈물이 안 날수가 있나. 둘이 부등켜 안고 울다가 웃다가를 반복하며 훈련단을 빠져 나왔고 대략 30명을 태운 군용버스는 포항터미널에 우릴 내려 놓고 간다.


교관 한명이 인솔자가 되어 진해까지 함께 가는데 인원만 이상없으면 이동중에 별 개입을 하지 않는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교관 눈치를 보지만 교관은 편하게 하라고 한다.


동기놈들이랑 진해까지 가면서 음료수도 마시고 이빨도 까면서 버스를 타고 진해로 가게 된다.

후반기 교육의 시작


기억으로는 늦은 오후에 진해 해군 부대에 도착했는데 여태까지 생활하던 병사와는 차원이 다른 병사다.


내무실도 깨끗하고 화장실 상태도 아주 좋다. 그 중에서도 가장 놀라고 마음에 든건 주계였는데 식탁마다 고추장과 참기름이 항상 비치되어 있었다. 훈단때는 구경도 못 해본 것이다.


갓지은 밥에 고추장으로 비비고 참기름까지 몇 방울 떨어뜨려 먹으면 그렇게 맛이 좋을 수가 없었다.


누구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껏 먹어도 된다.  식사시간엔 더 이상 교관에게 두들겨 맞지 않고 편하게 먹을 수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훈병 신분에서 이병을 달기만 해도 신분 상승이 된 다는 것을 느꼈다.


동기 중에는 지금도 가끔 연락을 하고 지내는 박상진 이라는 놈이 있는데  근데 이 놈은 화장실에 가면 변기위를 올라타서 쪼그린자세로 볼일을 본다 앉아서 볼일을 보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모양이다.  (하긴 나도 처음에 정말 익숙하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게 볼일을 보는지 물어봐야겠다.


진해는 거의 해군들의 천국이라 봐야 한다. 어딜가나 빵모자를 쓴 해군들이 넘쳐난다. 그리고 우리가 생활하던 가까운 곳에 SSU 거처가 있었던 것 같은데 직업군인이라 그런지 머리도 길고 죄다 건들건들 거린다.


그때는 SSU가 뭔지 정확히 몰랐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나름 대단한 집단이었다.


위병 근무를 해군병과 우리가 돌아가면서 근무를 했는데 어느날 근무를 마치고 온 동기놈이 사색이 되어 호들갑을 떤다.


새벽녁에 위병소 앞에서 근무를 서는데 갑자기 연병장쪽에 뭔가가 있는 것 같아서 희미한 가로등에 의지해 자세히 쳐다보니 군복을 입은 사람이 지나길래 소리쳐서 불렀다고 한다.


근무 지침중에 취짐시간간에 이동은 금하고 있기 때문에 새벽에 연병장을 가로지르는 병력은 없어야 정상이다.


그레서 계속 정지! 정지! 하고 소리를 쳐도 지시를 듣지 않고 이동을 하길래 좀 더 가까이서 확인하기 위해 따라가 보았더니 글쎄.. 머리는 없고 몸뚱아리만 둥둥 연병장을 떠 다니는 것을 보고 기겁을 하여 위병소 내부에 있던 동기에게 본인이 본 것을 전했고 그 내용을 상황실에 알렸는데 "영내 거동수상자 발견" 이라고 무전을 쳐버리니 당직 사관이 사실 파악을 위해 위병소로 내려왔고 바들바들 떠는 동기는 본인이 본것을 그대로 알렸는데 당직사관은 어이가 없다는 듯.


"이 놈의 새끼들 기합 빠져가지고.. 우측에 보이는 축구 골대 돌아서 선착순 한명!" 


이라는 기합만 주고 돌아가버렸다고 한다.


본인은 분명히 머리가 없는 사람이 허공에 둥둥 떠서 연병장을 배회 하는 걸 봤다는데.. 뭐.. 믿거나 말거나다.


그리고 한번은 동기놈과 새벽에 화장실을 같이 가서 볼일을 보고 내무실로 돌아가기 위해 복도로 나왔는데 갑자기 동기놈이 놀란 표정으로 나를 보더니


"야 13내무실에 누가 있나?"
"빈 내무실 아니가 왜?"
"씨바 근데 왜 불이 켜져 있노?"


그 말에 둘이서 한참 얼굴을 쳐다보다 냅다 내무실로 줄행랑 친 기억도 있다.


군대서는 기본적으로 잠이 모자라서 그런지 헛것을 참 많이 본다. 나중에 실무에 갔을 떄도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이 많았지만 전부다 기합빠진 쫄병의 헛것 으로 치부되고 말았지만 그 당시 본인이 느꼈던 공포는 극에 달하는 것이었다.
 
지금 보면 군대 단골 메뉴인 403초소의 괴담 같은 것이겠지만 그 당시에는 선임들의 얘기가 얼마나 사실적으로 들리고 흡입력이 있던지 사람의 혼을 쏙 빼놓는 귀신목격담은 쫄병이 이겨내야 하는 하나의 과정이라 하겠다.


후반기 교육은 딱히 기억이 없다. 그냥 천국같은 시간을 보냈을 뿐. 교육이라고 해봤자 뭐 대단한 것도 아니고 그저 동기들하고 동일한 교육을 받는 해군 애들 하고 해병대 하사관들 하고 같이 어울리면서 그냥 시간때우기만 전념하면 된다.


진해에서의 교육도 이제 막바지에 달하니 1박2일 외박이라는 천금같은 기회가 주어졌다. 우리는 그 소식을 듣고도 믿기가 어려웠을 만큼 너무 좋았다.


입대한지 몇 개월만에 드디어 외박을 받아 고향에 가고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얼마나 기쁘던지.


외박 날짜가 가까워 오니 진해에 있는 마크사와 어찌 연락이 닿아 해병대의 자세인 위장복을 맞출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외박때 자세나게 입고 고향으로 향한다는 것인데 그 당시 돈으로 3만원인가 4만원을 주고 위장복을 맞추고 외박 당일 마크사에 들려서 받아갈 수 있게끔 되어 있었다.


진해에서 고향인 경북영양까지는 머나먼 길이지만 천금같은 하루가 어딘가... 외박 날을 손에 꼽고 꼽을 후에 드디어 당일날이 되어 정복으로 환복하고 신고를 마친후 해군 부대를 나오게 되었다.


마크사에서 바로 위장복을 찾고 대구로 가는 버스를 타고 이동하던 중에 버스 맨 뒷좌석에서 우리는 몽땅 위장복으로 환복을 했다.


링까지 차니 걸을 때 마다 링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지금은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때는 사람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는 것이 좋아서인지 동기들 몇놈과 오와열을 맞춰 ㅎㅎ 고속버스 터미널 앞을 걸어가니 사람들이 길을 터준다.


하기야 해병 이병의 악에 찬 근성과 무적이 될 것 같은 해병위장복과 걸을 떄 마다 링에서 굴러 다니는 구슬의 촥촥~~ 거리는 소리는 일반인으로 하여금 위압감을 느끼기 충분한 일이었다.


지나가다 육군 애들을 만나면 동기놈이 "씨**아 눈 깔아" 하고 소리치면 만나는 놈 들 모두 황급하게 고개를 숙이곤 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웃기고 재미있던지.. 하사관과 장교도 예외 없었다.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을 지나칠때는 "길비켜~~" 하고 소리를 지르면 거짓말 처럼 길이 확~ 뚫렸다.


하지만 민간인들한텐 절대로 욕설이나 해코지를 하지 않았다.


사진출처 : 덕후호랭이의블로그


고향에 도착하니 벌써 오후다.


집에가서 부모님과 재회를 한 뒤 저녁을 먹고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는 장소로 갔다.  무슨 레스토랑이었는데 거기서 술과 맛있는 것을 실컷 먹은 뒤 링 소리 촥촥~~ 울리면서 동네를 활보하니 아니나 다를까 모든 이의 시선을 한몸에 받는다.


무섭다며 피해가는 사람도 있었다. 아무리 술에 취해도 절대 민간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해병대는 국민의 군대. 국민에게 신뢰받는 군대! 아닌가. 남의 영업장에서 술에 취해 개박살을 내고 그런것은 국민에게 신뢰를 받는 해병대의 모습은 아니다.


하지만 타군에게는 ㅎㅎ 썅소리 나는 해병이었다. 초저녁부터 얼큰하게 술이 취해 친구들과 걸어가고 있는데 한무리의 방위들이 근무를 마치고 퇴근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취기가 올라서인지.. 친구들이 옆에 있어서인지 몰라도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걸어오는 방위 새끼들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ㅎㅎ


"야 씨**들아"


하고 일갈을 날리니 방위병 무리들이 무슨 영문인지 쭈빗쭈빗 거린다.


"야 씨**들아 손 안빼. 군인이 입소보행이 되냐? 이 똥방위 새끼들아"


하고 소리를 지르니 한 놈이 인상을 쓰면서 뭔가 말하려 하다가 같은 일행들 한테 제지를 당한다. 내 친구들도 나와 같이 운동을 한 놈들이라 덩치가 산만하다.


"야.. 눈까리 깔아!!"


하고 소리를 지르니 모두들 한꺼번에 일제히 땅을 보고 있었다.


쪽수도는 우리가 딸리지만 전부 운동한 놈들이고 위장복에 상병 계급장을 단 해병대에게 감히 대적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보다. ㅎㅎ


지금 생각하면 분명히 우리 보다 나이가 많았던 것 같은데 그때는 뭐 속칭 "앗싸! 해병대" 아니겠는가.


그때 그 방위들하고 한판이라도 했으면 아마도 헌병대에 끌려가지 않았겠는가.. 다시 생각해 보면 분명히 치기 어린 행동이고 부끄러운 행동이지만 그땐 그랬다.


왜? 타군에는 강한 해병대니까!


집에 들어와서 누우니 지금 내가 누운 곳이 천국같았지만 내일 아침 일찍 다시 진해로 복귀해야 하는 부담감에 취기가 올랐음에도 잠이 오지 않았다.   


그렇게 꿈만 같았던 첫 외박의 밤은 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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