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창설기-'나가자 해병대'가의 제정비화
1. 우리들은 대한의 바다의 용사
충무공 순국정신 가슴에 안고
태극기 휘날리며 국토 통일에
힘차게 진군하는 단군의 자손
<후 렴>
나가자 서북으로 푸른 바다로
조국건설 위하여 대한 해병대
2. 창파를 헤치며 무쌍의 청룡
험산을 달리는 무적의 맹호
바람아 불면 불라 노도도 친다
천지를 진동하는 대한 해병혼
3. 백두산 봉우리 폭풍이 불고
태평양 검은 구름 굽이치어도
우리의 젊은 피가 약동하는 곳
원한의 38선도 무너지리라
창설기에 제정된 이 '나가자 해병대'의 군가는 다음과 같은 내력을 지니고 있다. 즉 1기 신병교육대로 편성된 2중대 2소대에는 입대 전 장미악극단에서 독립운동에 관한 무대극본도 썻고, 모 영화사의 조감독으로서도 활약을 한 적이 있는 신영철(1924년생)이란 특별한 소대원이 있었는데, 그의 그러한 이력과 재능을 알게 된 강복구 중사가 우리 해병대에도 군가가 있어야 되겠다는 생각에서 가사를 만들어 볼 것을 제의한 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어 마침내 시작(試作)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었다.
그리하여 2절로 된 그 가사가 만들어지자 강중사는 그것을 지휘계통을 통해 사령부에 제출하게 됨으로써 군가의 필요성를 느끼게 된 사령부에서는 참모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군가제정위원회를 구성하여 대내외에 가사를 공모하는 절차를 거쳐 결국 가장 우수한 작품으로 선정된 그 신영철씨의 가사를 당선작으로 선정하되 심의 과정에서 다소의 수정작업을 거치는 한편 3절을 추가로 만들어 최종적인 확정을 했다.
그리고 작사가 완성되자 사령부에서는 신영철씨의 건의로 장미악극단의 단장으로 있다가 그 악극단이 해체되어 수도 경찰청 악대에서 활약하고 있던 김형래(영화배우 김진규씨의 삼촌)씨에게 의뢰하여 작곡을 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일설에는 그 군가를 보급할 때 군가지도를 한 이병걸씨(상사)를 작곡한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으나 그러한 주장은 군가지도를 해 준 사람을 작곡자로 착각한 때문이지 근거가 있는 주장은 못된다.
왜냐하면 군가제정에 관여했던 사람들 가운데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이 전혀 없고, 그 당시 해군에는 동경음악학교 출신인 남궁요열씨(당시 해군군악학교장)와 통제부군악대장으로 있던 한상기씨 등 쟁쟁한 음악가들이 있었는데, 굳이 작곡을 의뢰할 사람을 군 내부에 찾을 형편이었더라면 그러한 음악가들에게 의뢰를 했지 하필이면 통제부군악대에 있다가 군악대를 그만 두고 해병대로 전입한 이병걸 하사관에게 그런 주문을 했겠는다 하는 생각도 해 봐야 할 것이다.
곡명이 시사하듯 씩씩하게 나아가는 전진적인 기상이 넘쳐 흐르는 이 군가는 제1절에는 충무공의 순국정신을 계승하여 국토 통일에 힘차게 진군 할 것을 다짐하고 2절에서는 청룡과 맹호라는 두 낱말로써 바다와 육지에서 싸우는 해병대의 주임무와 투혼, 그리고 3절에서는 설사 어떤 일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해병의 끓는 피로 통일에 앞장서고야 말겠다는 통일에 대한 굳건한 의지를 강조했으며, 후렴에서는 전진하는 그 키의 방향과 목적의식을 천명했다.
비교적 쉬운 어구에다 각 절의 내용이 단조롭고 알기 쉬운 문맥으로 되 있을 뿐 아니라 또한 가사에 알맞게 유연하고 씩씩한 행진곡으로 작곡되어 있어 어른이나 아이들 할 것 없이 쉽게 익혀 부를 수 있는 친근감을 느끼게 해 주는 군가이다. 이 군가가 제정되자 해병대에서는 조석 별과 시간을 이용해서 연습을 했고, 통제부에서 운용하고 있던 진해 읍내의 해양극장에서도 연습을 했는데 그 때까지 주로 해군 군가만 불러왔던 장병들은 일종의 소유의식 때문이었는지 더 한층 열을 올려 제창을 했다.
그 때 군가를 지도했던 사람은 통제부 군악대에 몸담고 있다가 해병대로 전입해 있던 이병걸 하사관이었는데 그가 지도하는 바에 따라 기간장병들과 훈련병들은 왼손을 왼쪽 허리에 갖다 대고 주먹 쥔 오른 팔을 좌우로 흔들면서 지도요원의 선창에 따라 제창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중대별 소대별로 이중창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특히 이중창을 할 때는 어느 쪽이 더 힘차게 부르는지 경쟁을 시켰기 때문에 인후염에 걸려 음식을 먹지 못하는 파열현상이 빚어지기도 했지만 이 군가의 제정으로 창설기의 병영에는 사기의 분수가 쉴새없이 용솟음 쳤다. 그리고 그 때 제창했던 그 군가는 뒤에 실감나는 상황이 연출되겠지만 6.25의 격전장과 월남의 하늘 아래에서도 씩씩하게 메아리쳤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대선배님의 저서 '海兵隊의 傳統과 秘話' 중에서
'★해병대 역사 > 해병대 전통·비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해병대 창설기-장개석 총통이 남긴 말 (0) | 2010.11.22 |
---|---|
해병대 창설기-가마전 분패스토리 (0) | 2010.09.28 |
해병대 창설기-창설기의 기합 (0) | 2010.09.28 |
해병대 창설기-강군비화 (0) | 2010.09.28 |
해병대 창설기-전통정신의 발아와 착근 (0) | 2010.09.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