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가 영구히 존속하려면 제4군이 되려는 꿈은 버려야 한다
해병대출신 해사1기 김윤근장군 해병대독립 반대글
김윤근(金潤根):만주 육군군관학교 제6기생(45년)
광복 후:해사졸, 미국 해병대학졸, 연세대 경상대학원졸, 해병사 군수국장, 해병1상륙사 참모장, 수도방위 사령관, 5·16쿠데타 주역으로 국가재건 최고회의 교통체신 위원장·부정축재자 처리위원·헌법(개정)심의위원회 위원, 해병제1여단장, 중장예편, 호비사장, 5·16민족상 이사, 향군회 부회장, 동화수산 회장, 서울컴퓨터센터 감사, 수개공 사장, 대서양개발 사장, 서해구(誓海俱) 총재, 이인표(李寅杓) 사회과학도서관 재단 이사장
상:1등근무공로훈장, 중국운마훈장, 미은성훈장2개, 충무·을지무공훈장
저서:비화수기집 해병대와 5·16
해병대독립 반대합니다.
해사 1기 김윤근님의 홈페이지에서 발췌
1956-57년에 내가 해병대사령부 군수국장으로 근무하고 있을 때 이런 일이 있었다. 1953년7월 휴전이 성립되자 이승만대통령은 휴전협정을 반대해 왔으나 휴전이 성립되자 휴전협정을 승인하는 조건으로 한국군의 증강을 요구해 20개 육군 현역사단과 10개 육군예비사단, 그리고 1개 해병사단의 병기장비의 공급의 약속과 60만 병력의 유지를 위한 군사 원조의 승인을 받아 냈다.
해병대의 확장기
휴전 후 해병대는 제1해병전투단을 해병사단으로 확장하기 시작해서 1956년까지 장비가 도입되는 시기에 맞추어 새 부대를 하나씩 편성해 나갔다. 해병대 병력은 사단과 도서부대 그리고 이것을 지원하는 교육단, 보급단으로 구성되었고 총병럭은 약 3만으로 확대되었다.
한편 미국은 공세적 무기인 군함과 전투기를 원조하지 않는다는 군원정책에 따라 해군과 공군은 군함과 전투기를 극히 제한적으로 공급받았다. 따라서 해군의 총병력은 약 1만5천에 머물게 되어 해병대 병력이 해군 병력보다 많아지는 형편이 되었다.
당시 우리 국군의 장비와 병기 탄약은 군사원조로 공급받고 있었음으로 육해공군과 해병대의 예산은 주로 봉급, 급식, 피복 그리고 시설의 신축 및 보수유지를 위한 비용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따라서 인원이 많은 해병대 예산이 해군 예산보다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해군 예산과 내용이 다른 해병대 예산을 해군본부 경리국은 정부와 국회의 심의과정에서 효과적으로 설명하지 못해 해병대는 필요한 예산을 획득하는데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그런 사정을 잘 파악하고 게시던 손월일 해군참모총장이 국방부장관에 임명되시자 곧 국방부 경리국에 지시해서 해병대 예산을 해군 예산에서 분리독립시켜 주라고 지시하셨다. 그 지시로 1957연도 예산 편성부터 해병대는 예산을 독자적으로 편성하계 되었고,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모든 것을 예산서에 반영시켰다. 그 결과 해병대 예산은 타군에 비해 방만한 것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해병대 예산이 해군 예산의 일부로 포함되어 있을 때는 해병대 예산만을 뽑아 내서 육군 예산과 비교해 보기가 어려워 해병대 예산이 육군에 비해 적다 많다 시비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해군예산에서 독립해 편성된 해병대 예산안은 육군이 자군의 예산과 비교해 보기 쉬웠다. 육군예산 총액을 30(사단 수)으로 쪼갠 금액과 해병대 예산을 비교해 "해병대 1개 사단을 유지하는 비용으로 육군 2개 사단을 유지할 수 있다, 상륙작전은 육군도 할 수 있는데 무엇 때문에 비용이 많이 드는 해병대를 가져야 하느냐" 라고 기회 있을 때마다 비방했다.
해병사단은 상륙작전에 필요한 특수부대와 특수장비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인원도 육군의 소총 분대는 9명인데 비해 해병대의 소총분대는 13명이어서 병력이 많아져 육군 사단보다 유지비가 더 많이 드는 것은 피할 수 없다고 주장했지만, 그 차이를 모르는 국회의원이나 예사당국에는 육군의 비방이 잘 먹혀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육군의 비방을 들으신 손원일 국방부장관은 곧 해병대사령관에게 예산안을 축소조정 하라고 지시하는 한편 해군에 명해서 미 해군처럼 의무, 법무, 군종, 정훈 등의 병과는 해군에서 지원하게 해서 해병대 예산을 외형적으로 축소하는 일에 협력케 해 육군의 비방의 화살을 피하게 해 주셨다. 육군은 그 후에도 기회 있을 때마다 해병대를 비방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다 아는 사실이다.
뼈아픈 경험
육군의 비방이 해병대에 결정타를 안긴 것이 1973년10월 해병대 사령부가 해체 당한 일이다. 당시 청와대 직속으로 특별검열단이라는 국군조직의 개편문제를 연구하는 기구가 있었다. 특별검열단은 해병대 사령부의 해체안을 연구건의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1개 사단의 전투병력을 가진 해병대가 쓰는 예산은 육군에 비해 너무 많다고 지적했고, 장관급 장교의 비율도 육군에 비해 월등히 많다고 꼬집었다. 또한 1개 사단과 약간의 도서방어 부대를 지휘하는 사령부의 기구가 지나치게 방대하다고 지적했다.
끝으로 해병대사령관은 육군의 군단규모 보다 작은 부대를 지휘하니 3성 장군이면 충분하다고 꼬집었다. 당시 해병대는 장관급 장교의 비율이 육군에 비해 많았든 것은 사실이었다. 특검단은 이런 사실들을 모아 과대하게 포장해서 대통령에게 건의했고, 그 결과 해병대 사령부는 해체당하게 되고 해병대 사령부의 기능은 해군본부에 흡수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해병대가 독립할 수 없는 이유 세 가지
해병대는 상륙작전을 주임무로 하는 부대다. 그러나 상륙 작전이 늘 있는 것은 아니다. 상륙작전이 없을 때에는 육군과 함께 육상작전을 담당해 왔기 때문에 육군 뿐 아니라 해병대 장병 자신도 입으로는 상륙작전부대라 자부하면서도 육상작전부대로 잘못 인식하게 되었다. 또한 따로 살림하다 본가에 들어가 살림하게 되었으니 모든 것이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한때 해병대가 해군에서 독립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해병대가 해군에서 독립해서는 안 되는 이유 세 가지를 들어보겠다.
첫째 이유
상륙작전은 바다에서 육지로 공격해 올라가 적의 해안지역을 점령해서 해안두보를 구축하고 내륙으로 진격해 들어가는 근거지를 마련하는 작전이다. 해군의 수송선과 해군의 상륙 주정, 특히 해군의 함포사격지원 없이는 상륙작전은 성공할 수 없다. 따라서 해병대가 상륙작전을 주임무로 하는 부대로 남으려면 해군의 일부로 남아있어야 한다.
만일 해병대가 해군에서 독립되면 독립한 해병대 상륙작전 부대는 육군의 상륙작전 부대가 받는 정도이상의 해군의 작전지원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해군의 긴밀한 지원 없이 상륙작전은 성공할 수 없다, 성공해도 피해가 커진다. 해병대가 상륙작전을 전담하는 특수부대로 남으려면 미우나 고우나 해군의 일부로 남아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해군도 해병대의 상륙작전을 지원하기 위해 상륙주정과 상륙작정용 함정을 연구 개발하고, 상륙준비 사격과 상륙중의 부대를 위한 함포지원의 기술을 연구 개발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중 미육군이 감행한 노르만디 상륙작전에서 미해군의 지원을 받았지만 상륙부대가 해안에서 내륙으로 진입하는 단계에서 함포지원 사격과 전투기에 의한 근접항공 지원을 태평양전선의 여러 상륙작전에서 미 해병대가 받은 것과 같은 긴밀한 지원을 받지 못해 인명의 손상이 엄청나게 컸다는 사실을 간과 해서는 안 된다.
두 번째 이유
해병대가 해군에서 독립한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육해공군에 이어 제4군이 된다는 말이다. 해병대 장병은 누구나 해병대를 사랑하는 나머지 모든 국민이 무조건 해병대를 사랑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이미 언급했지만 육군에게는 해병대가 매우 아니꼬운 존재이다. 그래서 기회만 있으면 해병대를 비방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만일 해병대가 해군에서 분리 독립해 제4군이 되면 육군은 즉각 예산 절약을 이유로 들어 육군에 흡수합병을 추진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구체적 방법으로 과거에도 시도한 바 있지만 합참예하에 전략군 사령부를 신설해서 공수특전단과 해병대를 통합 지휘케 하자고 할 것이다. 그럴때 해병대는 가만히 보고만 있느냐고 반박할지 모르나 제한된 국방비예산을 4개 군이 서로 더 많이 차지하려고 시열한 경쟁을 벌리는 과정에서 예산 절감을 위해 제4군이 된 해병대를 육군에 편입하자는 주장은 정부나 국회에서 쉽게 먹혀들어 갈 가능성이 크다.
세 번째 이유
현재와 같이 남북이 대치해 있는 상황에서는 해병대의 존재 자체가 북한에게 큰 위협이 되기 때문에 해병대의 존속을 반대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남북통일이 이뤄 진 후에는 가상적을 누구로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상륙작전의 전략적 가치가 현재보다 현저히 감소될 것임으로 제4군으로 독립한 해병대는 존립을 인정받기 어렵게 될 것이다.
해병대가 해군의 일부로 남아 있을 경우 통일 후 감군이 있어도 육해공군과 더불어 병력의 감축은 있어도 부대가 없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제4군이 되었을 경우 병력의 감축 뿐 아니라 부대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아야 한다.
해병대가 영구히 존속하려면 제4군이 되려는 꿈은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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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반대이유
해병대를 사랑하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법령을 4군체제로하고 병력을 5만명으로 증원하고 해병대사관학교까지 만들어 달라는건 너무 비현실적이고 무리한 요구 아닌가요?
1. 육군이라는 지상군이 있다.
해병대가 여러분들의 요구대로 (5만병력의 3개사단과 항공대) 분리독립이 된다면 그야말로 육군과의 차이가 없는 지상군이 되버리고, 해병대의 정체성이 더욱 흔들릴 것입니다. 지금도 해병2사단은 사실상 육군의 임무와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2. 정치적 이유로 해군과 통폐합 되었다?
윗글에서 보다시피 1957년 해병대 예산이 독립되면서 해병대만의 체제를 구축하면서 가장 먼저 한일이 뭡니까? 5.16쿠데타 협력해서 정치개입한 후에 권력을 손에 쥐지 않았습니까? 정치개입은 해병대가 먼저했습니다. 그 결과 군부독재시절 해병대의 지상군화라는 기형적인 성장을 거듭하며 해병대원들 스스로가 상륙군이라고 말하지만,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지상군으로 착각하게 되었습니다. 비정상적으로 커 버렸고 그 임무와 정체성이 애매한것을 해군으로의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간 것입니다. 그걸 가지고 정치가들의 논리에 의해서 해군과 통폐합 되었다고 말하는것은 개연성이 없는 억지주장일 뿐 입니다.
3. 해병대도 4성장군이 배출되었다?
4성장군이 언제 나왔습니까? 바로 5.16쿠데타 이후 그 협력의 대가로 해병출신 국방장관(김성은장관)이 배출되고, 김성은 국방장관 제임시절(1963년~1968년)인 1966년 7월 1일에 육군에 이어 4성장군이 배출됩니다. 이때까지 해군참모총장(1966년 9월에 4성 나옴), 공군참모총장(1969년 1월에 4성 나옴) 이 3성장군이었습니다. 3군체제의 국가에서 상륙군사령관이 해,공군참모총장보다 먼저 4성장군이 배출된 나라가 그 어디에 있습니까?
4. 미군은 4군체제다?
미국 또한 3군체제입니다. 국방부 아래로 육군성, 해군성, 공군성이 있고, 해군성 아래에 해군본부와 해병대사령부가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해병대는 제4군이라고 해도 될만큼 그 독립성이 강하며 예산편성 및 인사,작전권등이 독립되어 있습니다. 물론 미국의 해병대사령관이 4성장군이긴 하지만, 전쟁 발발시 각군 참모총장이 4성장군에서 5성 원수가 될때도 해병대 사령관은 4성장군에 머물러 있습니다. 하지만 합동참모본부의 각군 참모총장과 함께 배석하게 됩니다.
5. 해군예산의 8%~10%밖에 배정이 않된다?
해병대원들 LST타고 훈련나가보면 해군은 왜 이렇게 밥이 잘나오냐? 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해병대는 똥국에 삶은계란 먹는데 왜 해군 지들만 잘먹냐고 하고 예산타령을 늘어 놓습니다. 함상근무하면 밥 잘나옵니다. 하지만 도서지역 근무하는 해군들도 그런소리 합니다. ^^
2006년 해군예산의 13.5%가 배정되었습니다. 물론 해군에 통폐합된 후 해군측에서 해병대한테는 보급이나 대우면에서 소홀했던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통폐합되기전에는 어땠습니까? 해군이 굶고 있을때 병력이 2배나 많으며 예산또한 더 많이 쓰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꼭 해병대에 직접적으로 배당되는 예산만 해병예산입니까? 한예로 독도함 건조하는데만 8000억이 들었습니다. 거기에 실을 공기부양정 및 헬기 등등, 이게 해군예산이지만 어디 해군이 배몰용도로만 쓰이는게 아니지 않습니까? 해병대와의 상륙작적용이고 수송용이니 보이지 않는 해병예산이라고 봐도 됩니다. 또한 상륙작전에 관련된 모든 함정개발 및 연구 등등도 안보이는 해병예산이 되겠습니다.
6. 통폐합이후 해병대 다 죽었다?
해병대사령부가 해체될때 육군으로 흡수될뻔 한건 다 아실겁니다. 하지만 그 특성상 해군에 통합되고 해군 제2작전사령부가 됩니다. 하지만 그 사이 1977년 1월부터 개편된 6여단이 서해5도를 지키고 1981년에 2사단을 창설합니다. 사실상 해군내였기에 해병의 전통을 이어가고 지킬수가 있었습니다. 정말 육군으로 해병대가 넘어갔더라면 해병대사령부가 재창설되고 해병만의 전통과 문화를 이어 나가기는 어려웠을겁니다.
7. 봉사활동등 사회공헌 하는 바가 크다?
해병전우회분들 교통정리 해주시고 자율방범 및 기타 봉사활동하는거 보면 대단하고 보기 좋은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꼭 위장복을 입고 무리지어서, 해병대가 봉사활동 하고있다. 라는 식의 보여주기식이 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건 마치 기독교단체가 예수 믿으라며 무료급식하는 식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겁니다. 국내에서 봉사활동 및 사회공헌 하는 사람들이 해병전우회분들 보다 적겠습니까? 사복차림에 여러경로로 알게 모르게 공헌하시는 분들이 더 많겠죠.
8. 해병훈련단 수료식에 왠 해군기?
해병대가 해군소속의 육상전투부대인데 왜 해군기가 들어가는게 이상합니까? 오히려 늦은 감이 있습니다. 그걸 해군공정이라며 떠들며 전우회 찾아가서 항의하시는 분도 계시던데 정말 그건 아닙니다. 해군에서 해병대를 창설했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해병대 훈련단수료식에 해군기는 들어가야 당연합니다. 그리고 해병대 창설당시부터 있었던 국군조직법 제1조 ...... 해군에 해병대를 둔다. 라는 조항만 보더라도 해군통합이전의 해병대사령부가 독자적으로 운용을 할 당시에도 해군기가 들어갔어야 합니다. 지금의 군구조상으로도 해병대사령부는 해군본부 예하이니 해군기 들어가는것은 당연합니다.
9. -끝으로-
상승불패의 해병대가 4성장군과 함께 독자적사령부를 구성했던 그 시절은 군부 쿠데타에 의한 권력 나눠먹기의 시절이었습니다. 지금의 해병대가 주장하는 독립은 군부시절로 돌아가자는 거와 똑같습니다. 이미 해병대 2025계획의 일환으로 점차적으로 병력을 감축하며 해병항공단을 창설해서 해병대 공지기동화에 들어가려는 시점에서 무의미한 해병독립운동은 정말 어리석은 일입니다.
홀대받고 있다고 생각되는 여러 인사문제나 예산문제가 있다면 군내부에서 현명한 조율을 필요로 하는 일이지 그것을 핑계삼아 분리독립하겠다는 이유를 대는것은 억지논리입니다.
6.25와 월남파병등에서의 혁혁한 공을 남기며 세계최강의 해병대로 자리잡으면서 기형적으로 커진 해병대의 체계를 바로 잡고 21세기 신속대응군화로 변화하려는 해병대입니다. 옛날 큰소리치던 시절의 추억만을 생각해서 해병대 분리독립을 해 나가는 것은 불필요한 소모전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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