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의 멍에 - 16. 재출진(再出陳)
(11) 아이젠하워 원수(元帥)의 시찰(視察)
1952년 12월에 시행된 제34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이 된 아이젠하워 장군(공화당)은 당선이 되면 한국전의 명예로운 휴전을 모색하기 위해 한국전선을 시찰하겠다고 한 자신의 선거공약을 실천하기 위해 그해12월 2일 오후 8시경 극비리에 김포공항에 도착, 72시간 한국에 머무는 동안 두 차례에 걸친 전선시찰을 했는데, 3일간의 체한기간 중 서부전선의 미 해병사단본부를 방문했던 날짜는 12월 3일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날 아침 나는 오전 11시 45분까지 사단본부 상황실 앞에 도착하라는 지시를 받고 사단본부로 갔더니 이미 그곳에는 사단의 각 연대장과 사단본부의 참모장교들이 집합하여 출영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승용차와 지프차에 탄 귀빈 일행이 사단본부에 도착한 시각은 정오경이었고, 그를 수행했던 인사들은 미국 합참본부의장 부레드리 원수와 미극동군 총사령관 클라크 대장, 미 8군사령관 밴프리트 대장, 미 1군단장과 9군단장 등의 고위장성들이었다.
그날 상황실 앞에 도열한 지휘관 및 참모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눈 아이젠하워 원수는 인상깊은 방한모에다 짧은 코트와 방한화를 착용하고 있었고, 2차대전 후 신문이나 잡지에 실려 있던 사진을 통해서 느낄 수 있었던 그의 평화로운 동안(童顔) 속에는 친밀감을 느끼게 하는 미소가 어려 있었다.
상황실로 안내된 귀빈 일행은 브리핑을 청취한 다음 사단본부 장교식당에서 오찬을 함께 했는데, 오찬시간에도 사단장 폴락 소장은 군목으로 하여금 기도를 드리게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한편 철저한 보도관제로 전후의 동정에 관해서는 전혀 알 길이 없었지만 이한(離韓) 후에 전해들은 바에 따르면 그 다음날 오후 1시 그 귀빈일행은 이승만 대통령과 백선엽 육군참모총장 등과 함께 육군 수도사단을 시찰하여 시범훈련을 참관했고, 또 체한기간 중 아이젠하워 원수는 이승만 대통령과 3차에 걸친 회담을 가졌던 것으로 보도되고 있었다.
그리고 5일 밤 8시 아이젠하워 차기 대통령 당선자가 김포공항을 떠난직후 서울지구에는 6·25동란이 발발한 이래 최대 규모의 적 공군기(11대)의 내습이 있었는데, 그 적기들은 모두가 미공군 전투기에 의해 격추되거나 격파를 당하고 말았다.
참고로 그 당시의 휴전회담 진행상황을 잠깐 체크해 보면 그해 10월 8일 협상의 중요한 쟁점으로 부각되어 있던 포로들의 송환원칙(유엔군측은 자유송환을 주장하고 공산군측은 강제송환을 고수) 때문에 결렬이 된 후 회담은 공전을 거듭하고 있는 실정이었으나 결국 중단상태에 있어 그 휴전회담은 그 이듬해(1953년) 1월 20일에 취임한 아이젠하워 대통령 행정부의 출범과 3월 5일에 사망한 독재자 스탈린의 사망을 계기로 재개(4월 하순)되어 7월 27일 휴전협정이 조인, 발효되기에 이르렀으니 명예로운 휴전을 실현시키겠다고 공약을 했던 그 아이젠하워 장군의 선거공약은 제대로 실현이 된 셈이었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대선배님의 저서 '국방의 멍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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