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의 멍에 - 16. 재출진(再出陳)
(14) 상병포로(傷病捕虜)
1953년 5월 하순경이었다. 자유문교(自由門橋) 동쪽 약 500미터 떨어진 경의선(京義線) 철로변, 그러니까 전투단 CP가 위치하고 있는 곳으로부터 불과 150여미터 떨어진 지점에는 유엔군의 상병포로 임시수용소와 임시 플랫흠이 설치되어 그곳에서 판문점까지 유엔군측의 엠블런스가 번질나게 내왕하고 있었다.
서울에서 금촌(金村)역과 문산(汶山)역을 거쳐 그 지점까지 복구해 놓은 철도편으로 병원열차에 의해 수송되어 온 공산군측 상병포로들은 그 임시 플렛홈에서 앰블런스로 옮겨 실려 판문점으로 가서 공산군측에 넘겨주고, 판문점의 상병포로 교환소에서 인수한 유엔군 및 한국군의 상병포로들은 공산군측 상병포로들을 싣고 갔던 그 앰블런스를 이용해서 그 임시수용소로 운반되어 왔다가 다시 병원열차 편으로 임시 병원시설과 숙박시설 등이 마련되어 있는 약 4킬로 후방의 문산으로 이송되었다.
국제적십자 정신에 입각하여 체결된 상병포로 교환협정에 따라 휴전을 앞두고 최우선적으로 교환하게 되었던 상병포로의 교환은 4월 20일부터 5월 초까지 약 2주간에 걸쳐 이루어졌는데 그 기간 중 적십자사의 흰 천막들이 가설되어 있던 그 임시 플렛홈과 임시수용소에서는 밤낮없이 상병들의 신음소리와 비명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참고문헌에 따르면 그 기간 중 유엔군측에서 북으로 이송했던 공산군측 상병포로의 수는 6,670명(북괴군:5,540, 중공군:1,030명)으로 기록되어있는데, 10여일간 매일 같이 그 현장을 목격하고 있던 나는 그해 1월 20일에 취임한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의 취임과 3월 5일에 사망한 스탈린의 사망을 계기로 급진전이 되고 있던 휴전협상이 드디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대선배님의 저서 '국방의 멍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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