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의 멍에 - 17. 휴전후 해병교육단(海兵敎育團)
(11) 임흥순 위원장(任興淳 委員長)
내가 교육단장으로 있는 동안 교육단에는 앞에서도 언급한 바 있듯이 교육단의 명물로 등장이 된 사판실을 비롯해서 사격장과 신병들의 왕자형 식당과 대형목욕탕 등이 건립되어 교육단의 발전을 가져오게 했는데 그러한 시설물을 건립하는데 소요된 막대한 예산을 확보하는데 있어서는 그 당시 국회 국방위원장으로 있던 임흥순 의원의 도움이 켰었다.
인천상륙작전 직후인 1950년 9월 23일 내가 통영에서 부대를 이끌고 인천으로 갈 때 10여명의 국회의원들과 함께 장병들이 타고 가는 LST에 함께 타고 갔었고, 또 9·28 수토탈환작전이 끝난 뒤 우리 해병대가 북한강 지구로 진격할 때 그가 가기를 원했던 금곡(金谷)까지 안내해 준 적이 있던 임흥순 위원장은, 특히 인천에 도착한 후 금곡에 도착할 때까지 때로는 참호 속에 나와 함께 자는 등 일선지역에서 나와 온갖 고생을 하며 지낸 일들이 그토록 잊혀지지가 않고 고맙게 여겨졌던지 마치 보은의 정을 베풀기라도 하듯이 해병대에 대한 국방예산 배정을 비롯한 모든 면에 있어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해병대에서 요구하는 예산이라면 한 푼도 깎지 않고 전액을 다 배정해 주었기 때문에 특히 5~6만평이나 되는 덕산 사격장 건설부지를 매입할 때 농민들의 원성을 사지 않게 하기 위해 진해읍장과 덕산동의 동장과 의논해서 싯가의 배 이상을 주고 매입할 수 있었고, 그렇게 함으로써 토지를 판 농민들의 마음을 흐뭇하게 했다.
그 당시 교육단의 공사를 맡아 준 건설회사는 전쟁 때 진해로 피난 왔다가 휴전이 된 후에도 상경하지 못하고 있던 삼부토건(三扶土建)이었다.
그 삼부토건에서는 해병대의 공병감실(당시의 공병감 윤승선 대령)에서 작성중인 설계작업이 지연되는 바람에 간혹 해를 넘겨서 공사에 착수한 경우도 있었고, 때로는 미처 쓰지 못한 예산을 국고에 반납한 적도 있었다.
그리고 1954년도의 일이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지만 국정감사차 해군본부(부산)를 방문했던 임흥순 국방위원장은 감사를 할 생각은 하지 않고 김성은 장군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면서 속히 불러 오라고 하는 바람에 해군본부에서는 부랴부랴 용두산의 해병대사령부로 연락을 취하여 사령부의 국정감사 때문에 그곳에 가 있던 나를 해군본부로 오게 하여 임 위원장과 대면을 시키는 해프닝이 벌어졌는데, 그날 나를 본 임 위원장은 마치 절친한 옛 친구를 대하듯 반가워했다.
그리고선 국정감사는 할 것이 없으니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건의사항이나 요구사항이 있으면 적어 내라고 했으니 너무나 파격적인 국정감사가 아닐 수 없었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대선배님의 저서 '국방의 멍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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