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의 멍에 - 17. 휴전후 해병교육단(海兵敎育團)
(15) 통영송덕비(統營頌德碑)
1955년 여름철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어느날 통영에서 배를 타고 온 7~8명의 통영읍 유지들이 나를 찾아온 적이 있었는데, 뜻밖에도 그들은 나의 공덕을 선양하기 위해 발족시켰다는 「김성은 장군 송덕비건립 추진위원회」의 대표급 인물들이었다.
그들의 설명에 따르면 통영군민들이 6·25동란 때 해병대가 상륙작전을 감행하여 통영 시가지에 침입해 있는 적을 단숨에 쳐부수고 통영읍을 탈환함으로써 통영읍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온전하게 보호해 주었고, 또 읍민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정성을 다해 보살펴 준 은공을 기리기 위해 통영군민들의 이름으로 나에 대한 송덕비를 건립하게 되었다고 말하면서 그 비를 원문고개에 세우는 것이 좋겠는지 아니면 시가지나 망일봉에 세우는 것이 좋겠는지 나의 의견을 묻기 위해 찾아온 것이라고 했다.
그들이 말한 그와 같은 이야기는 내가 그날 처음 들을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그 해 봄철이었는지 그 전 해의 가을철이었는지 잘 알 수는 없으나 충렬사(忠烈祠)에서 거행된 제향(祭享) 때도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신익희(申翼熙)씨가 초헌관으로 헌작을 하고 내가 아헌관(亞獻官)으로 헌작을 했던 제사 때 몇몇 지방유지들이 그런 말을 하기에 나는 뜻은 고맙지만 그런 거론은 제발 하지 말아 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는데도 그 후 추진위원회란 것까지 발족시켜 추진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나는 정색을 하며 정중하게 사양의 말을 늘어 놓지 않을 수가 없었다.
즉, 나라가 위급할 때 군인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 나를 위해 그런 비를 세우다니 천부당 만부당한 일이라고 했고, 또 사후(死後)에 평가해야 할 사람의 진가(眞價)를 새파란 나이 때 평가할 수 있겠느냐며 정중히 사양을 한 끝에 가까스로 그 일을 중단시킬 수가 있었는데, 지금도 나는 그런 태도를 취했던 것을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나의 교육단장 임기는 1955년 9월까지였다. 약 2년간 교육단장으로 있으면서 교육단의 발전을 위해 열과 성을 다해 노력했던 나는 육군대학 9기로 입교하여 약 4개월간 전반기 과정을 마치고선 그 이듬해 3월 초순경사단으로 임명되어 다시 일전지구로 떠나게 되었다.
내가 9기로 입교했을때 육대에는 8기로 입교했던 이성호(李成浩) 제독이 전반기 과정을 이수하고 있는 중이었고, 9기로 함께 입교했던 장군들 중에는 후일 체신부 장관을 역임한 적이 있던 육군의 박원근(朴元根) 장군이 포함되어 있었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대선배님의 저서 '국방의 멍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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