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사령관 글/4대사령관 김성은

국방의 멍에 - 18. 사단장 시절(師國長 時節) (4) 金東河 將軍의 권유(權誘)

머린코341(mc341) 2014. 9. 1. 04:47

국방의 멍에 - 18. 사단장 시절(師國長 時節)

 

(4) 金東河 將軍의 권유(權誘)

 

  김동하 준장이 부사단장으로 부임한 후 나는 간혹 이런 권유를 받은 적이 있었다. 즉 어느날 주말 외출을 하고 돌아온 김 장군은 주말에 6군단 부군단장 박정희(朴正熙) 장군과 만났다는 얘기와 두 사람이 썩어빠진 자유당 정권을 뒤엎고 나라를 혁신하기 위한 거사(擧事)를 하기로 뜻을 보았다는 얘기를 하면서 거사에 사단장도 가담해 달라고 권유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사람들 정말 엉뚱한 짓을 하려고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해병대는 그래서는 안 되지요" 라는 대꾸로 냉정하게 받아넘겼는데 그 후에도 또 한 두 차례 그런 권유를 받았던 나는 "그런 일은 김 장군 자신이나 우리 해병대가 국가를 위해서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니 일찌감치 단념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요" 하고 일침을 가하듯이 충고를 했더니 그 뒤로는 일절 그런 말을 입에 담지 않았다.

 

  김 장군이 나에게 처음 그런 말을 했을 때 나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즉, 가장 충성스러워야 할 해병대에서 그런 일을 도모한다는 것은 국민의 신뢰를 배반하는 일이라는 생각을 했고, 또 해병대만으로 할 수 없는 일이라면 애시당초 생각조차 말아야지 어리석게 육군의 들러리를 섰다간 설사 거사가 성공을 한다손 치더라도 필시 토사구팽(兎死狗烹)과도 같은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인데, 결국 나의 충고를 외면하고 계속 그런 일을 도모했던 김 장군은 후일(1961년 5월) 김포에 주둔하는 해병여단의 일부 병력을 끌어 들여 거사에 가담하여 성공은 했으나 그때 내가 예측했던 대로 거사 후 반혁명 음모사건으로 영어(囹圄)의 몸이 되기까지 했던 김 장군 자신은 물론 해병대와 국가를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 되고 말았다.

 

  나의 해병대 사령관 재임기간중에 일어났던 5·16 군사정변에 관한 얘기는 뒤에 가서 언급이 되므로 더 이상의 얘기는 하지 않기로 한다.

 

  한편 당시 해병사단은 미 1군단의 작전지휘를 받고 있었으므로 간혹 나는 의정부 부근에 있는 미 1군단 본부나 포천에 있는 한국군 6군단 본부에서 개최되는 군단회의에 참석했는데, 나로서는 그때 처음으로 체구가 왜소하고 성격이 과묵한 것 같고 얼굴이 가무잡잡한 박정희 준장을 인사도 없이 회의장에서 대면하고서는 속으로 저분이 바로 김 장군이 말하던 바로 그 분이구나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 6군단장은 백인엽 중장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대선배님의 저서 '국방의 멍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