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의 멍에 - 18. 사단장 시절(師國長 時節)
(7) 국방대학원(國防大學院)과 정전위원회(停戰委員會)
내가 사단장 근무를 미·치고 국방대학원에 입교한 날짜는 1958년 9월 1일이었고, 수료한 날은 그 이듬해 6월 15일이었다.
그 국방대학원에서 나는 많은 것을 배웠고, 또 매우 소중한 지식을 습득했다. 국방대학원에서 배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여러 분야에 걸친 그 소중한 지식은 후일 내가 해병대사령관과 국방장관을 역임하며 중요한 군사정책을 수립할 때 큰 힘이 되었다.
또한 국방대학원에서 나는 새롭게 사귀게 된 사람들도 많았지만 과거 육군대학에서 사귄 타군 장교들, 말하자면 동문도 되고 동창도 되는 여러 고급장교들과 재회하여 함께 배우며 나누었던 우의는 각별했었다.
그때 만난 타군 장성들 중에는 후일 육군총장과 주일 대사직을 역임한 최경록(崔慶錄) 장군과 김용배(金容培) 장군도 있었고, 후일 공군총장과 주중 대사 및 교통부장관 등을 역임한 김신(金信) 장군도 있었다.
국방대학원을 수료한 후 나는 그해(1959년) 9월 1일부로 해병대 부사령관 겸 참모장으로 임명이 되었고, 1960년 5월 1일에는 주한 유엔군사령관 메그루더 대장으로부터 국련군총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 대한민국 군대표단의 수석대표로 임명이 되었다.
그때 나와 임무를 교대한 전임 수석 대표는 과거 평창(平昌)지구 전투때 일시 육군 3군단에 배속되어 있던 3사단장 최석(崔錫) 장군이었고, 그당시 유엔군측 수석대표는 미 해병대 항공대 소속 다우슨(Dawson) 소장, 북괴측 수석대표는 현재 주증대사로 활약하고 있는 주창준(朱昌駿) 소장이었다.
그런데 나의 부사령관 재임기간중인 1960년 3월 15일에는 이른바 3·15부정선거가 시행되어 그로 인한 정치파동이 4·19혁명으로 이어져 자유당정권의 몰락을 가져오게 했고, 또 새로운 공화국을 탄생시키기 위한 과도내각이 출범하여 개헌과 총선(總選)을 추진하고 있던 그러한 정치상황속에 나는 6·26전쟁 10주년 기념일인 1960년 6월 25일 제4대 해병대사령관으로 임명이 되었다.
한데 내가 중장으로 승진됨과 동시에 사령관으로 임명이 된 바로 그날 나는 판문점에서 소집된 정전회담(제120차)에 참석해 있다가 그러한 소식에 접하게 되었는데 연락장교 최덕빈(崔德彬) 대령이 전해 준 쪽지를 통해 그러한 희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다.
나는 어떻게나 기뻤던지 나와 마주 앉아 있는 북괴측 장성들이 순간적으로 고약한 사람들로 보이지 않고 오히려 고마운 사람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난생 처음 그러한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은 문득 우리 해병대나 우리 국군이 이만큼 성장한 것도 따지고 보면 6·25전쟁을 일으킨 네놈들 덕분이고, 또 내가 오늘 중장의 계급으로 승진하여 해병대사령관으로 임명된 것도 역시 네놈들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특히 그날을 잊을 수 없는 것은 북괴가 일으켰던 6·25전쟁 10주년 기념일에 소집된 120차 정전회담이 늘 억지와 생떼로 일관해 오고 있던 북괴측의 제의에 따라 소집된 회담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그날 정오경 정전회담을 마치고 비무장지대 남방한계선 약간 안쪽 길 좌측옆 언덕 위에 위치한 유엔군측 회담대표들의 숙소로 돌아온 나는 일행과 함께 잠시 대화를 나누고 점심식사를 한 다음 곧장 헬리콥터를 타고 용산에 있는 미 8군사령부로 향했는데, 내가 헬기에 탑승할 때 헬기의 옆 머리에는 어느새 준비를 했던지 빨간 3성 별판이 붙어 있었고, 그 별판을 본 일행들은 그제서야 내가 승진과 동시에 해병대사령관으로 임명이 된 것을 알고 나에게 축하인사들을 했다.
그리고 8군사령부 헬기 착륙장에서 내린 나는 이종찬(李鍾贊) 국방장관을 뵙기 위해 국방부로 갔다. 귀대하기전 국방부에 들리라는 지시가 와 있었기 때문이었다.
장관실에 들러 승진과 함께 사령관으로 임명된데 대한 신고를 했더니 이 장관은 나에게 축의를 표명한 다음 수일 전에 해임을 당한 김동하 장군 문제를 거론하면서 읍참마속(泣斬馬謖)의 고사(古事)를 인용하면서 앞으로는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일벌백계하라는 말을 했다.
나의 정전위 한국군측 수석대표 재임기간은 내가 사령관으로 임명이 됨으로써 그해 8월 19일부로 그 자리를 물러나게 되고, 육군의 장창국(張昌國) 소장이 나의 후임자로 임명이 되었다.
비록 4개월도 채 못되는 기간이긴 했지마는 나로서는 매우 귀중한 체험을 한 기간이었다.
내가 후임 수석대표와 임무를 교대하고 떠날 때 임명권자인 메그루더 유엔군사령관은 나에게 감사장을 수여했고, 최덕빈 대령을 비롯한 9명의 각 군 직원들은 나의 재임기간중에 찍어 놓은 귀한 사진들을 모은 앨범 한 권을 나에게 선사했는데, 본란에 수록된 사진들이 그 앨범 속에 담긴 사진들이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대선배님의 저서 '국방의 멍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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