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역사/해병대와 6·25사변

통영상륙작전 전승의 의미

머린코341(mc341) 2014. 9. 8. 12:27

통영상륙작전 전승의 의미 (코나스넷, 2014.08.20)

 

경남 통영시 무전동 원문공원 일원에서 통영상륙작전 전승 64주년 기념행사가 지난 16일 해병대사령부 주관으로 열렸다.

 

 행사에는 6·25 참전용사를 비롯해 황우현(소장) 해병대제1상륙사단장, 이동찬 통영부시장, 지역 기관·단체장, 해병대 전우회원, 현역 장병 등 1000여 명이 참석해 그날의 승전을 기념했다.

 

 행사는 기념식, 참전용사 감사오찬, 축하공연 순으로 진행됐다. 당시 주요 진지였던 원문고개 전적비에서는 호국영령들의 넋을 기리는 추모제를 개최하고 빛나는 전통을 계승하기로 다짐했다.

 

 참전용사 이봉식(해병1기) 옹은 회고사에서 “지금도 백병전으로 원문고개를 지킨 전우들의 모습이 생생하다”며 “우리는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어려움을 이겨내고 싸우면 이기는 부대가 됐다”고 말했다.

 

 해병대는 또 지난 15일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에서 진동리지구전투 전승 기념행사를 거행했다. 진동리지구전투는 6·25전쟁 초기 유엔군 최초의 반격작전으로, 이 전투에 참가했던 장병들은 1계급 특진이라는 영예를 누렸다.

 

 통영상륙작전이란?

 

 북한군은 1950년 6월25일 전면 기습남침한 후 파죽지세로 남하했다. 한국군은 퇴각을 거듭하다가 7월 16일경 낙동강에 방어선을 가까스로 구축했다. 한국은 국토의 90% 이상을 북한군에게 점령당한 위급한 상황이었다. 북한군은 낙동강 방어선을 무력화하기 위해 7사단을 경상남도 통영 방향으로 진격시켜 거제도를 점령하여 마산항과 진해항을 봉쇄하고자 했다.

 

 북한군 제7사단 소속의 증강된 1개 대대 약 650명이 1950년 8월16일 경남 고성을 무혈점령했다. 저녁에는 통영 입구인 원문(猿門)고개에 진출하였고 8월17일 새벽에는 통영시가지를 완전 장악했다. 그리고 견내량(見乃梁)을 건너서 거제도를 점령하려고 하였다. 만약 이렇게 되면 마산과 진해는 해상으로부터 봉쇄되고 적(敵)의 지상포 사정권내에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 해군(참모총장 손원일제독)은 급히 상륙작전계획을 수립하고, 8월17일 20:00시에 통영읍(현 통영시 용남면) 장평리(長坪里)해안에 김성은 중령이 지휘하는 해병 제1대대가 기습상륙을 감행했다. 작전에는 함정 총 7척(703함, 901정, 302정, 307정, 312정, 504정, 512정, FS평택호)과 20여척의 어선이 투입되었다.

 

 함정은 협조된 공격계획에 따라 통영항구 정면에서 함포사격을 육지로 다음날 아침까지 가했다. 이것은 해병대의 진격방향을 적(敵)이 모르게 하기 위한 양동작전(陽動作戰)이었다.

 

 상륙군 제2중대는 8월18일 새벽에 고성에서 통영읍으로 진입하는 원문고개를 확보한 뒤 적의 진격을 차단했다. 3중대와 7중대는 통영시가지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망일봉을 미리 점령해 적군 100여명을 사살했다. 이날 오후에 통영을 완전히 탈환했다.

 

 원문고개는 적의 유일한 공격로이자 통영방어에 있어서 전술상의 요충지여서 해병대는 1950년 9월 20일까지 필사적으로 방어했다. 상륙작전과 원문고개 방어전에서 한국군은 적(敵)사살 469명, 포로 86명 그리고 많은 화기를 노획하는 전과를 올렸다.

 

 적(敵)대대장, 작전참모 등 지휘관 전원이 사살되었다. 작은 어선(3척)을 타고 집단으로 해상으로 도주하던 잔적(殘敵)도 해군 504정과 312정에 의해 격침되었다. 반면, 한국군의 피해는 전사 15명, 부상 47명에 불과했다.

 

 통영상륙작전의 의의(意義)?

 

 한국군(해군, 해병대)이 단독으로 수행한 상륙작전이다. 무엇보다도 부산 교두보(橋頭堡)의 측방위협을 제거했다는 점과 암담(暗澹)했던 전세(戰勢)를 역전시키는 불씨를 지핀 전투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자못 컸다.

 

 그뿐만 아니라 작전상 후퇴만 거듭하던 국군 장병들에게는 승리의 신념을 심어 준 전투였다. 전원이 1계급 특진의 영예를 얻은 진동리(鎭東里)작전에 이어 통영상륙작전에서 또다시 크게 전공을 이룩한 김성은 부대에 대하여 외신기자(뉴욕 헤럴드트리뷴지의 마거리트 히긴스)는 ‘귀신잡는 해병(They might capture even the devil)’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한반도는 통영상륙작전(1950.8.17)과 인천상륙작전(1950.9.15)의 성공을 통해 작전환경 상 상륙작전이 방어와 공격에서 가장 효과적임이 확인된 것이다.

 

 따라서 우리 군은 이를 교훈삼아 ‘한국적 상륙작전 개념’ 발전에 더 많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입체적 상륙전력 확보는 시급한 과제다. (Konas)

 


출처 : 코나스넷, 김성만 예비역해군중장(재향군인회 자문위원, 전 해군작전사령관)
         http://www.konas.net/article/article.asp?idx=38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