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처럼" (나의 해병대 일기) - 서문
전쟁은 필요악인가?
2차 세계 대전의 막바지 내가 다섯 살 이였을 때 나는 아버지께서 내 다리에 군인들이 감는 어린 아이용 각반을 감아 주시던 기억과 식구들 모두 사이렌 소리가 나면 뒤뜰의 방공호로 숨어 들어가 몸을 피하던 기억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그로부터 5,6년이 지난 뒤 6.25사변이 일어났을 때는 내가 초등학교 4학년 이였고 여름 방학을 맞아 시골 할아버지 댁으로 고모를 따라 잠시 갔다가 그만 낙동강 최후 전선에 막혀 부산에 있는 집으로 되돌아오지 못한 채 암담한 피난민의 신세가 되었던 경험도 지우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세월이 한참 흐른 후 1968년에는 해병대 장교로 월남전에 파병이 되어 결국은 생사를 넘나드는 전투를 직접 하는 입장이 되었기 때문에 내 스스로 전쟁과는 이미 깊은 인연이라도 맺고 태어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본 적이 있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전쟁의 경험은 비단 나에게만 적용된 것은 아니며 나와 비슷한 세대에 태어난 많은 사람들이 비록 내용은 다를지라도 거의 모두가 흔히 겪을 수 있었던 얘기라는데 그 의미를 두고 싶다.
전쟁이란 인간의 생활을 위협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생존 자체를 위협하기 때문에 그야말로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져야할 존재임에는 틀림이 없다. 특히 자기 방어를 할 수 없는 노약자와 아이들 그리고 연약한 여자들의 사활을 건 모성애는 인간이 만든 사악함 속에서 생명을 부지하고자 발버둥치는 인간 본연의 절규를 발견하게 하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가 인간으로써의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가 자기의 죽음을 육감으로 알아차리고 눈물을 흘리는 것이나 죽이기에 앞서 우리 속에 가두어진 개들이 사람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혹시나 자기를 구해줄 주인이 아닌가 하고 쳐다보는 그 애처로운 시선들 역시 살고자 하는 그들 나름대로의 절규가 담겨 있으리라.
전쟁이란 인간이 인간을 바로 이러한 동물에 진배없이 그 자존심과 존엄성을 박탈하고 말살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이러한 동물에게 대하는 그 이하의 행동도 서슴지 않고 자행하기 때문에 평화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모든 것을 초월해 전쟁만은 없어야 한다는 강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며 이 또한 한편으로는 인간으로써의 매우 당연한 권리이며 의무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의 생존 논리가 약육강식의 법칙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일까?
불행하게도 인류의 역사 역시 인간이 인간에게까지 약육강식의 법칙을 철저히 적용해가며 살아왔던 것이 사실이고 보면 나아가 전쟁이라는 것은 이미 하늘이 정한 어쩔 수 없는 의미의 숙명적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한다.
나는 20대의 젊은 시절 철저히 훈련된 해병대 위관 장교였으며 그리고 월남전에서 가장 적과의 전투가 치열했던 시기에 6개월 동안을 매우 위험하다는 말단 소총 소대를 지휘했던 소대장이었다.
군인은 상관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며 목숨을 바쳐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한다. 그리고 군인 정신이란 적을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는 절체절명의 논리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전쟁터에서의 군인에게는 명령이 앞설 뿐 휴머니즘이나 양심이라는 잣대는 별로 의미가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안타깝게도 전쟁터에서의 휴머니즘은 훗날 인간이 인간에게 이미 저지르고 만 잘못에 대한 반성에서부터 비롯되어서인지 나의 경우에도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전쟁으로부터 희생되었던 많은 사람들이 더욱 나를 슬프게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서로가 이미 인간이기를 거부한 전쟁, 저주 받아 마땅한 전쟁 그리고 증오스러운 전쟁이이기도 하지만 내 자신 군인으로써의 임무를 완수하고 그 것이 나라를 발전시키는데 큰 몫을 했다는 엄연한 사실에 대해서는 내 스스로가 후손을 위해 썩은 한 알의 밀알처럼 여겨져 내가 참전을 했다는 사실이 결코 수치스럽거나 후회스럽지는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나는 개인적으로 국가와 국가 간의 이해관계는 물론 인종과 종교 그리고 이념간의 갈등이 이 지구상에 계속 존재하는 한 전쟁은 앞으로도 우리 인류의 영원한 필요악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데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본다.
요약컨대 나는 내 나름대로의 고군분투를 담은 이글이 독자들에게 어떤 메시지로 받아들여지게 될지는 매우 가늠하기 힘든 입장이나 내가 바라는 것은 이국 만리 월남전에 참전했던 나와 내 주위에서 벌어진 리얼한 얘기들을 되도록 꾸밈없이 알림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나라를 위해 앞장서 싸우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하는데 그 뜻이 있음을 미리 말해두고 싶다.
1.소총 소대장
(1)전사들의 침묵
(2)부산의 제3부두
(3)선상에서
(4)신참의 광기
(5)시작된 전투
(6)디엔반 군청의 결사대
(7)슬픈 호수마을의 추억
(8)어느 소대장의 죽음
(9)저승의 색깔
(10)아! 비극의 그날
(11)해변 휴가와 B-52폭격
(12)중대를 구한 김 중사
(13)수색작전과 신풍
(14)전쟁과 명당 집 자손들
(15)대 용궁작전의 숨겨진 얘기
(16)배신의 참회
(17)나의 마지막 전투
출처 : Daum 카페 나가자 해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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