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장군 비망록] 전 해병대 사령관 전도봉 장군(6회)
옹진호 사건의 책임을 지고 한달 보름동안 수감생활을 마친 전도봉 장군은
74년 10월25일부터 해군본부 정보참모부 예산담당관으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
전 장군은 이 무렵 임경섭 소장(해군간부 4기,미국 캘리포니아 거주)을 운명적으로 만나면서
어둡기만 했던 군생활에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게 된다.
임 소장은 당시 해본 정보참모부장이었다.
서울 갈월동 산성교회 장로이기도했던 임 소장은 이때 전 장군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쏟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친·인척으로 맺어진 특별한 관계는 아니었다.
임 소장이 평소 전 장군과 관련된 여러 사건을 접하면서
전 장군의 사나이다운 성격과 인물됨됨이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전 장군은
“만약 임 소장의 배려가 없었다면 적어도 중령 정도에서 군복을 벗었을 것”이라고 회고한다.
전 장군이 해병대 감옥에서 석방될 무렵과 때를 같이 해 군 내부에서는 정기 진급심사가 곧바로 예정돼 있었다.
전 장군은 대위에서 소령 진급대상에 포함돼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비록 감옥에서 풀려났지만 군사재판을 남겨놓고 있었다. 묘하게도 재판은 진급심사와 맞물려 있었다.
재판이 예정대로 열릴 경우 한달반 동안 수감생활을 했기 때문에 일단 유죄로 판정받을 것이 뻔했다.
그렇게 될 경우 전 장군은 진급심사에서 아예 제외될 가능성이 높았다.
이런 사정을 잘 아는 임 소장은 해군본부 법무감실 검찰부장(이영한 변호사)에게 지시해 재판을 일단 보류하도록 했다. 이로 인해 전 장군은 자연스럽게 진급심사 대상에 포함될 수 있었고 기대한 대로 74년 11월 소령진급 예정자가 됐다.
그러나 정식 계급장을 달려면 5개월뒤인 이듬해 4월이나 돼야 했다.
이 또한 걸림돌이었다.
만약 그 사이에 재판이 이루어지고 유죄판결을 받는다면 전 대위의 소령진급은 무효가 되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임 소장이 앞장섰다.
“이봐 검찰부장, 4월달 계급장을 달 때까지 전 대위의 재판을 연기해줄 수 없겠나.
해병대를 위해 전 대위는 반드시 필요한 군인일세.”
이렇게 해서 전 대위는 정식 소령 진급 후에 재판을 받았고 여기에서 ‘근신 일주일’을 선고받았다.
전 장군은 진급하고 보니 또 하나의 장애물이 생겼다.
원래 중대장을 마치고 소령 진급을 하게 되면 고등군사반 교육을 받아야 했다.
그래야 중령 진급의 자격도 주어지기 때문이다.
전 장군은 임 소장의 배려로 소령 계급장을 달았지만 고등군사반 교육을 이수해야 하는 숙제가 남아 있었다.
그러나 선택의폭은 좁았다.
해군에서는 이미 기회를 놓쳤기 때문에 육군에서 교육을 받는 길이 한가지 있었다.
그래서 전 장군은 미국 유학을 생각했다.
하지만 이 또한 간단치 않았다.
해군·해병대에서 매년 3명 정도 기회가 주어지지만 규정상 해사출신에 한해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임 소장은 인사참모부장한테 부탁해 규정 일부를 수정해줄 것을 요청했다.
비해사 출신도 유학시험에 응시할 수 있도록 해주자는 것이었다.
사실상 이는 전 장군을 위해 규정을 바꾸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전 장군은 이번에도 또 한번 임 소장의 배려로 간신히 유학의 기회를 잡게 됐다.
아울러 전 장군은 보란듯 우수한 성적으로 시험에 합격, 77년 8월19일미국 상륙전학교 고등군사반에 입교했다. 상륙전학교는 콴티코 버지니아(Quantico Virginia)에 위치해 있었다.
전 장군의 회고.
“어렵게 유학의 길을 잡게 됐다.
하지만 혼자 출발해야 했다.
요즘에야 가족들과 함께 원하는 대로 떠날 수 있었지만 당시에는 엄두도 낼 수 없었다.
이유는 가족들끼리 유학갔다가 아예 귀국을 하지 않을까 하는 당국의 우려 때문이었다.
유학동안 미군은 우리들(유학동기 3명)에게 철저하게 친미화 정책을 구사했다. 모든 교육 프로그램이
‘위대한 미국’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전 장군은 미 상륙전학교에 다니면서 미해병 2사단 6연대 작전보좌관 직책을 맡았다.
실전에 가까운 여러차례의 훈련을 직접 지휘하기도 했다.
베트남전 참전 등 이미 전장 경험이 풍부했던지라 미 해병대에서도 모든 훈련을 자신감 속에 깔끔히 처리해냈다.
미 유학중 인상 깊었던 일도 적지 않았다.
바로 미 대통령이 정한 특수 해병대에서의 경험이었다.
통상적으로 미 대통령은 해병대 1개대대를 선정, 24시간비상 출동대기시킨다는 것.
이 부대는 유사시 미 대통령이 직접 지시로 24시간내 세계 어디든 긴급 출동하도록 완벽한 준비가 돼 있다.
이 특수부대 요원들의 자부심은 대단한 것이었다.
1년내내 휴가도 없이 완전군장으로 잠을 자더라도 아무런 불평없이 지낸다는 것이다.
아울러 대통령에게 점지되지 않은 다른 해병부대들은 기회만 있으면 대통령에게 점수를 따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합참의장 등 군수뇌부들은 어떻게해서든지 초청, 부대 전투력을 보여주며
“우리 부대가 백악관 직속 부대로 안성맞춤이 아니냐”고 항의(?)한다는 것이다.
특히 해병대는 전투기를 갖고 있어야 하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해군과 공군 등 수시로 출동태세 점검을 받는데
해병대가 다른 군을 제치고 늘 1위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미 해병대는 현재 수직 이착륙 전투기를 보유하고 있어
출동 기동력이 매우 신속하다고 정평이 나 있다.
전 장군의 회고.
“솔직히 말하면 우리나라 국방장관이나 합참의장 등 군 수뇌부들은 각 부대의 전투력을 상세히 알지 못한다.
미 해병대는 시·공간적으로 전투력을 과시하기 위해, 위에서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군수뇌부들을 불러 모범을 보인다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국방장관이나 합참의장 등은 어느 부대하면 전투력이 얼마, 어떤 특징의 있다는 것을 상세히 알고 있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미군의 보안부대는 지휘관을 몰래 감시하는 것이 아니라
부대 전투력을 위해 같이 상호보완적으로 밀접하다는 점에서 더욱 놀랐다.
지휘관 평가를 하는데 있어서 소속 보안부대장은 보고서를 들고 미리 보여주는 등
논의 과정을 거친 다음 상부에 보고하는 시스템이었다.”
1년동안 유학생활을 마친 전 장군은 78년 7월13일 귀국, 해군대학 학술처 교관으로 발령받았다.
전 장군은 학술처 교관 시절 또한번 임 소장의 배려로 중령 계급장을 달게 됐고
80년 1월 2여단 정보참모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
이때 전 장군(이하 중령)은 임진강 하류쪽으로 침투한 3인의 간첩사건을 다루게 됐다.
당시 해병대와 육군 9사단은 임진강 하류쪽에서 서로 경계를 맞대고 있었다.
임진강쪽에는 해병대가 경계책임을 맡고 임진강 이남, 즉 내륙 부분은 육군의 책임지역이었다.
80년 9월 임진강 하류 내륙쪽에서 무장 간첩 3명이 아군(9사단 초병)에 의해 사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러자 임진강 물줄기 부분의 경계를 담당하는 해병대에 1차 화살이 돌아왔다.
사실상 해병대의 경계가 뚫렸기 때문에 내륙으로 침투했다는 것이다.
이 사건으로 해병대뿐만 아니라 수도군단과 3군사령부 전 지역은 초비상이 걸렸다.
황영시 3군사령관 역시 이 사건으로 밤낮없이 걱정하고 있던 터였다.
1차 책임소재가 해병대에 떨어진 이상 2여단 정보참모인 전 중령 역시 사건수습의 핵심이었다.
전 중령은 우선 사살된 무장간첩들의 발바닥과 손바닥, 군화 신장 등을 정밀 촬영했다.
그러는 한편 며칠 동안의 임진강의 물흐름 상태를 면밀히 살폈다.
또한 조석 간만의 차이와 무장간첩들의 행적으로 보이는 발자국들을 상세히 관찰했다.
사건 발생 3일후 전 중령은 그 동안의 연구결과를 토대로 브리핑 차트를 만들고
소속 지휘관인 2여단장(박희재 준장)에게 1차 보고했다.
“여단장님, 이번 간첩 침투사건과 관련, 중요한 보고사항이 있습니다.”
“아니, 무슨 내용이오.”
박 장군은 이번 사건을 잘 마무리한 뒤 예편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불명예스럽게 퇴진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박 장군의 고민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여단장님, 결론부터 말씀 드리면 이번 사건은 무장간첩들이 임진강을 직접 건너오다 발각된 것이 아닙니다.”
“아니 전 중령, 그게 무슨 말이오. 다시 설명해 보시오.”
박 장군은 전 중령의 말에 귀를 쫑긋하며 재차 물었다.
“여단장님, 사살된 3명은 침투로에서 사살된 것이 이니라
다른 지역을 통해 이미 침투해 있다가 돌아가던 길에 발각이 됐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퇴로에 우리 아군에 발각됐다는 것이지요.”
전 중령의 보고는 박 장군의 눈을 휘둥그렇게 만들었다.
“여단장님, 제가 무장간첩의 발모양과 강가에 남겨진 발자국, 그리고 임진강의 ‘물흐름’ 등을 종합분석해 보니
그런 그런 결론이 나왔습니다.
다시 말씀드린다면 이번에 사살된 무장간첩들은 오래전에 남한에 침투해 있다가
북으로 돌아가던 중 임진강에서 ‘물때’를 기다리다 적발된 셈입니다.”
박 장군의 얼굴에는 희색이 가득했다.
이 얼마나 반가운 소식인가.
3군사령부 예하 지휘관들이 우수수 떨어져 나가야 할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전 중령의 명쾌한 분석은 그야말로 한 줄기 희망이었고 빛이었다.
“이봐 전 중령, 이 길로 3군사령부로 가세.”
이렇게 해서 박 장군과 전 중령은 서둘러 황영시 3군사령관에게 보고하기 위해 떠났다.
잠시후 황 장군 집무실 앞.
참모 대기실에는 작전처장 등 여러 참모들이 침통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이미 2여단 정보참모가 침투로 분석자료를 들고 황 장군에게 보고하러 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터여서
더욱 침울해 있었다.
전 중령은 3군사령부 참모들에게 황 장군 집무실에 같이 들어가자고 요청했다.
그러자 다들 고개를 흔들며 거절했다.
황 장군의 성격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었다.
매사에 ‘깐깐하고’ 호랑이 성격으로 잘 알려진 황 장군은 간첩사건이 발생하자 보이는 대로 참모들에게 호통치는 등 이미 3군사령부를 공포 분위기로 만들어 놓았다.
황 장군의 군홧발에 안맞은 참모가 없을 정도였다.
그러서인지 전 중령이 “정보·작전참모는 대동해야 할 것 아니냐”고 재차 요구해도 소용이 없었다.
할 수 없이 3군사령부 참모들을 제외한 채 전 중령과 박 장군만이 황 장군의 집무실을 노크했다.
“누구얏!” 황 장군의 목소리는 거의 노기로 가득차 있었다.
박 장군이 조용히 문을 열었다.
“2여단장 박희재입니다. 여단 정보참모가 사령관님한테 보고드릴 게 있어 이렇게 왔습니다.”
“저리 앉으시오!” 황 장군이 회의용 탁자에 옮겨 앉았고 전 중령은 브리핑 차트를 펴들고 설명하기 시작했다.
“사령관님, 그동안의 여러 정황과 분석자료를 통해 결론을 내린 결과,
사살된 간첩들은 복귀로를 잘못 선택해서 우리 아군에 발각됐습니다.”
“뭐야? 다시 한번 얘기해봐.”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있던 황 장군은 금세 눈이 동그래졌다.
“침투하다가 사살된 게 아니고 복귀도중에 사살됐다는 것입니다.
이미 오래전 침투해 들어와 공작임무를 마친 뒤 돌아가던 중에 아군에 발각됐다는 결론입니다.”
잠자코 듣고 있던 황 장군이 탁자를 손으로 탁 치며 일어섰다.
“야! 전 중령, 바로 그거야. 밖에 있는 참모들 다 들어오라고 그래!”
호랑이 같은 황 장군의 얼굴이 어느새 밝아졌다.
“그럼 그렇지, 퇴로야 퇴로! 그런데 말야, 우리 참모들은 그런 걸 하나 분석을 못하고 말야. 뭐하는 것들이야.”
사실 황 장군은 간첩사건 이후 거의 잠도 못자고 노심초사 걱정하고 있었다.
당초 보고대로라면 자신의 챔임도 면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내심 돌파구가 없을까 하던 차에 전 중령의 보고는 정말 회심의 카드나 다름없었다.
“그래, 수도군단의 초동단계 보고는 엉터리였어. 2여단의 보고가 얼마나 과학적이냐 말야.”
황 장군의 입은 다물 줄 몰랐다.
3군사령부 보고를 마친 뒤 전 중령과 박장군은 물러나왔다.
2여단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박 장군이 전 중령에게 물었다.
“이봐 전 중령, 자네 보고 확실히 맞는 거야?”
“네 여단장님, 맞습니다.”
박 장군도 전 중령의 그럴 듯한 추리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비록 결정적인 물증이 없었지만….
다행히 전 중령의 보고자료는 줄초상집을 완전히 잔칫집으로 바꿔놨다.
지휘책임을 물어 줄줄이 다칠 뻔했지만 무사히 넘어가게 됐다.
그로부터 3개월 후,
군 보안사와 안기부, 경찰 등 합심조의 최종 보고서가 나왔다.
난수표 등을 정밀 분석한 결과 3인의 무장간첩은 임진강을 통해 침투하다 사살된 것으로 결론이 났다.
그러나 이미 사건 마무리 등 상황은 종료된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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