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장교 글/해간35기 구문굉

"불꽃처럼" (나의 해병대 일기) (3) 선상에서

머린코341(mc341) 2015. 1. 27. 07:13

"불꽃처럼" (나의 해병대 일기) (3) 선상에서

 

사진// 상: 좌로부터 1.주월 사령부 2.해병대 청룡부대 3.맹호부대 4.백 마부대

하: 좌로부터 1.십자성부대 2.비둘기부대 3.공군지원단 4.해군 수송단


2만 톤급의 수송선 위글 호에 있는 장교들의 선실과 내부의 시설들은 그런대로 만족을 주었다. 특히 장교 식당의 메뉴는 양식으로만 되어있어 처음에는 매우 이채롭게 느껴졌으나 두 끼니를 먹고 난 다음부터는 생각이 약간씩 달라져 갔다. 장교 식당의 테이블 위에는 우리를 배려하느라 유리병에 담은 된장과 김치가 있었으나 모두가 물기 없이 말라 있어 먹을 수가 없었고 특히 된장은 소금 덩어리 같아 보였다.

 

한번은 이것이라도 먹고 속을 달래야겠다는 생각으로 식빵에다 그 소금 덩어리 된장을 발라 입에 넣었더니 우리 테이블을 주로 담당하여 서빙을 하던 필리핀계 미국 영감이 그것이 그렇게도 우스웠던지 가지고 오던 음식을 손에 든 채 주저 않아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 일이 있은 후 서로 더욱 친숙한 사이가 되어 그는 자기 근무가 끝나고 나면 밤마다 오렌지를 봉투에 싸서 나를 찾아오곤 했다. 물론 나와 함께 선실을 쓰던 장교들도 많은 얘기들을 그와 함께 나누었고 그럼으로써 지루한 선상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재미있게 보낼 수가 있었다.

 

하루는 저녁 시간이 가까워 선채 하단에 있는 대원들의 식당으로 순찰 차 내려갔다. 모두가 셀프로 열을 지어 배식을 받고 있었고 음식의 내용은 모두가 훌륭하게 느껴졌는데 다만 아이스크림은 장교들처럼 유리컵에 담아 주는 것이 아니라 종이로 만든 네모난 통에 넣은 것을 하나씩 배식판 위에 얹어 주는 것이 특징 있게 보였다.

 

그런 후 나는 장교 식당으로 돌아 와 약간은 늦게 테이블에 앉았는데 왼 일인지 장교 식당 안의 분위기가 썰렁해짐을 느꼈다. 나로부터 약간 떨어진 곳에는 키가 큰 수송관인 미 해군 소령과 덩치 큰 맥시칸 얼굴을 한 식당 책임자가 서서 서로 언성을 높이며 말을 건네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 왔고 소령은 자꾸만 대꾸를 하고 있는 식당 책임자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는 것이 예사롭게 보이지가 않았다.

 

내용인즉슨 장교들에게 오늘따라 아이스크림을 주문하면 유리잔에 담아 주지 않고 종이 상자에 담은 아이스크림을 그대로 주었던 것이 화근이 된 것이었다. 식당 책임자는 이것도 아이스크림이 아니냐고 자꾸만 대꾸를 했고 소령은 장교 식당은 반드시 유리컵에 담아 와야 하는 것 아니냐는 불호령이었다.

 

결국 이미 날랐던 종이컵의 아이스크림은 치워지고 다시 주문을 했던 장교들은 유리잔으로 바꾸어 새로 담은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사실 나는 종이 상자에 담아 주면 나중에 갑판으로 가지고 나가 바람을 쏘이며 먹을 참이었는데 나중에 사 가만히 행각을 해보니 장교의 품위를 지켜준 해군 소령이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는 늦은 밤이었는데 후배 장교 한 사람이 내가 있는 방으로 찾아 와 배 안에 야식을 먹는 곳을 알아 두었는데 모두들 가지 않겠느냐는 말을 했다. 희망을 했던 5명 정도의 우리 장교들은 그를 따라 미로 같은 배 안을 이리 저리 돌아다니다 한참만에야 야식을 먹는 장소를 찾았다. 꽤나 넓은 방 안에 하얀 보자기를 씌운 테이블을 몇 줄씩 열 지어 놓고 그 위에는 식빵과 치즈와 햄을 줄줄이 얹어 놓은 것이 보였다.

 

그리고 맨 앞에는 커피와 차를 각 각 담아 둔 큰 스텐리스 물통 두개가 보였는데 먹는 사람이라고는 우리 밖에 없어 약간은 미안한 느낌도 들었지만 그보다는 치즈가 자그마치 여섯 종류나 되는데다 햄이 다섯 종류나 되어 더욱 놀라웠다. 특히 몇 몇 장교들이 쓴 맛이 나는 치즈를 먹고는 상한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을 했는데 내용을 잘 아는 장교가 원래 그런 맛이 있다고 설명을 해 모두 안심을 하기도 했다.

 

이미 5박 6일의 항해도 순조로워 도착할 날도 그렇게 많이는 남지 않았을 때였다. 내가 점심을 먹고 잠시 쉬는 중에 어떤 후배 장교가 내 동기생인 김 중위가 자기보다 더 후배인 장교들에게 모욕적인 일을 잠시 당했다고 귀 뜸을 해주어 내가 김 중위가 있는 곳을 찾아 갔다.

 

그는 매우 침울해하며 얘기를 잘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도 결국은 자초지종을 물어 그 내용을 알게 되었다. 나는 즉시 선배 장교인 김 중위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했다는 세 명의 후배 장교들을 내 방으로 불렀다.

 

모두가 우수 하사관 출신으로 군대 생활로 보나 나이로 보나 갓 대학을 졸업하고 임관을 한 후 실무 생활을 했던 김 중위보다는 더욱 경험이 많고 세련되어 보였지만 그렇다고 선배를 얕잡아 본 다는 것은 특히 해병대에서는 있을 수가 없는 일이기 때문에 나는 직접 맨바닥에 엎드려 벋치게 하고는 나무 몽둥이로 단단히 기합을 주었다.

 

결국 섭섭하게 얘기를 했던 후배장교들이 김 중위에게 진심어린 사과로 끝이 났지만 사실 함께 전쟁터로 나가는 터에 내가 심하게 기합을 주었던 것은 김 중위의 체면을 내가 챙겨주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이었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순항의 결과로 1월 23일 출항을 했던 수송선 위글 호는 5박 6일의 순항을 마치고 1월 28일 오전 월남의 제 2도시라는 다낭 항구에 정박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