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처럼" (나의 해병대 일기) (4) 신참의 광끼
소대원들과 함께 생과사의 기로에 서게 된 소대장, 5대대 27중대 1소대장. 작전 후에 야간 매복을 나가거나 야간 매복 후에 연이어 나가는 주간 작전은 너무 힘들었다.
1968년 1월 31일, 이날은 구정이었다.
그러나 이미 적들은 구정을 가운데 둔 3일간의 휴전을 위반하고 구정 2일 전부터 대공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막 추라이로부터 호이안으로 이동을 했던 청부대 전투중대들은 거의가 진지를 구축하지 못한 형편이었고 청룡(여단)부대 본부마저도 해변 가에 천막을 치고 있는 실정이었다.
1월 28일 다낭 항에 도착한 우리 23제대는 청룡부대 본부의 준비 부족으로 현지에서의 적응교육도 그리고 M-16의 사격훈련도 받지 못한 채 장사병들 모두가 1대대본부와 붙어있다 시피 한 근무중대(보급부대)에서 대기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1월 29일 오전 장교들만 잠시 헬리콥터를 타고 청룡부대 본부에 들러 신고식을 하러갔으나 여단장은 부재중이라 참모장이 대신해 신고를 받았고 워낙 모두들 바빠 잠시 작전참모로부터 전황이 별로 좋지 않다는 말만 들었을 뿐 다른 자세한 내용도 듣지 못한 채 냉큼 헬리콥터를 타고 되돌아 올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불안함을 지우지 못한 채 근무중대에서 대기를 하는 중에도 바로 붙어있다시피 가까이에 있는 포병대대에서 계속 포를 쏘아 대는 통에 매우 곤혹스러워 했다.
특히 우리 신참들은 포 쏘는 소리가 “콰쾅”하고 들릴 때마다 시도 때도 없이 몸을 움칠거리지 않을 수 없었고 이것은 마치 딸국질을 계속하는 것보다 더 심하게 몸에 반응이 와 밤에는 잠을 잘 수도 거의 없을 지경이었는데 근무중대 고참들은 그 소리에는 아예 아랑 곶도 하지 않은 채 코를 골며 잠을 자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다음날인 1월 30일 정오 쯤 근무중대의 임시건물 앞 넓은 마당이 갑자기 전투 병력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대열을 대충 갖추고 정문으로 들어오는 병사들의 모습은 매우 지쳐있었고 나로서는 몇 대대 몇 중대의 대원들인지 조차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나는 혹시나 아는 장교가 있을까하고 반가운 마음으로 각 소대를 인솔하는 소대장들부터 찾았다.
“형” 하는 소리가 어디서 들렸다.
“아~ 고 중위, 벌써 와있었구나”
우리는 잠시 서로 끌어안다시피 하며 악수를 나누었다.
동기생 중에도 덩치가 아담하고 피부가 뽀얗던 그가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지쳐있는 모습을 보이며 방금 호이안에서 시가전을 막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라고 했다.
그러나 대열이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의 얘기를 나눌 여유가 없었다. 고 중위와 헤어지고 나니 멀리서 누가 손을 흔드는 것이 또 보였다.
평소에도 검은 얼굴이 더욱 검게 보이는 다른 김 중위였다.
철모를 두른 끈에는 압박붕대가 꽂혀 있는 것이 특이하게 느껴졌고 그와는 거리가 멀어 그저 손을 흔들어 보이는 것으로 인사가 끝이 났다. (김 중위는 추라이에서 있었던 전투에서 옆구리에 관통상을 입었으나 다행히 살아 또다시 완쾌 후 소대장을 자원했던 불굴의 사나이이며 귀국 후에는 대대장을 마치고 제대를 했다)
잠시 후에는 뜻 밖에도 박 중위를 만났다.
그는 도서부대 중화기중대의 소대장을 했고 나는 같은 부대 백령 중대의 소대장을 했었는데 나보다는 1기선임이었고 내가 생각하기로는 여태껏 이 박 중위보다 더 모범된 해병대 초급장교를 본적이 없을 정도로 무엇으로 보나 반듯한 사람이었다.
“구 중위, 너무 반가워요”
“아~ 여기서 서로 만나는 군요. 언제 월남에 왔어요?”
“한 2개월 정도 됐나 봐요.”
"난 며칠 전에 다낭에 도착했어요"
우리는 서로가 반가워 어쩔 줄을 몰라 했지만 역시 대열이 움직이고 있어 서로 헤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다음날 전투에서 개활지를 건너다 적의 기습으로 그만 전사를 하고 말았다는 소식을 나중에 사 들었다)
사실은 어제부터 나는 근무중대에서 대기를 하고 있던 우리 23제대의 장사병들이나 하사관들이 슬슬 줄어들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그 것은 기회를 보아가며 여단본부에서 배치 명령을 시작했다는 뜻이었다.
1월 31일, 남은 장교는 16명 중 나를 포함해 세 명 밖에는 없었다.
씨레이션으로 점심을 막 끝내고 있는 중 옆방의 근무중대 통신병이 전통을 한 장 가지고 나에게로 닥아 왔다.
써 놓은 글씨가 너무 복잡하고 잘 알기가 힘들 뿐 아니라 직접 메모를 한 통신병도 받아는 적었지만 그 내용을 잘 몰랐다. 나는 옆방으로 가 직접 무전기를 잡고 청룡부대 본부의 인사장교에게 물었다. 그랬더니 대충의 인사발령과 명령의 내용은 이러했다.
“5대대 27중대 소대장으로 명함. 오후 4시 30분경 두 대의 미 해병대 수륙 양용 차와 네 명의 27중대 대원이 근무중대에 도착 할 예정임. 근무중대에서 씨레이션을 보급 받은 후 대원들과 수륙 양용차를 지휘하고 호이안 외곽 비행장에 배치된 26중대에 일부 보급품을 지원한 후 좌표 000 000에 위치한 27중대로 찾아가 부임할 것”
나는 좀 복잡하다고 느끼기는 했으나 이제 사 실감나는 전쟁터에 들어가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마음의 각오를 단단히 했다.
시간에 맞추어 미 해병대 수륙 양용차가 근무중대에 와 닿았다.
나는 수륙 양용 차의 미 해병대 선임대원에게 앞으로는 내가 너희들을 지휘를 할 것이라는 말을 전하고 27중대에서 온 대원들에게 말을 걸었다.
대원들이 지쳐있는데다 수륙 양용 차의 소음까지 겹쳐 그런지 아니면 얼굴이 아직도 그을리지 않은 허연 신참이 되어서인지 대원들의 응대가 시원치 않아 나는 화를 벌컥 내었다.
“야, 이 새끼들아. 내가 지금 묻고 있잖아! 너희들 방금 호이안 시내를 통과 했을 때 시가전이 끝이 났었는지 아닌지 말이야”
죽일 듯이 말을 하는 나를 보고서야 네 명중 겨우 한 대원이 시가전은 이미 끝난 것 같았고 그래도 총소리는 계속 나는 것 같았는데 누구를 겨냥했는지는 모르겠다는 식으로 대답을 했다.
5대대 27중대는 오늘 오전 호이안 시내를 탈환하기 위해 북쪽 방향으로부터 접근을 시도하다 시가지 외곽에서 적에게 저지를 당하고 있었다.
마침 건물에 은폐해 있는 적을 섬멸하기 위해 1소대 소대장인 옥 소위가 지도를 펴놓고 잠시 선임 하사관과 분대장들을 모이게 했는데 이 때 그만 적이 쏜 박격포가 그 부근에 몇 발 떨어지는 통에 불행하게도 옥 소위는 물론 1소대의 지휘자 전원이 사상을 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나는 출발하기 전 우선 보급 장교인 선중위로부터 사정을 얘기하고 권총 한정을 빌렸다.
“자살용인데 무슨 소용이 있겠소?”
덩치 큰 보급 장교가 넌지시 웃으며 권총을 건넸다.
“이것마저 없으면 자살도 못하지 않소?”
우리는 함께 껄껄 웃으며 작별의 인사를 나누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수륙 양용 차 두 대를 지휘하고 매우 빠른 속도로 호이안 시내를 통과하여 무사히 외곽의 경비행장으로 갔다.
호이안을 통과하는 중에도 나는 대원들과 함께 수륙 양용 차의 상판에 납작 엎드려 사주 경계를 철저히 하지 않으면 안 되었으나 가는 도중 우리를 겨냥해 총알이 날라 오거나 하는 일은 마침 없었다.
전투식량인 씨레이션을 기다리는 26중대 부중대장은 웃음을 온 얼굴에 머금으며 나를 반겼다.
그는 나보다 2기가 선임이었으나 대학도 동기에다 백령도 백령 중대에서 내가 소대장을 했을 때 우리 중대 부중대장을 잠시 했던 친구였다.
“야, 구 중위 너 헌병이 여긴 왜 왔어?”
“소대장이 모자라 우선 기고 있으면 나중에 빼준데. 나 이제 27중대 소대장으로 부임하는 길이야.”
“아침에 우리가 서로 27중대와 잠시 지나쳤는데 그 뒤에 작전을 하다 녹았다는데 너 큰 고생하러 가구나. 야~ 그러고 너 지금 27중대로 간다는데 앞에 보이는 저 숲을 어떻게 뚫고 갈래? 호이안 시내에서 철수한 적들이 저 속에 다 있을 텐데”
“그래도 명령이니 가야지.”
“너 겁도 없구먼, 또 어두워지고 있잖아”
“괜찮아 내 걱정은 말고 빨리 작업이나 끝내줘.”
작업을 마치자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미 해병대 대원들도 아예 갈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네 명의 미 해병대 기갑병 중 누가 선임이냐고 묻고 선임이라는 그 대원에게 다가가서 목소리를 높였다.
내가 가야 지휘자가 없는 소대를 지휘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미 어둠이 깔리기는 했지만 그것이 위험하다면 숲 속으로 들어 갈 때 쌍 라이트와 엔진을 튠업해 가며 오히려 소란스럽게 대병력이 온 것처럼 보이면 무사히 목적지까지는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을 하자 그는 다른 자기 대원들을 힐끔 한번 쳐다보고는 무슨 답을 얻었는지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들이 처음 27중대를 떠나 올 때는 지금 우리가 가고자하는 길과는 다른 길로 왔었기 때문에 잠시 지도를 펴고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이제부터 더욱 절박한 생사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는 생각을 하고보니 차츰 단단한 각오가 나를 감싸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적들이 우리의 약점을 알고 미리 준비 된 공격을 해오지 않는 한 우리는 무사히 27중대까지는 갈 수 있는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드디어 출발을 했다. 수륙 양용 차의 쌍 헤드라이트는 그 밝기가 매우 강했다. 계속 튠업을 해가며 숲을 누비며 전진해 가는 두 대의 수륙 양용 차의 굉음 소리가 마치 포효하는 맹수처럼 고요했던 숲 속을 매우 요란스럽게 만들었다.
“웡 웡 웡 ·웡웡웡웡 웡~” 적들로 하여금 두 대의 수륙 양용차 속에 많은 대원들을 태우고 무슨 큰 작전이나 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더 더욱 요란스러움을 떨었다.
거의 30분이나 흘렀을까? 싶었을 때 멀리 헤드라이트의 조명에 꿈틀거리는 위장복들이 눈에 들어왔다.
살았구나!
나는 그제서야 안도의 마음과 기어이 해냈구나 싶은 기쁜 마음에 들뜰 수 있었고 그보다는 적을 기만해 당당히 그들이 포진해 있을 숲의 한 가운데를 뚫고 무사히 나왔다는데 더욱 뿌듯하고 통쾌한 승리감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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