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처럼" (나의 해병대 일기) (9) 저승의 색갈
귀동냥으로 얻어 들었던 내용이지만 사이공에 있는 주월 한국군사령부의 통계에 따르면 아군의 80%정도의 사상자가 적의 직접적인 공격보다는 지뢰나 부비트랩에 의해 발생한다고 했다.
만약 우리가 적의 입장이 되어 생각을 해 보더라도 매우 교활한 방법을 총 동원해 대항을 하지 않는다면 많은 병력과 뛰어난 화력을 가진 아군을 상대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고 여겼을 것이다.
우리 중대에서는 내가 부임하기 바로 전에만 두 건의 부비트랩과 지뢰에 의한 희생자가 있었다고 했다.
맨 먼저는 해군에서 파견 나온 위생병이 수색작전에 따라 나섰다가 종일 허리를 굽히고 한걸음 한걸음씩 긴장을 하며 이동을 해야 하는 것이 무척 힘들었던지 마침 어떤 동네 어귀쯤에서 나무 가지 하나가 꺾여 길섶에 늘어진 채 닿아있는 것을 보고 앞사람을 잠시 벗어나 마치 높이뛰기 선수나 되는 것처럼 펄쩍 그 가지를 뛰어 넘다 그만 부비트랩이 폭발하여 돌이킬 수 없는 통한의 부상을 당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부상을 당했던 그 위생병의 “내 다리! 내 다리!”하며 질러대던 그 절규의 소리가 바로 한 순간의 실수가 어떠한지를 대원들로 하여금 절실히 느끼게 했었다고 한다.
특히 적들이 자기네 동네 사람들이 잘 다니는 길에 부비트랩이나 지뢰를 매설 할 때는 반드시 자기들끼리만 알아보는 표시를 했는데 예를 들면 나무 가지를 꺾어 놓거나 천을 묶어 놓거나 아니면 돌로 표시를 해놓는 방법 등을 많이 썼던 것이다.
그리고 나중의 일은 중대가 중대작전을 나가면 진지에 남아 있는 병력들은 마치 아내가 안살림을 하듯 온갖 궂은일들을 다 해야 했는데 예를 들어 부중대장의 지휘 아래 진입 도로나 진지를 보수해야 할 때가 있는가 하면 물을 길어 모든 대원들이 부족함이 없도록 해야 하는 것은 물론 탄약과 보급품의 수납과 청구도 완벽하게 처리를 해야 하는 그런 일들이었다.
하루는 중대가 작전을 나간 동안 진지에 남아있던 중대원 세 명이 중대에서 남쪽으로 100여 미터 아래에 있는 우물로 식수를 뜨러갔는데 대원 세 명중 한명이 밤사이 베트콩이 묻어 놓고 간 우물가의 발목 지뢰를 그만 밟아 “땅~”하는 소리가 순간적으로 지나갔다고 한다.
원래 발목지뢰가 폭발하는 소리는 그렇게 크지를 않으며 날카로운 칼처럼 생긴 반원 모양의 쇠 조각이 순간적으로 쥐덫처럼 후려치기 때문에 대부분 발목만이 잘리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워낙 순간적이라 발목지뢰를 밟았던 대원은 자기 몸을 기우뚱 하면서도
“응? 내 발이 이상한데..”
라는 말을 했는데 옆에 있던 선임 대원이 얼른 알아차리고 지뢰를 밟았던 대원을 부축하고는
“야! 아무것도 아니야 우선 누워봐!”
하고 땅위에 급히 눕힌 후 자기의 상의를 벗어 얼굴을 가린 다음 뒤처리를 했다는 것이다.
또 좀 더 큰 피해는 0대대 A중대에서 일어났던 기막힌 얘기였다.
베트콩들이 0대대 A 중대를 지나 깊숙이 있었던 X중대를 먼저 공격하기 위해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는데 X중대는 만약 적들이 자기들을 공격해 오려면 반드시 A중대 앞을 거쳐야 했으므로 항상 마음을 놓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삼국지에서도 “장계취계”라는 계략이 있듯이 베트콩들도 그 내용을 알고는 마음을 놓고 있을 바로 이러한 X중대를 먼저 노렸다.
야음을 틈타 베트콩들은 우선 A중대가 자기들의 퇴로를 차단하지 못하도록 A중대의 앞마당이나 다름없는 전방 도로에 지뢰를 잔뜩 묻어 놓은 후 조용히 A중대 앞을 통과한 후 바로 X중대를 기습했던 것이다.
위치상 자기들의 전초 지점에 있는 A중대를 믿고 설마 했던 X중대로써는 당황한 가운데 전투를 했기 때문에 많은 손실을 보지 않을 수 없었고 전투가 붙었다는 소식을 들은 A중대는 결국 자기중대 앞으로 후퇴 할 베트콩들을 섬멸하기 위해 급히 진지로부터 뛰쳐나오다 그만 여러 중대원들이 미리 베트콩이 묻은 지뢰에 부상을 당하고 말았던 얘기다.
1968년 3월 초순의 어느 날 내가 저승에 갔다 온 경우도 역시 우리 중대의 앞마당에서 일어났던 일이었으며 야간 매복의 지점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얘기를 하자면 거의 대부분의 경우 그것은 대대작전부서나 특별한 경우 청룡부대(여단)작전부서의 정보나 지시에 따라 정해졌다.
특히 중대장의 동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정해질 때의 야간매복 장소는 어떤 때는 아예 적과의 동침을 하라는 명령과 같았고 어떤 때는 밤새 적들에게 쉽게 우리를 공격하러 오라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경우도 흔하게 있었다.
물론 이럴 때는 여러 모로 적정을 제일 잘 알고 있는 소대장의 입장으로써는 모두의 목숨을 아끼기 위해서라도 단호한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고 역시 그럴 때의 요령은 임의로 매복 지점을 약간 변경하여 적들로부터 좀 더 안전하고 대응하기 쉬운 곳으로 정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항상 답답했던 것은 전투의 경험이 없는 것은 물론 한 번도 위험지역이 어딘지 나와 보지도 않았던 상급부서의 장교들이 지도와 일반적인 정보만 가지고 점을 찍어 정한 야간의 매복 지점이 어떻게 효율적일 수가 있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앞서 말한 A중대의 경우도 그리고 내가 당한 우리 27중대의 경우도 모두 우리 자신들의 앞마당을 적들이 항상 노리고 있다는 사실은 망각한 채 그저 적을 잡으러 간다는 개념만을 앞세우다 결국 적에게 당하고 말았던 경우라고 한다면 아마 적합 한 표현이 될지도 몰랐다.
이날의 우리 대대작전은 전과도 피해도 별로 없는 가운데 끝이 났다.
그러나 우리는 광활한 지역에 흩어진 적들의 분포지 중 그 일부와 평소 적 공병중대(월맹 정규군인지 베트콩들인지는 미확인) 본부가 자리했다는 지역을 다시 한 번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에 모두가 보람이 있었던 작전으로 만족을 했다.
우리가 막 작전을 마치고 1대대 작전 지역인 538번 도로로 나왔을 때는 대대장까지 지프차를 타고 직접 나와 있는 것을 목격 할 수 있었고 왼 일인지 우리 중대 진지까지 타고 갈 트럭까지 대기를 시켜놓아 어안이 벙벙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트럭 대신 10여명의 대원들과 함께 미 해병대 수륙 양용 차로 이동을 하기로 하고 먼저 트럭들을 보낸 뒤 천천히 출발을 했다.
27중대의 진지는 538번 도로에서 1대대본부를 지나고 포병대대를 지나고 그리고 근무중대와 공병중대를 지나 말라붙은 강을 가로질러 시멘트와 모래로 만든 청룡도로의 끝자락에 거의 다 달아 청룡부대 본부로 향하지 않고 곧장 직진하여 경사진 5고지를 향해 올라가면 바로 그 정상에 있었다.
수륙 양용 차는 원래 청룡도로에 올라설 수가 없었다.
임시로 만든 길이라 그 육중한 쇳덩어리의 체인이 지나가면 연약한 도로가 모두 망가지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청룡도로를 약간 벗어난 길을 따라 먼지를 내뿜으며 달렸다. 대대장의 짚 차가 뒤따라오다 이제 막 우리 옆을 앞질러 지나가는 것이 보여 나는 수륙 양용 차의 덩그런 상판 위에 앉아 경례를 했다.
대대장도 웃음을 지어보이면서 답례를 하는 것이 보였고 잠깐 사이 짚 차는 그 뒷모습을 점점 멀리해 가는 것도 보였다.
어느 듯 내가 탄 수륙 양용 차는 고지가 막 시작되기 전의 광경이 눈에 똑똑히 들어오는 곳까지 왔다.
고지의 아래쪽에는 마른 강물이 아직도 마치 개울물처럼 흐르고 있는 곳이 있어 오늘도 인접한 부대에서 온 몇 대의 트럭들이 세차를 하고 있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내가 탄 수륙 양용차가 막 트럭들이 세차를 하는 장소를 지나 이제 가파른 사구로 올라가기 위해 힘을 쓰는가 싶었을 때였다.
“콰~ㅇ”하는 고막을 찢는듯한 굉음과 충격이
동시에 한번 오는가 싶더니 곧 다시 한 번 충격이 느껴지면서 그 뒤로는 잠시 내용이 없었다.
나는 매우 좁은 한증막 같은 어느 공간에 갇혀 있었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내 주위는 온통 누른색이었다.
그러면서도 매우 밝아 보이는 누른색의 세상..
저승은 이런 색깔이구나.....
그러나 둘러싸인 누른 벽 외는 왜 아무것도 존재하는 것이 없을까?
저승이라는 곳은 내가 격리된 채 이렇게 기다려야만 하는 곳인가? 시간이 잠시 흘렀다.
누른색의 공간에 안개가 걷히듯 약간의 틈새가 생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틈새가 점점 더 벌어지기 시작 했다.
아~ 틈새 사이로 드러나는 키 큰 나무들..
저 것은 내가 보던 나무들과 너무 닮았는데..
아! 저것은 우리 27중대에서 바라보던 키 큰 나무들의 모습이 아닌가?
내가 저승에서 다시 세상으로 돌아왔나?
“소대장님~ 소대장님 ~”
대원들이 부르는 소리 같은데? 작전에 따라 나가지 않고 고지를 지키던 대원들이 작전을 마치고 돌아오는 우리를 맞이하기 위해 정문 앞에 나왔다가 내가 탄 수륙 양용차가 대전차 지뢰의 폭발로 화염과 모래먼지에 둘러싸이는 광경을 멀리서 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어렴풋한 정신을 차츰 가다듬으며 소리가 나는 곳으로 눈을 돌렸다.
우리 소대 선임 하사관과 대원들은 마치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있는 힘을 다해 급히 내가 있는 곳으로 뛰어 내려오고 있었으나 나에게는 그 모습이 마치 걸레조각들이 펄럭이며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잠시 수륙 양용차 위의 내 주위를 돌아보았다. 내 바로 옆의 통신병과 내 앞의 전령 외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머리가 기관총에 부딪쳤는지 쓰고 있던 철모가 거의 벗겨진 채 코피를 흘리며 하늘을 향해 누워있는 내 통신병은 깨어날 기미가 없고 전령은 부스스 몸을 추스르며 나를 향해 살아 있다는 표현을 희미한 눈빛으로 전했다.
나는 그제 서야 지뢰에 의해 변을 당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이번에는 계속 소대장님을 외치며 다가오고 있는 대원들을 향해 있는 힘을 다해 겨우 팔을 저어며 실낱같은 소리를 질렀다.
“오지 마! 오지 마! 지뢰! 지뢰!”
그때서야 나를 향해 달려오던 대원들이 얼른 알아 차렸는지 수륙 양용차로부터 좀 떨어진 곳에서 모두 발길을 멈추고 서는 것이 보였다.
나는 더 대원들을 수륙 양용차로부터 떨어지게 하고 간신히 모래바닥으로 뛰어 내렸지만 순간 또 이번에는 대인지뢰가 혹시라도 내 발밑에서 폭발하는 것은 아닌가 하고 잠시 신경을 곤두세우기도 했지만 그런 일은 없어 그나마 안도의 숨을 쉴 수가 있었다.
나를 부축하는 선임하사관의 눈에는 어느덧 눈물이 흐르고 있었으나 나마저 대원들이 보고 있는 앞에서 눈물을 보이기는 싫어 나는 애써 더 이상의 시선을 그에게 두지 않았다.
수륙 양용 차 위에 보이지 않았던 대원들은 모두 지뢰의 폭풍에 날라 가 땅바닥에 떨어졌고 나와 통신병과 전령은 튀어 올랐다가 제자리에 다시 떨어지면서 2차의 충격을 받았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상판 바깥으로 두 다리를 걸쳐놓고 발을 달랑거리던 미 해병대 앵그리코맨은 눈을 한 쪽 잃었고 내 전령은 고막이 터졌다. 물론 나도 고막에 심한 충혈이 있어 목이나 허리에 부상을 입었던 대원들과 함께 각자가 며칠간씩 청룡부대 본부의 의무대에 신세를 지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이 역시 집 앞마당의 참변이었고 만약 대전차 지뢰의 폭발이 모래 바닥이 아니고 단단한 땅바닥 이었더라면 2차 폭발과 함께 수륙 양용 차 자체가 조각이 나는 것은 물론 탑승을 했던 우리 모두가 누렇던 황천에서 영원히 머무르고 말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번 일로 게릴라전이란 사병에서부터 장군까지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짜내야 하는 전쟁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절감케 했으나 내가 소대장을 하는 동안 대부분의 작전은 소대장들이나 중대장들의 의견 보다는 상부의 도상작전이 더욱 힘을 발휘 했던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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