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처럼" (나의 해병대 일기) (12) 중대를 구한 김중사
해변을 가까이 낀 5대대 본부의 서쪽은 사구로 된 산맥이 가로로 뻗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역시 5월 중순쯤이었다.
대대본부로부터 계속 대기를 하라는 지시만 있어 잘 하면 오늘 하루쯤은 쉬게 되는 가보다 하고 있던 참이었는데 갑자기 중대장으로부터 5대대 본부가 있는 북동쪽 방향의 사구 꼭대기를 쳐다보라는 지시가 왔다.
우리 1소대 쪽 에서는 잘 볼 수가 없었으므로 나는 2소대 쪽으로 가 다른 소대장들과 함께 꽤나 먼 거리의 대대 쪽 방향을 쳐다보았는데 베트콩으로 보이는 녀석 하나가 긴 장총에 대검을 꽂고는 마치 버킹검의 의장대처럼 오른쪽 어깨총을 하고는 왔다 갔다 하고 있었고 더구나 뒤돌아 설 때마다 총 끝에 꽂은 대검이 햇빛에 반사 되어 번쩍거리는 것이 꽤 재미있는 구경거리 같아 보였다.
그러나 알고 보니 바로 대대본부가 남지나해를 바라보며 기대고 있는 바로 그 사구 꼭대기에서 녀석이 시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먼저 대대본부에서 그 광경을 발견한 뒤 우리 중대장에게 전달을 했던 것이며 이윽고 이를 참지 못한 대대장은 그 녀석을 생포를 하든지 공격을 하든지 간에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27중대가 출동을 해 처리를 하라는 명령을 내렸던 것이다.
“아니 대대본부는 손이 없나? 무기가 없나? 또 포병대대 지원을 못 받나? 아니면 106미리 직사포 산탄이 없나? 만 만한 것이 홍어 X이라더니 씨팔 저 한 놈을 잡어라고 그래 중대를 출동시켜?”
“아니야 뻔하잖아! 우리를 유인하기 위해 저러고 있다는 게.. 조심하지 않으면 무엇인가는 있을 거야”
“대대 본부 모두가 겁이 난거지 뭐, 그래서 까불면 중대 병력이 곧 달려온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우리를 출동하라고 하는 거야...”
출동 명령을 받은 소대장들은 제각기 불평부터 한 마디씩 했다.
대대본부로 가려면 직선거리로는 갈 수가 없었기 때문에 우리가 있는 5고지를 얼마큼 돌아 내려 와야만 비로소 대대본부로 향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약 1키로 남짓한 모래땅을 빠른 걸음으로 힘들게 이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나는 출동을 하면서도 그 옛날 왜구들의 얘기가 생각났다.
왜구들은 아군의 병력과 대치를 할 때면 곧잘 결전에 앞서 약을 올리느라 한 녀석이 앞으로 나와 엉덩이를 까고 흔들어 댔다는데 한 번은 이를 본 이성계가 그 백발백중의 활 솜씨로 엉덩이를 흔드는 놈의 똥꼬에다 명중을 시켜 왜구들의 사기를 매우 떨어뜨렸다는 전설적인 얘기다.
그러나 내 판단으로는 이럴 때 우리 전투 병력을 출동 시킨다는 것은 앞서 어떤 소대장이 말한 것처럼 나름대로 대대본부가 어떤 다른 전시 효과를 얻기 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첨병 소대로 대원들을 인솔하고 갔던 나는 바로 대원 두 명을 차출해 66미리 휴대용 로켓포를 들고 되도록이면 그 녀석 가까이 바짝 접근을 후 발사를 하라고 시켰다.
그러나 불행이도 그 녀석이 있는 사구의 꼭대기와 우리 대대본부 사이에는 나무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녀석 모르게 접근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에 접근을 하던 우리 대원은 이 녀석이 알아차리고 도망을 치려는 찰나에 먼 거리에서 발사를 하지 않을 수 없었고 거의 동시에 발사 된 두 발의 로켓은 그로 인해 모두 허사가 되고 말았다.
우리 소대는 다시 사구의 꼭대기로 먼저 올라갔다.
한 녀석이 도망을 친데다 사구 위에는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철모를 깔고 앉아 숨을 고르면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우리 중대와는 이미 악연이 맺어진 큰 마을의 웅크린 모습과 강줄기가 말라 길게 뻗은 호수가 된 채 우기를 기다리고 있는 풍경이 뒤 돌아 보이는 남지나해의 잔잔해 보이는 바다와는 너무나 다르게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잠시 후에는 맨 후미에서 올라 왔던 소대가 우리 소대를 앞으로 훨씬 더 전진해 공간을 확보 해 달라고 소리를 쳐 다시 자리를 옮기지 않을 수 없었다.
땀에 젖은 얼굴과 군복이 시원한 바람에 말라 가는 느낌도 별로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을 때 또 우리 다음의 소대에서 시끄럽게 고함을 치고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 왔다.
나는 귀찮다는 생각으로 얼른 쳐다보았더니 가운데 있던 2소대의 중앙에서 대원들이 무엇을 발견했는지 양쪽 방향으로 모두가 급히 서로가 떠미는 듯이 흩어지고 있는 것이 보였고 한 무리는 내가 있는 방향으로 밀고 왔기 때문에 나도 얼른 철모와 총을 챙기고는 더 앞으로 몸을 피했다.
우리 27중대 2소대의 선임 하사관인 김 중사는 깡마른 체격에 검고 긴 얼굴을 가진 말 없는 울산 사나이였다.
나는 아까도 그가 혼자서 그 아슬아슬한 모래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며 절벽 가장자리를 걸으며 무엇을 찾는지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보았는데 그가 그 후 미끄러져 절벽 아래로 떨어진 것은 미처 알지 못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그는 발을 헛디뎌 흘러내리는 모래와 함께 그만 낭떠러지 아래로 순식간에 떨어진 모양이었고 순간 그는 물에 빠지면 지푸라기라고 잡는 것처럼 오른 손은 키 작은 소나무 한 그루를 잡고 왼 손은 몸을 가누기 위해 모래 속 깊은 곳으로 무작정 집어넣었는데 그 속에서 그만 전선 가닥들이 손에 잡혔던 것이다.
순간 그는 전선이 폭약으로 연결 되었다는 것을 얼른 알아차리고는 모두들 피신하라는 고함을 친 다음 다른 대원들의 도움을 즉시 받아 대검으로 전선을 얼른 잘라 버렸는데 어쩌면 한 순간 베트콩들이 우리를 유인해 놓고 그들이 발파기를 누르는 것과 김 중사가 전선을 자르는 것의 시간 싸움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전선을 절단한 뒤 대원들이 전선을 따라가 땅을 파 보았더니 그곳에는 엄청난 화약이 묻혀 져 있었던 것이 발견 되었고 우리 공병 대원이 폭파를 시켰을 때는 그 위력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그 폭약 위에 철모를 깔고 앉아 중대원 모두가 노닥거리고 있었으니 그야말로 인명은 재천이 아닐 수가 없었다.
적의 계획 된 유인과 대대본부의 미련한 판단으로 떼죽음을 당할 번했던 27중대 대원들은 그래도 김 중사의 덕분으로 모두가 목숨을 부지한 채 터벅터벅 모래 길을 걸어 다시 중대 진지로 되돌아 올 수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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