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처럼" (나의 해병대 일기) (13) 수색작전과 신풍
깨스 마스크를 쓰면 우선 지휘가 용이하지 않았다.
5대대본부는 동쪽으로는 남지나해를 바라보고 반대 방향인 서쪽으로는 남북으로 뻗은 큰 사구를 기대고 있었다.
해발 4m 정도 높이의 사구는 워낙 잘 발달되고 오랜 세월을 지나 마치 산맥처럼 족히 2km정도는 해안선을 끼고 남북을 향해 달린 것 같았고 사구의 꼭대기에 올라가 동쪽의 수평선을 바라보면 매우 정적으로 느껴지는 반면 서쪽의 지평선은 그 사이에 들어 찬 오물조물한 마을이며 숲이며 강줄기가 매우 역동적으로 보여 퍽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1968년 5월이 막 끝나갈 무렵 대대본부로부터 여느 때와 같이 새로운 작전명령이 하달되었다.
그 내용은 대대본부가 뒤로 기대고 있는 사구 넘어 큰 마을(우리가 지은 별명)을 철저히 수색하라는 명령이었다.
큰 마을은 5대대본부의 사구 반대편 쪽을 역시 기대듯 자리 잡은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었는데 바로 눈앞에 농토와 강을 둔 규모가 조금은 있어 보이는 그런 마을 이었다.
그러나 동네의 남쪽은 북쪽의 계속 되는 평지와는 달리 긴 사구가 끝나면서 매듭을 짓듯 해발 5미터의 고지가 서쪽으로 돌아 막아버렸기 때문에 자연이 마을의 끝은 이 5고지의 바로 하단부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한 편 우리 27중대는 바로 이 5고지의 상단 부를 차지해 진지를 구축하고 있었기 때문에 바로 코앞의 큰 마을이나 더 먼 평원의 정경을 한 눈으로도 볼 수 있어 전략적으로 매우 안전하면서도 유리한 입장에 있었다.
그리고 27중대는 서쪽의 청룡도로를 향하면서는 정문을 두고 남쪽의 청룡부대 본부를 향해서는 조그마한 후문을 두고 있었는데 당초 소대를 배치시키면서 하필이면 우리 1소대가 북쪽의 큰 마을과 경계하는 곳을 맡아 비록 얕은 사구의 절벽이 가로 막고는 있어도 매우 기분이 거슬리는 방향으로 진을 치고 있는 셈이었다.
지난 2월에만 하더라도 야밤이면 으래 몇 차례씩 우리 1소대를 향해 산발적인 총질을 하는가하면 가끔은 잘 알아들을 수도 없는 매우 서툰 한국말로
“여러분, 왜 미국의 앞잡이가 되어 여기까지 왔습니까?”하고는 마이크를 통해 심리전을 폈었기 때문에 항상 경계의 마음을 늦출 수가 없었다.
물론 적들이 총을 쏘거나 방송을 하게 되면 우리는 나름대로 방향을 감지하여 일시에 박격포와 소총으로 소리 나는 곳을 향해 집중적으로 사격을 하곤 했다.
그리고 작전상 여러 정황을 가정 해 본다면 청룡부대본부나 5대대본부에서는 그 큰 마을에 적들이 계속 은거하고 있는 한 매우 걱정스러운 입장이 아닐 수가 없었다.
만약 5대대본부가 불시에 공격을 받아 뚫리게 되면 해변으로 별로 큰 거리를 두고 있지 않은 청룡부대본부로써는 자연히 무사하기가 힘들기 때문이었다.
물론 청룡부대 본부와 5대대 사이에 우리 27중대가 있다고는 하지만 27중대가 있는 5고지는 해변으로부터 한참을 들어 와 있었기 때문에 적들이 재빠르게 5대대본부를 치고 거침없이 청룡부대본부를 공격한 다음 계속 해변을 따라 남진을 해 달아난다면 그 지역 또한 적들이 은거하고 있는 곳이기 때문에 적으로써는 매우 효과적인 공격을 할 수 있다고 여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적들은 호시탐탐 이러한 가능성을 엿보기 위해서라도 쉽게 큰 마을을 포기할 것 같지는 않았고 그래서인지 육로나 강 수로를 따라 가끔씩은 야간 이동을 하고 있는 것이 우리 매복조에 의해 감지되기도 했다.
27중대가 큰 마을로 접근해 들어가는 길은 5대대본부까지 이동을 한 뒤 사구를 바로 넘어가는 길과 27중대의 서쪽 정문에서부터 대략 300m정도 아래로 내려가다 강물이 건기 철이라 더 이상 흐르지 못하고 멎어버린 그 끝자락을 타고 북쪽을 향해 들어가는 두 가지 길이 있었다.
그리고 그 당시 우리가 가지고 다니던 5만분의1 작전지도는 매우 황당할 대가 많은 엉터리 지도에 불과할 정도로 강이나 하천의 표시가 전혀 맞지 않았다. 물론 월남 당국에서 배포한 지도였지만 분명히 지도상으로는 강이나 하천이 있어야 하는데도 막상 그 위치에 가보면 아무런 물기조차 보이지 않는 수가 허다했던 것이다.
그러나 고참들의 말에 따르면 그 것은 우기 철에 작성된 지도라 특히 건기 철에는 지도상의 강을 찾으면 말라 없어졌거나 흐르다 물이 갇혀 호수처럼 되어 있는 수가 많기 때문에 이러한 것을 잘 참작해야 한다고 했다.
27중대는 남북으로 뻗은 강변을 따라 우선 큰 마을로 들어갔다.
후미에 섰던 우리 1소대가 막 마을 어귀로 들어갔을 때 갑자기 전방의 첨병소대 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뒤에까지 들리는가 싶더니 베트콩으로 보이는 남자 두 명이 멀지 감치서 급히 배를 타고 강을 건너 달아나는 것을 우리 저격병이 저격용 소총으로 쏘아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중에 더 자세히 들은 얘기로는 그중 한 명이 다리를 끌면서 숲 속으로 사라지는 것으로 볼 때 분명 다리에 총상을 입은 것은 장담 할 수 있으나 더 이상은 알 수가 없다고 했다.
며칠 전 우리 중대는 미 해병대로부터 저격용 소총 다섯 정을 인수했다.
조준경이 달린 그 소총들은 총신이 긴 사냥총과 다를 바가 없었는데 마침 오늘 그것을 가지고 나오자 첫 실사를 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던 것이다.
잠시 후 우리는 강변에 있는 세 척의 보트도 모두 파손시켜 물속에 가라 앉혔다. 우리가 차츰 집들이 밀집되어 있는 동네로 들어가자 이번에는 비위를 매우 그슬리게 하는 찌든 담배 냄새가 역겹게 퍼져 나왔다.
이 지역 일대는 담배 농사를 많이 지어 그 잎담배를 집 안에 엮어 걸어 놓는 것이 하나의 풍경이기도 했지만 그 냄새가 매우 짙은 것으로 보아 바로 얼마 전까지도 누가 이곳에서 담배를 피우다 사라졌다는 증거가 되었다.
그러나 월남의 시골 사람들은 남녀노소는 물론 특히 채 열 살도 되지 않은 어린 아이까지 잎담배를 말아 피우는 것을 보아 왔기 때문에 우리처럼 그 것만으로 성인의 남자가 얼마 전 이곳에 있었다는 판단을 내릴 수는 없었다.
우리 중대원 모두가 남쪽 끝에서부터 샅샅이 동네를 수색하고 북쪽 끝에 다다랐을 때는 이미 정오가 되고 있었다.
그 큰 마을의 북쪽 끝은 키 큰 나무가 별로 없었는데 길을 하나 사이에 두고 약간 떨어진 북쪽에서부터는 다시 숲이 전개되는 것으로 보아 지도를 보지 않고도 쉽게 마을의 북쪽 경계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 이상의 북쪽에 또 다른 마을이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분명한 것은 미 해병대와 자 매 결연을 맺고 있는 나병환자 촌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이미 들어서 모두가 알고 있었다.
우리는 씨레이션으로 점심을 때우고 잠시 쉰 다음 남쪽방향으로 되돌아 나오면서 다시 수색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아침과는 달리 내가 지휘하는 1소대가 첨병소대가 되었고 되돌아 나오는 길도 아침에 수색을 하면서 올라갔던 길과는 달리했다.
사실은 아군이 수색을 하고 있을 경우 베트콩들은 물론, 동네 사람들 대부분이 땅 속 깊은 동굴 속에서 숨을 죽이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우리로써는 동굴 속을 샅샅이 뒤져가며 적을 사살하거나 투항을 시킬 수 있는 입장은 아니었다.
왜소한 체격으로 좁은 굴을 들락거리는 베트콩을 잡기 위해 거추장스런 무장을 한 채 그 속으로 겨우 한 사람이 애를 쓰면서 기어 들어가야 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 좁은 공간에서 역으로 공격을 당한다면 아무리 바깥에 병력이 많아도 지원해 줄 방법이 없는 것이 더욱 문제였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도저로 땅 속을 깊이 파헤쳐 가며 작전을 하지 않는 한 어쩔 도리가 없는데다 늘 상 대대작전부서에서 지시하는 수색의 목표지점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어떤 때는 대충대충 목표지점을 둘러보고는 행군을 하다 시피 해야만 어둠이 깔리기 전 제시간에 진지로 돌아 올 수 있었던 실정이었다.
물론 야간매복 작전이나 월맹 정규군들과의 대규모 전투와는 다른 내용이지만 우리가 수색 중 베트콩을 사살하거나 포로로 잡을 수 있는 방법은 서로 이동을 하다 피할 수 없이 조우를 하게 되었을 때나 아니면 우리가 마을을 벗어나는 것처럼 이동을 하다 갑자기 뒤돌아서 기습을 했을 경우 경계를 소홀히 했던 베트콩들이 가끔씩은 걸려드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리고 수색 중 우리가 동굴의 입구를 발견하게 되는 경우는 시간 절약을 위해서라도 거의 공식처럼 된 절차에 따라 처리하는 수밖에 없었다.
사과 탄이라는 별명의 최루탄을 먼저 굴속에 넣어 터뜨리고는 “라이! 라이!” 하고 모두 나오라는 소리를 지르고 잠시 시간을 기다린 후 아무 인기척이 없을 경우 수류탄을 집어넣어 몇 차례 폭발을 시키는 것이 마지막 마무리였다.
그러나 이런 절차 중에서도 최루탄을 쓰지 않으면 더욱 번거롭지 않고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나중에는 꾀가 생겨 대부분의 경우 수류탄을 동굴 속에 집어넣는 것만으로 끝을 냈다.
어느덧 오후 시간이 꽤 지나 얼마큼 우리 중대 진지가 있는 방향으로 되돌아 왔을 때 줄곧 첨병소대로 중대를 선도하고 있는 우리 소대에 중대장이 무전으로 지시를 내렸다.
아침에 진입했던 길로 계속 가는 것 보다는 지도상으로 볼 때 동남쪽 방향을 택하면 비록 높은 사구의 측면을 넘긴 해도 거리로는 단축이 될 수 있으니 첨병소대는 그 길을 터서 중대가 이동할 수 있도록 하라는 것 이었다.
마침 내 옆으로 온 화기 소대장 정 중위와 함께 지도를 펴들고 보아도 그 길을 택하면 우리 중대까지의 거리가 매우 단축이 될 것 같아 쾌히 최선을 다해 길을 뚫겠다는 응답을 했다.
그런 후 나는 항상 믿음직스럽고 과묵한 2분대장 홍 하사를 불러 2분대 후미에 내가 따를 것이니 먼저 앞에 보이는 개활지를 건너 동남쪽 경사진 사구로 일단은 넘어가라는 지시를 했다.
나는 개활지 바로 정면 120m쯤의 전방에 산맥 같은 사구에서 우리 전방으로 빠져 나온듯한 작은 사구 하나가 마치 동산처럼 버티고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려 다른 소대들은 우리 소대가 개활지를 건너기 전까지 엄호 준비를 하고 있었으면 좋겠다고 중대장에게 협조를 구했다.
즉시 2소대와 3소대는 개활지를 향해 횡대로 나무들 사이에 위치를 하고 나는 홍하사가 이끄는 2분대를 따라 일렬로 서서 한 걸음 한 걸음 개활지를 건너기 위해 앞으로 나아갔다.
불과 얼마 가지도 않았는데 “뒤로 전달 지뢰 발견!”하는 소리가 전달되었다. 나는 으레 있는 일로 생각하고 내 역시 평상시 작전 때처럼
“뒤로 전달 지뢰 발견!”
하고는 뒤로 돌아보며 뒤따라오는 대원들에게 내가 직접 주의를 환기 시켰다.
분대의 맨 앞에서 총에다 착검을 하고 한발 한발 조심스럽게 전진을 하던 홍하사가 또 “뒤로 전달 부비트랩 발견!”하고 외치고는 더 이상 움직이지를 않았다.
홍 하사는 무엇인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던 모양이었고 나는 얼른 느낌이 좋지 않아 “모두 제자리!”하고 이미 개활지에 들어 선 모든 대원들에게 움직이지 못하도록 명령을 했다.
그러고 잠시 전방을 바라보자 멀리 두 시 방향으로부터 처음에는 잔잔한 모양을 갖추던 회오리바람이 점점 커져가며 흙먼지를 공중으로 빨아올리며 우리 쪽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여태 이 지역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 했던 갑작스런 회오리바람인데다 그 규모나 강도가 그리 크지는 않아 매우 신기해 보이기까지 했다.
우리는 그 회오리바람이 정지해 앉아 있는 우리 앞을 지나갈 때도 지뢰에 신경이 쓰여 시야를 놓치지 않으려고 인상을 찌푸려가며 애를 썼다.
회오리바람이 차츰 멀어지기 시작하자 “소대장님, 여기 좀 보십시오. 지뢰 지댑니다!”
맨 선두의 홍 하사가 총에 부착시킨 대검의 끝으로 여기저기를 가리키면서 20m쯤 뒤에 있는 나를 향해 고개를 빼면서 큰 소리를 쳤다.
적들이 셀 수 없을 정도의 수많은 지뢰를 묻고 그 위에 하얀 비닐들을 얹고는 다시 흙으로 덮어 두었던 것이 때마침 불어 온 회오리바람에 그 끝자락들을 모두 하얗게 드러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불시에 지뢰밭에 들어서게 된 내 앞의 첨병분대 대원들을 향해 차분히 뒤로 돌아서서 앞으로 갈 때 밟았던 발자국들을 따라 모두 천천히 나오라고 차분하게 일렀다.
만약 회오리바람이 불지 않고 중대 모두가 지뢰지대에 들어가는 한편 앞에 보이는 동산 위에 숨어 있던 적이 우리들에게 불시에 사격을 가했다고 한다면 과연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리고 왜 우리를 구하듯 때를 맞추어 회오리바람이 불어 주었을까?
인명은 재천인가? 기적이란 절체절명의 순간에만 주로 일어나는 것인가?
우리는 철수하는 방향을 처음 진입했던 길로 바꾼 다음 터벅터벅 중대진지를 향해 무사히 걸어 나왔고 나는 지금도 그 때 그 회오리바람을 우리 27중대 대원 모두를 구한 신풍으로 여기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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