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처럼" (나의 해병대 일기) (32) 뒤돌아 보며/ 관측장교 이 소위
4. 뒤 돌아 보며
(1)관측장교 이 소위
(2)미 해병대 전우들
(3)털보 정 중위
(4)전쟁 공포증
(5)자만과 개죽음
(6)부식과 위장복 사건
(7)소총 소대
(8)선배들의 먹 거리
(9)육군 제11군수지원 대대와 538 도로
(10)전쟁 그리고 여자
(11)월남 아가씨 “국이”
(12)방어 본능과 사형 집행자의 심성
(13)해병대의 눈물
(14)C-레이션의 추억
(15)맥아더 장군은 선배들의 친구입니다
(16)영천 따까리 시절
(17)두 해병
(18)38년만의 만남
(19)세월 따라 흘러간 얘기들
비교적 큰 키에 날씬한 몸매를 가진 포병 관측장교 이 소위는 나처럼 부산에서 학교를 다니며 오래 그곳에서 살았던 장교였다.
물론 우리가 월남에서 같은 중대에 배치됨으로써 비로소 서로 알게 된 사이였지만 그는 흔히 젊은 사람들의 말을 빌려 표현을 하자면 수가 만수인 사람이었다.
우리 중대 소대장 모두가 계급이 중위였고 자기 보다는 선배 장교들이기도 했지만 소대장들이 입맛이 없어졌다고 하면 어디서 구해오는지 미제 파스타와 닭 육수를 만드는 재료까지 구해와 먹어 보라고 소대장들의 벙크를 찾아 다니며 일일이 권유를 하는가 하면 오렌지가 먹고 싶다고 하면 아예 200개나 들어 있는 미제 박스를 통째로 갖다 풀어 놓을 정도로 재주가 많은 사람이었다.
그런데다 우리가 더욱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적과의 전투 상황이 벌어지면 포를 유도하는 그 솜씨가 또한 얼마나 뛰어났던지 포 지원만큼은 아예 걱정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우리 해병대 L-19 정찰기가 우리 중대의 작전 지역에 떠 있으면 어느새 항공 장교의 주파수를 알아내고는 교제도 곧 잘 하는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적의 구정공세가 있은지 얼마 되지 않아 한 번은 우리가 수색을 해야 할 곳이 월맹 정규군 1개 대대가 버티고 있는 지역이었는데 얼마 전에도 우리가 그 곳으로 접근을 하던 중 적이 불시에 공격을 하는 통에 중대 전체가 쫓겨 도망을 치다시피 후퇴하기가 바빴던 일이 있었다.
그 당시 나는 솔직히 도망을 치다 넘어져 한 순간이나마 하늘을 쳐다보며 내 스스로의 목숨을 포기했었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심적으로 매우 껄끄럽게 여겨지지 않을 수 없는 처지였다.
그리고 며칠 전에도 0대대 0중대가 우리처럼 수색을 나왔다가 전사자만 3명이 생기고 말았던 일을 이미 알고 있었던 터라 그야말로 무리한 명령을 내리는 청룡부대 본부와 대대본부를 우리는 크게 못마땅해 하고 있었다.
월맹 정규군의 대대본부가 있다는 곳에는 사람 키를 훨씬 넘는 철조망에다 그 앞에는 해자를 파 놓았을 뿐만 아니라 우리 1개 중대로 완강한 진지를 구축하고 있는 적 1개 대대를 수색이나 공격을 한다는 그 자체가 말이 될 수 없었기 때문에 더 더욱 실망스럽고 난처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직접 중대장에게 마치 학생이 땡땡이를 치듯 아예 지금 우리가 위치한 지점에서 어영부영 시간을 지체하다 되돌아가지 않으면 나중에는 빠져 나가기도 힘들 것이라는 말을 했다.
실로 지난 번 우리가 도망을 치다 병력을 다시 수습해 적을 물리친 다음 뒤로 물러나올 때도 키가 크고 말라있는 사탕수수밭을 지나다 중대원 모두가 그 속에서 길을 잃고 한참을 헤맨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나는 영화에서 보았던 장면이지만 2차 대전 때 미 해병대가 마른 사탕수수밭에서 바람을 이용해 그 속을 지나던 일본군들을 모두 태워 죽이는 장면이 문득 머리에 떠올라 더욱 난감했던 적이 있었던 것이다.
사실 게릴라전은 최 일선 단위 부대의 지휘관이 그 때 그때의 상황을 판단해 융통성을 발휘하지 않으면 부하들의 많은 희생이 따른다.
특히 여단 본부나 대대 본부에서는 지도를 펴놓고 도상으로 판단을 많이 하기 때문에 시 시 각각으로 준동하는 게릴라들의 상황에 대처하기에는 너무 미흡한 때가 많았던 것도 흔히 있는 경우였다.
더구나 우리 중대장은 내가 볼 때도 어떤 상황을 대대장에게 정확히 전달을 하고 이해를 구하는 적극성이 부족했던 것은 물론이었거니와 우리 소대장끼리의 말로는 이미 대대장에게 찍힌 몸이라 아예 건의도 잘 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설사 헸다손 치더라도 대대장에게 묵살을 당할 것이라는 말로 곧잘 수근 거렸다.
내 말을 듣고 한참을 생각을 하던 중대장은 만약 청룡부대 본부나 대대본부에서 우리 정찰기에다 확인을 하는 경우가 생기면 문제가 되지 않겠느냐는 걱정을 해 나는 그러면 다른 방법이 있는지 한 번 알아보겠다는 대답을 하고는 즉시 관측 장교인 이 소위를 불렀다.
이 소위는 내가 하는 말을 듣자 바로 자기 바지 주머니에 있던 쪽지를 꺼내 보고는 무전기 주파수를 곧 상공에 떠 있는 L-19의 항공장교와 맞추고는 교신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옆에서 듣고 있자니 이 소위와 항공 장교는 서로 간접적으로만 아는 사이 같았는데 더욱 놀랬던 것은 이 소위의 그 어눌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말솜씨였다.
결국 우리는 수가 만수인 이 소위의 덕분으로 L-19 정찰기의 양해를 얻어 사지로 들어가지 않고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서 땡땡이를 칠 수 있었고 우리는 그 후로도 어떤 불편한 문제만 생기면 곧잘 이 소위를 해결사로 앞세웠던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계속)
'★해병대 장교 글 > 해간35기 구문굉'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꽃처럼" (나의 해병대 일기) (34) 뒤 돌아 보며/ 털보 정중위 (0) | 2015.07.24 |
---|---|
"불꽃처럼" (나의 해병대 일기) (33) 뒤 돌아 보며/ 미 해병대 전우들 (0) | 2015.07.24 |
"불꽃처럼" (나의 해병대 일기) (31 ) 만감의 교차 (0) | 2015.06.09 |
"불꽃처럼" (나의 해병대 일기) (30 ) 짧은 인연 (0) | 2015.06.09 |
"불꽃처럼" (나의 해병대 일기) (29) 20만 불은 누가 먹었나? (0) | 2015.06.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