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장교 글/해간35기 구문굉

"불꽃처럼" (나의 해병대 일기) (34) 뒤 돌아 보며/ 털보 정중위

머린코341(mc341) 2015. 7. 24. 12:20

"불꽃처럼" (나의 해병대 일기) (34) 뒤 돌아 보며/ 털보 정중위 


 작전 중의 중대 본부

 
정 중위는 나보다 나이로나 학번으로는 1년이 아래였지만 임관은 나보다 1기가 빠른 선임 장교였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났던 것은 백령도에서였는데 내가 소대장을 막 시작할 때 그는 정훈장교로 뽑혀 해병대 전체 부대별 군가 경연대회를 준비하느라 매우 분주하게 설치고 있었다.


특히 그 당시 부대장이었던 황 대령은 자기는 겨우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을 두었을 뿐인데 정 중위의 아버지는 자기와 비슷한 나이면서도 정 중위와 같은 씩씩한 아들을 두었다면서 정 중위를 더욱 귀여워하곤 했었다.


정 중위는 내가 알기로 호남지방의 어느 시골에서 자라 중앙대학을 나온 매우 판단이 빠르고 말을 빨리하는 장교였는데 외모는 작은 키에 약간 말라 보이는 얼굴이었으나 그는 면도를 하루만 걸러도 시꺼멓게 구레 나루 자국이 뚜렷이 보이는 털보였다.

 

내가 부대 본부에 볼일이 있어 들를 때면 자주 서로 대화를 나누었고 차츰 서로가 친숙한 사이가 되어 단편적이나마 개인의 신상에 대한 얘기까지도 서로 나누는 그러한 사이가 되었다.


자기가 대학을 다닐 때 혼자 자취를 하며 조기찌게를 끓여 먹던 얘기며 애인이 내가 자란 부산 충무동의 처녀라는 얘기며 온갖 일들을 서로가 해 가며 더욱 친숙 해 졌다.

 

그러던 중 나는 잠시 부대 인사장교를 하다 당시 경북 영천에 있던 육군헌병학교로 위탁교육의 명을 받아 그만 백령도를 떠나게 되었고 그도 역시 나보다 한발 빠르게 다른 부대로 전출이 되어 우리는 서로 보지 못하게 되었다.


그런 후 세월이 지나 내가 처음 월남에 도착 해 구정공세가 터짐과 동시에 소대장의 명을 받고 겁 없이 야밤에 미 해병대 수륙 양용 차 두 대를 지휘하여 호이안 외곽 5대대 27중대를 찾아 갔을 때 뜻밖에 그 곳에서 나를 맨 먼저 뛰어 나와 반기던 장교가 털보 정 중위였기 때문에 나는 그와의 무슨 인연이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던 적이 있었다.


그는 면도를 얼마나 하지 못 했는지 마치 산적 같은 얼굴을 하고 27중대의 화기 소대장(자기 소대의 기관총 6문은 모두 각 소대에 배치시키고 중대장을 보좌하여 중대의 작전 지휘를 주로 하는 직책임)을 하고 있었는데 역시 중대장을 대신하여 각 소대장들에게 명령을 하달할 때의 말투는 예나 다름 없이 총알처럼 빨라 어떤 때는 여러 사람들 모두가 잘 알아듣기가 힘들 정도였다.


그리고 내가 부상으로 후송 된 27중대 1소대장을 대신하여 그 소대를 맡은 다음부터는 나와 그와의 관계는 서로 명령을 하달하고 명령을 받는 입장이 되었는데 실로 알게 모르게 그가 다른 소대장들보다 나를 봐주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소대장들을 불러 놓고 껄끄러운 정찰임무나 특수 임무를 수행할 소대를 정할 때는 다른 소대장들보다 먼저 나를 지목하고는 열심히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그럴 때면 나는 열심히 자기 말을 들어가며 상황을 상상 하느라 눈의 초점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있으면 그는 급한 말투로

“이봐, 구 중위! 아니 남의 말을 듣지도 않고 그렇게 멍청히 있으면 어떻게 해? 이거 영 불안해서 1소대는 못 보내겠네.”하고는 쇼를 한번 한 뒤 다른 소대장을 총알 같이 다시 지목을 하곤 했다.


말하자면 새로 온 소대장에다 멍청하기까지 하다는 결론으로 나를 빼주는 재간꾼이었다.


내 기억으로는 아마 두 서너 차례 정도 이런 이유로 해서 나를 봐준 것으로 추측이 되지만 다른 소대장 모두가 내 동기생들인지라 내가 멍청하다는 말에는 동의를 하지 않았을 것이고 내심으로는 아마 “씨벌 놈들 자기들끼리 서로 친하다고 잘 놀고들 있구먼.” 하고 분명 돌아서서 불평을 하고 있었으리라 생각 된다.


나중에 모두가 어려운 임무를 끝내고 내가 귀국을 했을 때는 소상히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좌우지간 자기의 반려자가 될 여자의 집에 내가 어떤 심부름을 했고 그 후로 정 중위로부터 고맙다는 편지도 한통 받았던 것으로 기억 된다.

 

우리는 그런 뒤 여태껏 서로 소식이 끊겼고 나는 털보 정 중위가 부산 여인과 결혼을 해 지금쯤 처가인 부산에서 살고 있지나 않은가하는 생각도 해 보고 있다.

 

내가 부산에서 서울로 집을 옮긴지도 벌써 40년이나 지난 지금 그 당시의 정 중위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실로 가늠하기가 힘들다.


그리고 이제 사 그리운 얼굴들이 하나씩 둘씩 떠오르기 시작하는 것은 나도 그만큼 흘러간 세월에 집착을 하는 노인의 대열에 이미 끼었다는 그 징표가 아닐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