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전 참전수기/해병179기 황석영

"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26회>

머린코341(mc341) 2015. 7. 29. 14:25

해병179기 황석영의 해병이야기 -

 

[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 4. 땡볕 <186>

미군 합동작전 휩쓴 마을 들어갔다가…

 

한 달이 지나자 내가 배속되었던 중대가 교대로 작전에 투입되었다.

쾅나이 시의 서쪽 외곽에서부터 동쪽 1번 도로 부근에까지

널려있는 자연 취락과 밀림을 정리해 나가면서

미군과 남베트남군의 작전을 도와주는 형국이었다.

 

우리는 또한 3개 중대가 제각기 방어진지를 구축해서

인근을 장악해 가는 순서를 밟고 있었다.

해병대의 작전은 육군과 달리

몇 개 연대가 거대한 화력지원을 받으며 광범위한 지역을 휩쓸어 나가는 식이 아니라

언제나 중대 단위의 수색 기동 작전이었다.

 

그래서 병력의 희생도 많았고 항상 거점을 옮겨다녀야만 했다.

내가 일차적으로 미군과의 합동작전이 휩쓸고 지나간

마을에 들어갔던 일은 잊히지 않는다.

대개 마을 외곽에는 통행로가 될 만한 지형에

부비트랩이 묻혀 있기 마련이었다.

게릴라들은 부비트랩으로 가볍게는 수류탄에서

각종의 수제폭탄과 아군 측으로부터 노획한 각종 포탄과

크게는 대전차지뢰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인계철선을 이용해서 사람의 발에 걸리면

핀이나 점화장치를 작동하게 장치하거나

밟았다가 떼면 터지게 만들어 두었다.

 

밀림의 통행로에는 원시적으로 만든 덫과 함정도 많이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흔한 것이 항불전쟁 시기부터 사용했다는

독을 바른 날카로운 대나무침이었는데

잘못 디디면 단단한 정글화의 밑창을 뚫고 들어와

발바닥을 꿰뚫고 발등 위로 솟아오를 정도였다.

 

 

행군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일시에 부어 올랐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열대의 날씨에 재빨리 썩어 들어가기 시작한다.

후송되어도 운 나쁘게 발목을 잘라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도 그것은 잘못 디딘 당사자에게나 해당되지만

대전차지뢰라도 밟으면 저 하나가 아니라

부근의 거의 전 소대 병력이 사상을 입어야 했다.

 

그래서 중대의 수색 행군수칙은

언제나 좌우와 중간으로 산개하게 되어 있었다.

 

마을이 보이면 먼저 좌우의 브레이킹 소대 중에서

지형지물이 좋은 위치의 소대가 우회하여 마을의 한쪽 퇴로를 끊고

대각선 위치에서 다른 브레이킹 소대가 후방을 차단하면

주공을 맡은 소대가 마을로 진입해 들어가는 식이었다.

 

물론 소대끼리의 연락은 통신병들의 무선기로 유지한다.

각개 소대의 진격도 비슷한 형식인데

먼저 경험 많은 선두 첨병이 앞으로 나아가고

그를 커버 할 두어 명의 첨병이 일정한 거리로 뒤를 따른다.

 

소대가 분대별로 나뉘어 이동하면서

뒤에는 다시 후위 첨병을 세웠다.

 

전선과 후방이 따로 없으니

어디에서 저격이 시작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선두 첨병의 일차적인 임무는 통행로의 지형지물을 관찰하면서

부비트랩이 없는가를 확인하는 일이었다.

 

부비트랩이 발견되면 첨병은 손을 들어 행군을 정지시키고

보조자와 함께 제거에 나선다.

또는 전방에 매복이 있는 기미도 알아차려야 한다.

 

선두 첨병은 부비트랩의 위험에 제일 먼저 노출되어 있지만

적이 전방에 있을 때에는 오히려 덜 위험했다.

적들은 보통 본대의 행군이 접근할 때까지

선두 첨병을 통과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선두 첨병이 부비트랩을 자신의 통행로에서 발견하지 못했다 할지라도

부근의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서투른 병사가

다른 부비트랩에 접촉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림=민정기


출처 : 중앙일보,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ctg=12&Total_ID=16205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