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위 떠오르는 ‘한국형 핵추진잠수함’
핵잠 시속 37~47㎞… 北 SSB보다 1.5배 빨라 ‘추적’ 용이해
‘헤비급 펀치’ 핵잠, 원점공격 가능… 韓, 원자로 기본설계 보유
최대 6개월 수중작전 가능
敵 추적하며 즉각 타격도
해군, TF 가동하며 도입 검토
“佛 바라쿠다급 모델이 적절
결단만 내리면 2년내 건조”
IAEA·美 협정만 잘하면 돼
개발 7년-1조5000억 들어
해외서 도입해도 비용 비슷
▲ 김정은(왼쪽 다섯 번째)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7월 23일 함경남도 신포조선소에서 연말 진수식을 목표로 건조 중인 신형 잠수함 앞에서 업무 지시를 하고 있다. 이 잠수함은 북한이 최근 시험 발사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북극성-3형’ 3∼4발을 탑재할 수 있는 3000t급 신형 탄도미사일 잠수함(SSB)으로 추정된다. 연합뉴스
북한이 지난 2일 신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북극성-3형’ 시험발사에 성공하면서 국내에서도 북한의 비대칭 전력에 대응하기 위해 핵(원자력) 추진 잠수함을 도입·확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 터져 나오고 있다.
북한이 연말을 목표로 한 3000t급 신형 탄도미사일 잠수함(SSB) 개발을 완료하면 SLBM 3∼4개를 탑재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며, 이는 동북아시아 군사·안보 판도를 바꾸는 ‘게임체인저(Game Changer)’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군사 전문가들은 북한 SSBN을 감시하려면 물속에서 오랫동안 고속기동할 수 있는 ‘진짜 잠수함’인 핵잠수함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해군도 지난 10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핵잠 확보는 국가정책에 따라 결정될 사안으로, 해군 자체 검토를 위한 태스크포스(TF)를 운용하고 있다”면서 처음으로 구체적 계획을 공개하면서 ‘한국형 핵잠’에 대한 관심이 부쩍 커지고 있다.
1 한국에 핵잠수함이 필요한가
잠수함 전문가들이 꼽는 일차적 이유는 수면 위로 스노클(잠수함의 수중 통기)을 자주 해야 하는 디젤잠수함으로는 상대편 잠수함 추적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추적용 잠수함은 SLBM 탑재 잠수함보다 1.5배 이상 속력을 낼 수 있어야 하는데, 이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라도 핵잠이 필수적이라는 게 이들 전문가의 주장이다.
문근식 국방안보포럼 대외협력국장은 “핵 방어를 위한 ‘킬 체인(핵·미사일 등 핵심 위협 긴급타격)’은 ‘원점(原點) 공격’이 핵심으로, SLBM을 탑재한 상대 잠수함을 공격하려면 아군 잠수함이 계속 따라다니면서 감시해야 한다”면서 “이렇게 적국의 핵무기 탑재 잠수함을 계속 미행하다가 잠수함에서 SLBM을 발사하려는 순간 아군 어뢰로 즉각 파괴해야 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심승섭 해군참모총장도 지난 10일 국감에서 “핵잠은 장기간 수중 작전이 가능하며 SLBM을 탐지한 뒤 지속적으로 추적하고 격멸하는 데 가장 유용성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만 잠수함을 잠수함으로 막는 것은 불가능하며, 핵잠도 무제한 잠항이 가능하지 않은 데다 결정적으로 소음 문제가 있는 만큼 핵잠이 꼭 필요하지 않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2 핵잠과 디젤잠수함의 차이는
속력 면에서 핵잠이 KTX라면 디젤잠수함은 완행열차다. 핵잠은 평균 시속 37∼47㎞로 지구 한 바퀴(4만120㎞)를 도는 데 40여 일이 걸리는 반면, 디젤잠수함은 평균 시속 11∼15㎞로 140여 일이 걸린다.
핵잠은 도중에 보급품 및 연료를 재보급받거나 기항지도 필요 없다. 수중작전 능력에 있어 핵잠은 무제한이지만 디젤잠수함은 거의 매일 의무적으로 수면 가까이 올라와야 하고 속력 및 수중작전 지속능력이 떨어진다.
또 공격능력 면에서 핵잠이 헤비급 펀치라면 디젤잠수함은 플라이급 펀치 수준, 생존능력(은밀성) 면에서는 핵잠이 스텔스함이라면 디젤잠수함은 세미 스텔스함에 비유된다.
3 해군의 핵잠 도입 입장
해군이 직접적으로 도입 의사를 아직 밝히지는 않은 상태지만, 국감 등을 통해서 긍정적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해군이 자주국방네트워크에 의뢰해 2017년 10월∼2018년 4월 작성한 ‘한반도에서 원자력 추진 잠수함(핵잠)의 유용성과 건조 가능성’ 연구용역보고서도 해군의 이 같은 입장을 간접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지난 10일 백승주 자유한국당 의원이 처음 공개한 이 보고서는 핵잠을 “유사시 대북 기습타격과 북한 잠수함 활동 및 주변국 억제를 위한 효과적인 ‘수중 킬체인’ 무기체계”라고 밝히고 있다.
또 보고서는 한발 더 나아가 북한의 SLBM 도발에 대비해 “핵잠 자체 개발과 병행해 프랑스 바라쿠다급 핵잠수함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4 한국형 모델은
특히 보고서는 해외모델로는 프랑스 바라쿠다급(5300t) 핵잠을 꼭 집고 있다. 자체개발을 하면서도 바라쿠다급 잠수함을 도입해서 역설계 하자는 주장이다.
바라쿠다급 잠수함은 농축률이 20% 미만인 핵연료를 사용하는 만큼, 고농축을 제한한 한·미 원자력 협정 위배 논란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루비급 잠수함 후속인 바라쿠다급 잠수함은 프랑스 DCNS사가 개발한 것으로, 지난 7월 바라쿠다급 핵잠 1번함 쉬프랑함 진수식도 거행된 바 있다.
한국 핵잠의 모델로 부각된 바라쿠다급 핵잠은 안전잠항 심도 400m, 최고 속력은 수중 25노트(시속 46㎞), 수상 14노트(시속 26㎞)로 60명의 승조원이 탑승하며 최대 70일까지 작전할 수 있다.
4문의 533㎜ 어뢰발사관과 12개의 수직발사대(VLS)를 갖추고 있으며, 어뢰와 기뢰, 대함미사일과 순항미사일로 무장하고 있다.
5 韓 핵잠 기술력은 어느 정도?
현재도 정치적 결단만 내리면 2년 안에 핵잠을 건조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 평가다. 김시환 글로벌원자력전략연구소장은 “원자력연구소는 2004년 핵잠 원자로 기본설계를 마쳤다”며 “정부가 결심하면 2년 안에 원자로를 제작해 잠수함에 장착할 준비를 갖췄다”고 밝혔다.
김 소장에 따르면 2004년 핵잠 원자로의 기본설계를 마치고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중소형 원자로 표준 설계인가(SDA)를 앞둔 상태에서 사업단 해체로 핵잠 개발이 중지됐다는 것.
문 국장도 핵잠 기술 수준과 관련해 “우리는 현재 세계 5위의 원자력 기술 강국이며, 소형 원자로를 수출할 정도로 원자력 기술 자립을 달성했다”며 “모든 기술을 다 갖고 있는데, 원자로 기술과 잠수함 건조 능력은 다 갖춘 만큼 국가적 의지만 있으면 언제든 가능하다”고 말했다.
6 국제 규제 피할 수 있나
핵확산금지조약(NPT)에 핵잠 개발 제한 규정은 없다. 다만, 한국의 우라늄 농축을 일정 정도 제한하고 있는 한·미 원자력협정과 국제원자력기구(IAEA) 안전조치 협정 문제 등은 남아 있다.
이에 대해 해군 용역 보고서는 핵잠 도입 필요성을 주장하면서 “한·미 원자력협정을 개정해 ‘함정 동력원으로서 원자로 이용 관련 조항’을 추가”할 것을 권고했다.
IAEA의 안전조치협정 조항과 관련해서도 사찰 수용을 전제로 한다면 핵잠 개발이 가능하다는 게 보고서의 결론이다. 문 국장은 핵연료의 안정적 확보와 관련해서는 2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하나는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우라늄 원료를 사오는 것이다.
우라늄 순도 20% 미만은 국제시장에서 상용으로 확보할 수 있으며, 핵무기 제조 가능성에 대한 국제사회의 오해도 잠재울 수 있다는 주장이다. 다른 하나는 미국과 협상을 하는 방안이다.
2015년 개정된 원자력 협정에 따르면 한·미 고위급 간 합의하면 순도 20% 수준으로 우라늄을 농축할 수 있도록 돼 있는데, 이 부분을 미국 측과 협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문 국장은 내다봤다.
7 한국은 과거에 핵잠 개발 안했나
과거 노무현 정부는 원자력잠수함사업(362사업)단을 구성하고 시동을 걸었으며, 민간 차원에서 소형 원자로 설계 부문에서 큰 진전을 이뤘다. 이후 문재인 대통령이 핵잠 개발을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으며, 2017년 국방 예산에 국산 핵잠 개발을 위한 연구용역비로 1억 원을 책정했다.
원자로와 함께 한국형 핵잠의 플랫폼이 될 수 있는 한국형 3000t급 중(重) 잠수함 1번함인 도산안창호함(SS-083)도 지난해 9월 진수식을 가졌으며, 2년간 전력화 과정을 거쳐 2020년 실전 배치될 예정이다. 안창호함에는 사거리 1500㎞의 국산 순항미사일 ‘현무-3C’가 탑재될 예정이다.
8 건조 비용은 얼마
핵잠은 디젤잠수함에 비해 엄청나게 비싼 건조비용과 오랜 기간이 소요된다. 해군 용역보고서가 국내에서 핵잠 개발 시 획득 기간 7년, 총 1조3000억∼1조5000억 원의 비용을 예상하면서 바라쿠다급 탑재 원자로를 기술도입해 개발하는 역설계 방안을 제시한 이유다.
보고서는 국외에서 도입할 경우에도 바라쿠다급이 적절하다고 제시하면서 구매비용으로 1조7000억 원을 예상했다. 북한도 핵잠 건조를 준비하는 정황이 38노스 등 미국 인공위성에 포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은 기술적 문제를 떠나 천문학적 건조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지가 핵잠 개발 성공의 열쇠가 될 것으로 보인다.
9 전 세계 핵잠은 어떤 것
미국·러시아 등이 보유하고 있는 잠수함은 모두 원자력으로 움직이는 핵잠이다. 어떤 무기를 갖고 있는지에 따라 1종류의 SSBN과 3종류의 공격용 잠수함(SSN)이 있다.
SS는 잠수함을 의미하며 B는 탄도미사일을, N은 원자력 추진을, G는 순항미사일을 뜻한다. SSBN은 SLBM을 보유한 핵잠수함이다. 북한의 SLBM 1발 장착 신포급(2000t) 잠수함과 현재 개발 중인 고래급(약 3000t) 디젤잠수함은 SSB이다. 북한이 개발하려는 핵잠은 전략핵을 항시 장착하고 있다고 해 ‘전략원잠’이라고도 불린다.
미국은 1981년 이후 SSBN으로 오하이오급 18척을 운영해왔는데, 냉전 종식 후 1990년대부터 핵무기 중요성이 줄어들자 이 중 4척은 유도미사일 잠수함(SSGN)으로 개조했다. SSGN은 전략핵 대신 토마호크 순항 미사일 154기를 실을 수 있다. 한국이 개발하려는 핵잠은 탄도미사일 탑재 SSBN이다.
10 북한은 핵잠 SLBM 개발하나
북한의 핵잠 개발 관련 정보는 2016년 9월 한 차례 노출된 적이 있다. 북한 전문 매체 38노스가 발표한 보고서에서 직경 약 10m의 북한 잠수함 내부 모습이 포착된 사진이 실린 것. 이는 중국의 샤(夏·6500t)급 잠수함에 해당하는 크기로, 이후 북한이 핵잠을 준비하고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북한은 2016년 8월 북한 최초의 SLBM인 북극성-1형 시험발사 성공으로 세계 7번째 SLBM 보유국이 됐으며, 핵탄두 장착 1개 SLBM을 2000t급 신포급 잠수함 함교탑에 탑재한 ‘일격필살(一擊必殺)’ 개념의 전 세계 잠수함 역사상 유일무이한 시도를 했다.
북한은 다음 단계로 지난 2일 시험에 성공한 북극성-3형 SLBM 3∼4기를 장착할 로미오급 개량형 3000t급 신형 잠수함 진수식을 준비하고 있다. 디젤잠수함으로 잠대지(潛對地) SLBM 발사 시 한계가 따르므로 북한이 궁극적으로 핵잠 개발을 병행할 것이라는 게 군사 전문가들의 대체적 전망이다.
정충신 기자 csjung@munhwa.com
[문화일보] 2019.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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