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 : 군벌과 군조직 -1-
보통 ‘자고 일어나니 세상이 뒤집혀있었다’라는 표현이 있다. 맞는 말이다. 1961년 한 소장이 자신을 추종하는 자들과 함께 한강교를 건널 때도 그랬다.
자고 일어나니 군사혁명위원회 위원장 장도영 중장과 부위원장 박정희 소장이 권력의 최고봉에 앉아 있었다. 또 한달 뒤에는 일어나보니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장도영 중장이 반혁명모의죄로 체포되어 있었다.
부의장이 의장이 되었고, 의장은 대통령이 되었다. 이젠 대통령이 된 그도 자신이 초래한 일에서 자유로울 순 없었다. 집권 18년만인 어느 날 밤 서울의 궁정동 안가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은 여대생 한명과 가수 한명을 끼고 술에 마시던 중 자신이 아끼던 부하의 총에 맞아 숨졌다. 몇시간 내로 그 부하도 체포되었고 권력에서 완전히 제거되어버렸다. 정말로 자고 일어나니 세상이 뒤집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다시 세상이 뒤집혀버렸다. 6시간 30분만의 일이었다.
모든 일은 6시 반 한남동의 한 정문 앞에서 시작되었다. 그냥 얼핏 본다면 꽤 부유한 사람들이 살고 있나보구나 하는 정도로 생각하고 지나쳐버릴만한 곳이었다. 조금 더 자세히 들여본다면 몇가지 다른 점들이 보였을 것이다.
한 예로 보통 남색 옷을 입고 있는 경비원이 없고 얼룩덜룩한 위장복을 입고 새빨간 명찰을 찬 자들이 총을 들고 경계를 서고 있다는 것이 있었다. 그들은 해병대원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경비하고 있는 진입로는 국방부장관, 해군참모총장, 공군참모총장 공관 등 이 나라에서 꽤나 권력있는 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그날 해병대원들은 승용차 한 대가 육참총장 공관을 향해 들어올 것임을 알고 있었다. 육군참모총장 공관에 들를 보안사 정보처장과 헌병 범죄수사단장임을 통보받았기 때문이었다.
이날 오전 육군본부 총장실에서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육군참모총장 정승화 대장에게 김재규의 대통령 시해 사건에 대해 보고할 사안이 있다고 말한 결과였다.
구두로 할만한 사항이 아니어서 보안사 정보처장을 보내겠다고 했다. 실제로 총장공관에 간 사람은 정보처장 권정달 대령이 아닌 인사처장 허삼수 대령이었다. 그리고 권정달은 하나회가 아니었다.
두 승용차들에게 경례를 붙인지 한 10분이 지났을까, 이번에는 왠 육군헌병 백차와 마이크로버스 2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이건 통보받지 못한 사항이었다.
한 중사가 대체 무슨 연유로 이곳에 오게 된 것인지 묻기 위해 운전석 쪽으로 다가갔다. 백차 안에 타고 있는 사람은 대령 한명에 중령 두명, 그리고 운전병이었다.
“필승. 무슨 일이십니까.”
“육군참모총장 공관 교대병력이다.
“몇명입니까.”
“58분의 3(사병 58명과 장교 3명)이다. 계엄 상황이기 때문에 공관 경비를 강화하라는 지시다.”
중사는 의아했다. 이런 병력들을 실은 차량들이 진입한다는 통보도, 또 그들이 총장공관 경계업무로부터 해제되고 육군 헌병 병력들이 경비를 맡게 될 것이라는 통보 또한 받지 못했다. 아무래도 윗선에서 문제가 생긴 듯 싶었다.
“연락받지 못했습니다. 확인해 보겠습니다.”
중사는 뒤돌아 위병소 쪽으로 가서 수화기를 집어들었다. 육참총장 공관 경비대장 김인선 대위와 통하게 되는 전화기였다. 그러나 그는 전화를 걸 수 없었다.
그 직후 버스에서 하차한 33헌병대 병력 9명이 그와 위병소에 있던 나머지 근무병력을 무장해제한 후 구금해버렸기 때문이었다. 방해물이 없어진 이 병력들은 곧 차를 출발시켜 공관 쪽으로 향했다.
한편 먼저 통과한 두 차량에도 허삼수 대령과 우경윤 대령만이 탑승한 것은 아니었다. 일제 토요타 슈퍼살롱에는 그들을 포함해 6명이 탑승해 있었다.
앞좌석에는 운전석에 보안사 수사관 신동기 준위, 그 옆에 수사계장 김대균 소령과 수사관 박원철 상사(당시 슈퍼살롱 앞좌석은 갈라지지 않고 쭉 펴져있는 형태였다), 뒷좌석에는 우경운 대령, 허삼수 대령, 그리고 또 다른 수사계장 한길성 소령이 있었다. 슈퍼살롱은 육참총장 공관 앞에서 정확히 멈췄다.
허삼수, 우경윤 대령과 두명의 보안사 수사관들이 총장공관으로 들어갔고, 한편 총장공관 정문에서는 다시 한번 33헌병대가 해병대 공관 경비병력들을 무장해제시키고 있었다.
총장공관에서는 육참총장 전속부관 이재천 소령이 인터폰을 통해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에게 보안사 장교들이 도착했음을 알리고 있었다.
당시 정승화 총장은 육사 15기였던 자신의 처남 신대진 대령의 장군 진급소식을 직접 장모에게 말해주기 위해 외출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그는 그 복장 그대로 1층으로 내려갔다. 2층에는 둘째아들 정태연(당시 연세대 식품공학과 3학년)과 아내 신유경이 있었다.
허삼수와 우경윤 대령은 1층의 홀로 들어갔고, 두 사복 차림의 보안사 수사관들은 부관실로 들어갔다. 안에는 총장공관 관리장교 반일부 준위가 있었다. 이후 총장공관 경비대장 김인선 대위가 들어오자 김 대위가 호통을 쳤다. 부관실까지 보안사 요원들이 들어오는 게 탐탁치 않았다.
“너희들 뭐야? 나가 있어!”
그러자 나간 두 수사관들은 몇분 후 다시 부관실로 들어왔다. 아마 밖이 추워서 그랬을 것이라 판단한 반일부 준위가 그들에게 "커피 들겠소" 하면서 커피를 권했고,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반일부 준위는 당번병에게 커피를 시키기 위해 나갔으나, 당번병 김영진 병장의 새파랗게 질린 얼굴만을 볼 수 있었다.
“반 준위님, 홀로 가 보세요.”
그 말을 들은 반일부 준위가 홀로 뛰어들어가는 순간 총소리가 울렸다. 부관실 쪽이었다.
무슨 대령들이 보고를 하러 오냐고 불평하던 당번병 김영진 병장은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낯선 사람들이 1층을 꽉 채우고 있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그는 응접실 칸막이 뒤로 가 숨어 몰래 정승화 총장과 우경윤 대령의 대화를 엿들었다.
“총장님, 이번에는 저도 진급시켜 주시는 줄 알았는데 안 시켜 주셔서 조금 섭섭합니다.”
“그렇던가, 진급정원이 제한되어 있어서 자격있는 사람들을 다 시키지 못해 나도 진급 발표할때마다 서운해.”
진급 얘기로 슬쩍 웃으며 간단하게 분위기를 푼 우경윤 대령 옆에 있던 허삼수 대령이 본론을 말하기 시작했다.
“총장님께서 김재규로부터 많이 받으셨더군요. 그래서 총장님의 진술을 받아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협조해 주셔야겠습니다.”
정 총장의 얼굴이 굳어지는 것과 함께 분위기가 급격히 냉랭해졌다. 정 총장이 소리쳤다.
“내가 김재규한테서 돈을 받았다고? 누가 그따위 소리를 하던가? 김재규가 그렇게 주장해?”
정 총장은 김재규가 재판의 마지막 단계에서 살아보겠다고 물고 늘어지느라 헛소리를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허삼수 대령이 답했다.
“글쎄요, 저는 잘 모르겠으나 상부로부터 총장님의 진술을 녹음하여 오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녹음기 가져왔어?”
“녹음 준비가 되어 있는 곳까지 가셔야겠습니다.”
정승화 총장은 이전에 방첩부대장을 지낸 적이 있었고, 그래서 '녹음 준비가 되어 있는 곳까지 가주셔야 겠다'라는 말의 뜻을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연행을 뜻했다.
정 총장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 계엄사령관을 어떤 통보도 없이 연행하는가. 혹시나 대통령이나 국방장관이 전두환 소장의 보고만 믿고 잘못 판단하여 자신을 연행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이 아닌가. 그가 말했다.
“이놈들, 누가 그 따위 지시를 해? 내가 계엄사령관인데 대통령 이외에 그런 지시를 할 사람이 없는데 대통령이 그런 지시를 해?”
“예.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대통령이 직접 전화라도 했을텐데, 내가 직접 확인하기 전에는 그런 전화에 응할 수 없어!”
총장은 부관 이재천 소령을 불렀다. “부관! 부관!”
이재천 소령이 급히 달려와 정 총장에게 경례했다. 총장이 그에게 지시했다. “대통령 각하나 장관에게 전화 대!” 지시를 받은 이 소령은 급히 부관실로 들어갔다. 아직 부관실 안에는 보안사 수사관 두 명이 있었다.
총성이 울린건 바로 그 때였다. 부관실 안에서 총성 서너발이 울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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