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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특전단(SAS) 낙하산 소수정예 현대 특수부대의 원조가 되다

머린코341(mc341) 2014. 7. 3. 04:17

전투기 조종사보다 더 많은 적기를 파괴한 낙하산 소수정예 현대 특수부대의 원조가 되다 (국방일보, 2014.06.18)

 

<22>공수특전단(SAS)

 

적 후방 기지 기습 침투…교란·시설물 파괴 작전 수행

사막 건너 비행장 습격…나중에는 지프 이용해 큰 전과

 

서부 사막에서 아랍 스타일의 두건을 쓰고 정찰 임무를 수행 중인 SAS. 1943년까지 SAS는 바커스 기관총으로 무장한 지프를 타고 다녔다. 책미래 제공
 


SAS 모자에 부착되는 날개 달린 단검 배지. 책미래 제공
 

 1941년 10월 로버트 래이콕스 대령의 포스Z 제8특공대 예하 스코츠 가즈(Scots Guards)의 일원이었던 데이비드 스털링 중위는 이집트 카이로 병원 침상에 누워 있었다. 낙하산 사고로 인한 일시적 허리 부상 때문이었다.

 

 당시 포스Z의 특공대는 좌절 상태에 빠져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초기 독일군이 그리스 본토를 점령하고 연합국의 근거지였던 크레타 섬을 공격해 점령한 크레타 전투의 마지막 단계에 참여하기로 계획돼 있었지만, 전투가 패배로 끝나면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결국 포스Z는 1941년 7월 말 해체되고 말았다.

 

 스털링은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나는 일이 많았던 제8특공대의 기습작전을 어떻게 하면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을까를 병상에서 궁리했다. 그리고 전선으로부터 수백㎞ 떨어진 곳에 있는 적의 후방 기지, 특히 비행장 같은 시설물들을 목표로 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 목표물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사막이나 바다를 통하는 방법이 있었다. 바다를 통해 가는 방법은 1941년 크레타 철수 작전에서 영국 해군 특공대가 이미 사용했지만, 대실패로 끝나 다시 쓰기 어려웠다. 스털링은 4~5명으로 이뤄진 작은 분대들이 낙하산·잠수함·보트·차량 등을 이용해 동시다발적으로 목표물을 공격하는 것이 성공 확률을 더 높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스털링은 자신의 생각을 보고서로 만들어 무턱대고 카이로 최고사령부로 찾아갔다. 그리고 당시 중동 지역 최고사령관이었던 클라우드 오친렉 장군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할 기회를 잡게 됐다. 그 일로 스털링은 대위로 특진했고 적 후방에 침투할 65명의 병사를 선발해 작전을 수행하는 임무를 맡게 됐다.

 

 이 작전을 수행할 특수부대는 L-파견대, 공수특전여단(SAS, Special Air Service Brigade)이라고 이름 붙여졌는데 기만전술을 담당하고 있던 더들리 클락 준장의 아이디어로 생겨난 가상의 편제였다. 이집트에 완전 무장한 공수여단이 주둔하고 있다고 독일이 믿게 하려는 것이 이 아이디어의 핵심. 실제로는 65명의 병사만 있지만, 독일에는 많은 낙하산 부대원들이 준비 중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기만전술이었다.

 

 하지만 1941년 12월 16일 밤 실시됐던 최초의 기습 작전은 실패로 끝났다. 강풍과 모래폭풍 탓에 낙하지점으로부터 수㎞ 벗어난 지점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작전에 참여했던 55명 중 스털링을 포함한 22명만이 오언 대위가 이끌던 장거리 사막정찰대(LRDG·Long Range Desert Group)를 만나 구출됐다. 이후 사막 전문가들로 구성된 LRDG는 이듬해 SAS가 자신들의 지프를 운용하기 전까지 임무를 마친 SAS를 무사히 데려오는 택시 역할을 했다.

 

 첫 작전은 실패였지만 SAS는 비행장을 습격하는 등 혁혁한 전과를 올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목표물로 삼은 비행장에 있던 비행기들도 파괴했다. 그 결과 아일랜드인이었던 메인 대위는 연합국의 전투기 에이스 조종사들보다 더 많은 비행기를 지상에서 파괴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사막 전투가 끝난 후 SAS는 이탈리아와 에게 해, 그리고 프랑스에서 임무를 수행했다. 대부분은 낙하산을 이용해 작전 지역에 침투했지만, 지프를 이용하기도 했다. 연합국의 프랑스 상륙작전 이후 독일의 후방을 교란하는 임무를 수행할 때는 지프를 이용해 더 놀라운 성과를 이뤘다.

 

 이런 성과에 자극받아 많은 국가가 특수부대를 창설하면서 SAS는 현대적 의미에서 특수부대의 원조가 됐다. 그런 SAS의 상징인 날개 달린 단검 배지는 현재 3개의 SAS연대(21·22·23연대)가 부착하고 있다. 배지 디자인은 두 명의 SAS 장교가 했다. 옥스퍼드대 보트 클럽 회장이었던 조크 루이스 중위와 케임브리지대 조정 선수였던 톰 랭턴 중위가 그들. 이들은 카이로에 있는 셰퍼즈 호텔의 내부 장식에 있던 아프리카 따오기의 날개 모양을 바탕으로 하고 케임브리지와 옥스퍼드 조정 선수들의 유니폼 색을 조합해 특수부대의 원조인 SAS의 상징을 만들었다.
<자료=‘2차 세계대전 시크릿 100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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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국방일보, 정리=  김가영 기자 kky71@dema.mi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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