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군대/대한민국 특수부대

특전사 고문(CO)훈련은 처음이 아니다....

머린코341(mc341) 2014. 9. 8. 14:44

특전사 고문(CO)훈련은 처음이 아니다....

 

오늘 모 라디오 방송국 PD에게 전화가 와서 내용을 전달했는데, 그 내용이 뭐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고, 국내에 처음 훈련을 도입해서 매뉴얼도 없고 엉망인 훈련으로 아까운 인명이 희생되었다고 뉴스에서 연일 떠든다.

 

맞는 말이고 나 또한 아까운 청춘의 두 후배 하사에게 안타가운 마음 금할 길 없다.

 

그러나 [처음 미군의 것을 도입]이란 말은 사실이 아니다.

 

기사를 쓰려면 어디 좀 물어보고 쓰시던가들....

 

고문훈련은 특전사에서 80년대 이미 하고 있었다.

그러다 없어졌고, 명맥이 끊어졌다는 것이 맞다.


다른 공수부대 잇빨칼럼에도 썼지만, 그 훈련을 CO 훈련이라 불렀는데, 지금의 명칭은 아니고 현대 미군의 명칭으로 말하면 SERE가 올바른 명칭으로 생각한다.


그 기원은 바로 본인이 자대에서 하사 1호봉이었던 1985년. 우리 여단과 가깝고 꽤 교류가 있던 5공수특전여단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5여단의 한 고위장교분이 미국 군사유학인가를 하였고 거기서 '미군 조종사 고문극복훈련(CO)'를 접하고 그걸 5여단의 대대 대항 고문훈련으로 시험적으로 운영되었다.


당시 야전훈련에서 많이 겹치던 모 저수지에서 장거리 교신을 훈련하던 나는 5여단 병력이 팀별로 돌아다니는 걸 봤다. CO훈련 중이었다. 좀 이상했던 것이 특전사 팀은 전원이 단독군장으로 다니는 일이 거의 없고, 모든 작전은 완전군장에 나가서 은거지 잡고 타격/습격 가면 팀에서 2-3명은 군장에 작전물품과 무전기를 가지고 다니니까. 알고 보면 그건 자기팀 순서를 기다리며 전술훈련으로 돌아다니던 거였다.


그리고 중사 시절 부평에서 우연히 모병 따블백 5여단 동기를 만나 동향이라 시외버스에서 한 시간 반 정도 이야기를 듣고 나도 많이 놀랐다. 총 7단계의 고문훈련으로 적군으로 가장한 타 대대 인원이 북한군복에 북한 말을 쓰면서 너무 심한 고문들을 훈련으로 가했다. 7단계가 끝나면 빈 총으로 약실 총살 당하고 땅 구덩이에 던져지고 끝난다.

 

1단계는 언어 회유이나 2단계가 내 기억에 대바늘로 손톱 끝까지 찌르고, 몽둥이, 안면에 천 놓고 물 붓기, 주리 틀기, 거꾸로 매달아 코에 고춧가루 물 붓기, 물고문 전기고문 등등. 무슨 이근안 고문 같은 것들이었고, 이 후유증은 상당히 심했고, 고문 도중 타 대대 인원을 알아본 피고문자들이 욕설과 나중에 교대하면 보자 등등 살벌한 분위기를 연출했고, 1-3단계 안에 고문에 굴복해도 증언을 무시하며 거의 끝 단계까지 일부러 끌고 가려고 해서 더욱 고통스러웠고, 기절하거나 더 이상 불가능한 상태만 7단계 이전에 떨어져 나갔고, 이렇게 초반에 굴복한 자는 졸병일 경우 훈련 끝나고 결산?이 있기에 무서워 함부로 포기도 못했다. 신앙이 깊은 사람들이 잘 버티더라는 동기의 말도....


5여단에서 시작해 유격전문으로 이어진 이 훈련이 가혹했던 것은, 너는 물고문 너는 고춧가루가 아니라 1인이 이 모든 단계의 모든 종목?의 고문을 다 받아야 했다는 것이다.

 

유격전문 과정의 CO는 고문 받으면서 그 무서운 교관 조교에게 온갖 쌍욕을 다 퍼부어도 웃으면서 고문이 계속 갔다고....

 

특전사가 항상 그렇지만 이런 훈련 역시 지역대장인 소령과 인사계 상사도 예외가 아니었다. 지역대는 측정에서 아무도 빠지지 못한다. 말해준 내 동기도 걸레되어 시체구덩이에 던져 졌는데 옆을 보니 지역대장이 널부러져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타 대대 북한군 역할은 북한군복에 선그래스나 마스크 등으로 신분을 가렸고, 그 고문 내용은 분명 당시 미국에서 존재하던 '미 조종사 고문극복훈련' 교범을 사용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미 당시 미군도 물리적인 육체고문은 줄어들기 시작한 시점으로 추정한다.

 

이 훈련은 5여단에서 한 번 하고 끝났는데, 이 고문과정이 사령부 자대 인원 입교 훈련인 유격전문(레인저, 나중에는 특전문)의 한 과목으로 들어갔다.

 

특전문은 조금 특이한 교육으로 사령부 스쿠버와 함께 고통스런 악명의 교육으로 유명해, 명목은 산악조교 양성과 특수전 전문이란 교육이었지만 자대에서 사고치면 벌로 들어가는 경우도 있었고, 구타와 가혹행위 등 굉장히 힘들고 자기 마음대로 포기도 못한다고 봐야 한다.

 

하후생 시절 옆 내무반의 모병 14기 주축 유격전문 반 때문에 술먹고 내무반 습격해 야밤에 자다 일어나 쳐맞는 일이 종종 생겨, 어서 레인저반이 야전으로 나가기를 빌었었다.

 

저런 생 또라이들이 우리들의 자대 14기 고참이란 말인가 사색에 사색.

 

유격전문은 1년에 한 3-4기수가 나오고 기억에 한 기수는 많아야 60명 정도였다. 84년도 교육단에서 이 유격전문반으로 인해 항상 조심하고 있을 때, 이 교육에는 타군도 있었다. 유디티였는지 해병이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으나 고생 많이 했을 것이다.

 

보통 암벽등반, 공중탈출, 무성무기, 특전무술 등등을 하며 거기에 CO훈련이 추가된 것이다. 유격전문 마지막 기간이 되면 강원도나 충청도 외딴 산골로 들어가 도피 및 탈출 훈련을 시작하고, 결국 어떻게든 잡히게 되어 고문훈련에 들어간다. 원래는 종합전술훈련 뒤에 사령부 교육단으로 천리행군 복귀였는데, 결국 CO훈련 뒤의 천리행군은 불가라는 결론이 난다.

 

이번에 사고가 난 내용을 보면 이해가 힘들겠지만, 이 도피 탈출 생존 훈련은 총 3단계로, 먼저 전술타격 등을 하다 적에게 발각되어 추격과 도피를 시작한다,

 

2단계는 감금 상태로 원래는 포로가 잡힐 경우 곧바로 심문하면 반항의지나 체력이 남아 있어 굶기면서 완력이 풀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넋이 약간 풀리면 그때부터 3단계 심문/고문이 시작된다.

 

특히나 유격전문(특전문) CO훈련은 악명이 높아서 보통 여러 교육생들이 교육단에 돌아다니는데, CO훈련 끝내고 온 레인저 교육생들은 유일하게 열을 짓지 않고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왜냐하면 주리도 틀리고 해서 거의 병신처럼 어그적어그적 다니기 때문에 우린 멀리서 봐도 레인저인줄 안다.

 

일단 빨간 추리닝을 맞춰 입기도 해고 눈에 띠고... 천리행군 복귀 날 증상 2-3배 어그적어그적....

 

87년도 중사를 달기 위해 하사관 보수교육 들어가 일주일 유격 끝내고 조금 지나 레인저 반이 CO 끝내고 돌아와 보통 천리행군 끝난 직후보다 더 심한 상태로 다리를 절면서 병신들처럼 빨간 추리닝 입고 돌아디나는 걸 본다. 우리 하보수 안의 레인저 수료생들도 킥킥거리고... 유격전문 나온 동기들은 그 교관 조교들에게 이를 간다.

 

이 유격전문 CO훈련은 육체적 고문으로 시작되었다가 나중에는 후유증이 너무 심하다고 해서 특전문 교육 후반부에는 잠깐 정신적 고문으로 바뀌기도 했다.

 

서양의 특수전부대도 현재는 육체고문보다 정신적인 고문을 주류로 한다. 왜냐하면 총을 맞고도 잘 싸우기 위해서 총알을 맞아볼 수는 없는 것이고, 어차피 완벽하게 물리적 모든 고문을 대처할 수도 없는 것이기에 '정신과 대처요령, 의지'를 주류로 다룬다.

 

내가 카페에 번역한 앤디 맥랩의 80년대 초 SAS 후반 마지막 고문/심문 과정도 물리적인 고문은 거의 없고 정신적인 고문을 위주로 하고, 미 케네디 특수전학교 생존반이나 로빈 세이지 종합훈련에서도 포로심문과정이 있으나 그렇게 80년대 특전사에서 했던 너무도 심한 물리적 고문은 이제 하지 않는다.

 

앤디 맥랩의 경우를 보면, 정글전 과정을 통과하고 영국으로 돌아와 도피탈출 생존 통과훈련을 받는데, 며칠 간 잠을 안 재우고 사생아였던 맥랩의 신상을 가지고 어머니 욕까지 하면서 끈질기게 감정적으로 동요될 때까지 정신적으로 괴롭힌다.

 

이 유격전문 - 레인저 - 특전문 교육은 정확한 년도는 기억이 나지 않으나 90년대 중반 정도에 폐지되고, 대신 하보수교육을 들어온 인원의 필수 선택 교육 중 하나로 전환되었고, 이때는 고문훈련은 사라지고 '암벽/고등산악기술' 위주의 교육이 되었다. 21기 후배들이 중사를 달 무렵 그렇게 되었던 것으로 후배들에게 들었던 것 같다.


전인범 특전사령관님은 분명 이 5여단과 특전문의 CO훈련을 기억할 것이다. 이 외에도 장교분들의 상무대 유격훈련 후반부에 일부 비슷한 CO훈련이 90년대까지 일부 존재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내 부사관 따블백 동기회에 한 20명 모이면 거기 유격전문 수료자 한 5명은 항상 있다. 그리고 그렇게 유격전문을 받은 수료자인 원사들이 특전사 안에 분명히 상당수 존재한다. 문제는 그 명맥이 끊어진 것이다. [전문유격이 올바른 명칭인지도 모르겠다.] 그때 교관 조교는 다 군에서 나갔을 것이고 피교육생이었던 사람들이 원사로 남아있을 것이다.


이번 특전사의 발표를 보면, 육체적인든 정신적이든 일정한 고문/심문대처훈련을 앞두고 리허설 형식으로 실행해보다가 사고가 난 것으로 말했다. 문제는 앤디 맥랩의 SAS 기초과정 고문훈련 당시를 보면, 이 훈련과정 안에 군의관은 물론 심리학 전문가가 동참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심리학자는 교육생들이 현재 과정에서 심리적으로 얼마나 버티고 있고 SAS의 심리적인 자질까지 갖췄는가를 교육점수에 반영하는  두 가지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거 배워야 한다. 내가 번역한 많은 글에 보면 델타포스나 네이비씰 선발과정에도 심리학 군의관이나 전문가 등이 존재하면서 훈련을 지켜본다.


브라보 투 제로를 어디까지 믿어야할지 모르겠으나 앤디 맥랩의 SAS팀이 이라크군 고문/심문에 일정하게 대처해 성공한 것은 사실로 보인다. 그러므로 통과 과정의 정신적인 고문이었으나 이 훈련의 효과가 없다고는 말하기 힘들다. 다만 군의관 심리학 전문가는 필요하다.


그러므로 뉴스에 나온 매뉴얼의 미비는 틀린 말이 아니다.

 

설마 그런 일까지 벌어질까 그랬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점은 너무 가슴이 답답하고 아까운 청춘에 뭐라 선배로써 할 말이 없다. 


물론 85년도부터 시작되었던 이 CO훈련은 10년 길어야 15년 안에 끝나고 말았다.


그러나 나 개인적으로는 전인범 특전사령관님이 타격을 받지 않기를 바란다. 유가족 입장에서는 특전사령관도 궁극적인 책임이 있다고 느끼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모부대의발전을 바라는 입장에서 전인범 사령관은 분명 특전사를 좀 더 정예화하는데 신경을 쓰고 있었고, 대부분의 우리 예비역들은 이를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과거 두어 달에 한 번은 사령부 교육단이나 타 여단에서 사망사고가 계속 일어났지만 모두 그러려니 했다. 요즘은 언론의 부각을 받지만 그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나도 판단하기 힘들다. 몇 년 전에 모 여단 해상훈련에서 사망자 나왔을 때 한 줄 기사 달랑에 누가 신경이나 썼는가?...

 

군대에서 하는 훈련은 특전사가 아니라도 항상 위험하고, 그래서 사고도 나고 아까운 인명이 손실되거나 다치기도 하지만, 결국 훈련이란 전시에 나를 살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쟁이 안 나기를 나 역시 진심으로 기원하지만 실전이 닥친다면 우리가 하던 힘든 훈련 정도는 결국 아무것도 아니다. 또 다시 전장 환경에서 적어도 3일을 버텨야 병사답게 싸우게 된다.

 

평시 군대가 오래 지속되나 정말 체력의 극한과 수면부족에 굶으면서 해야 전투에서 이긴다. 여러 분이 보병 현역이셨다면 RCT 3일 동안 총 수면 5시간도 안 되는 상태. 이것이 우리가 전시에 싸우는 병사의 기본 상태다. KCTC에서 쫄쫄히 굶고 잠보다 어떻게 하면 이기나 온갖 피로와 체력 저하 속에 정신이 살아 숨쉬는 상태가 바로 전투에 준비된 진짜 상태라고 본인은 생각하기 때문이다. KCTC 훈련부대도 공격이나방어 한 번 하고 나면 병사들이 눈빛부터 달라진다고 한다.

 

요즘 같은 하이텍크 시대에 천리행군 같은 거 왜냐하면 묻는 분이 계실 것이다. 천리행군 4-5일 차 상태가 바로 실제 전투 전투피로와 같은 상태다. 천리행군도 한 3일차 들어가면 수면부족에는 적응된다. 다만 발이 좆나게 아프고 어깨가 군장 때문에 뽀개질 것 같고, 몇 시간 자고 일어나면 목이 안 들리고 손 하나 들기도 힘들다. 한 레벨이 지나가면 딱히 심탐도 안 느껴진다. (일단 군장의 쌀을 버리고도 싶고) 그리고 몸도 가벼워진다. 몇 숟갈 먹고 또 걷는다.

 

내가 특전하사관으로 자대에 도달하기 한 2년 전에 힘든 훈련 많이 사라졌다. 전에는 1년에 천리행군 두 번이었다.

 

전술종합과 유격천리라고 따로 천리행군했고, 2천리행군실험도 있었으나 병사 부상이 너무 극심해 결국 철회되었다.

 

그리고 810인가 보복계획에 따라 타격후 24km를 뛰는 훈련도 있었다. 도피탈출훈련인데 거의 다 토하고 지나가는 차에 뛰어들고 싶었다고 다리 밑으로 뛰어내리고 싶었다고 고참들이 하는 소리를 들었다. 추격제대가 뛰쫓아 오는 훈련.

 

특전사 고문훈련은 처음하는 게 아니다. 다만 명백이 끊어졌을 뿐이다. 유격전문의 CO는 일단 사령부 교육단 특교과 모든 교관 조교가 모두 완전 가학적 또라이라고 생각했다. 자기들이 짜준 작전계획을 불라고 고문하고 7단계 전에 포기해도 자백이 거짓이라고 몰아부치면서 모든 레인저 교육생을 강제로 7단계까지 끌고 갔다.

 

이 특교과 교관 조교들은 대부분 고공과 유디티를 모두 받은 사람들이었다. 

 

특전문은 두 가지 이유로 대부분 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

 

1. 특수수당이 없는 교육이다

2. 교육단 특교과 교관 조교 또라이에 사람 잡는 CO훈련. 


당시 유격전문 공식적인 마크가 있었으나 오히려 수료자들은 거의 달지 않았고, 스쿠버는 마크도 없었다. 대대 작전상황판에 교육 수료자 숫자만 써 있다.


요즘 군이 너무 실추되고 동네북처럼 되어가는데, 이러다 전쟁 나면 왜 실전적으로 빡시게 안 굴렸냐고 항의할 것은 오히려 국민들이다. 미군처럼 FM처럼 훈련 해보라. 내가 피곤해 죽겠는데 무슨 졸병을 갈구고 때릴 시간이 있나. 이번 구타사건은 80년대 군대를 나온 나도 충격이었다. 1년에 간부들이 반은 집에 못 갈 정도로 야외훈련도 많고 대기도 많고, 여단 막사에 들어오면 거지 같은 밥도 아닌 밥을 먹다 식당밥 먹으면 눈물 난다.


이해를 못하겠지만 당시 야외훈련에서 우리가 가장 선호한 것은 동결건조 쇠고기 비빔밥이란 전투식량이었다.

 

양도 많고 맛도 좋았다. 우리는 정말 맛있었다. 그게 안 나오면 그냥 야전훈련에서 심하면 전술종합 6주 동안 모든 취사를 우리가 해먹는데, 보리 섞인 쌀에 진짜 많이 먹은 것은 소금기 쩐 깻잎 무말랭이 등등 정말 많이 먹었다. 그러니 여단 주둔지 돌아오면 정말 잘못했으면 정확히 모여 룰로 정해진 군번대로 서는 법과 맞는 법에 정확히 맞고 가혹행위 거의 없었다.

 

한 성격 개 같은 한 장교에게 당한 것 외에는 고참들에게 받은 얼차려나 구타 앙금 남은 것 일절 없다. 그런 일 벌어지는 부대는 처벌이 아니라 온 몸이 곤드레가 되도록 산악행군 같은 거 시켜야 한다. 한 보름 간. 군인이 뭔지 정신 좀 차릴 거다.


군대 훈련에서 피곤하면 피곤할 수록 너나 집합도 없고 자질구레한 것 가지고 남자가 쪽팔리게 건수 잡아서 애들 놀리고 장난치고 지저분한 짓 시키고 가혹행위하고....

 

우리도 맞았지만 그렇게 심하다는 생각 별로 못 했고 [물론 그런 분이 1기수에 한두 명은 꼭 있다] 그런 이야기 들으면 숨이 막히고 납득도 잘 안 된다. 물론 특전사는 제대하기 직전까지 고참이라고 고참행세 못한다. 장기자 고참들 있어서 꼴깝떨다가 쳐맞는다. 중사 때도 심심하면 대가리 박았다.


물론 특전사 각 여단 각 대대 각 지역대는 시기별로 분위기가 많이 달라서 어떤 곳은 매우 힘들었을 수도 있다. 그래서 난 우리 젠틀했던 지역대 14기 선배들에게 감사한다. 우리 윗 지역대는 분위기 전혀 다르다.


- 위 내용은 본인 개인의 주장이라고 표현될 수 없는 당시 근무한 사람들에게 기본적으로 알고 있는 평범한 지식에 불과합니다. 부대에 관심 없던 사람들은 "아니 왜 고문훈련이 처음이라는 거지...??" 할 겁니다.


중사 달고 태권도 숙달 지시가 내려오자 두 번째 대대장님 아래 앞올리기 100 옆차기 100 앞돌려차기 100 찍기 100 뒷차기 100 무한반복에 밤 9시까지 이어지고. 간부들은 결산 1분에 조용히 사라지고 나는 BEQ에 내려가 그대로 쓰려져 자다가 그대로 도복으로 출근 반복 일주일. 피곤해 죽겠는데 무슨 집합 무슨 구타 무슨 가혹행위. 앞서 말했듯이 이런 훈련은 대위나 상사도 절대로 예외되지 않는다.

 

중사나 중위 정도는 정말 퇴근 가능한 분대원이다. 


보자보자 하니, 사람을 돌봐야 할 주특기의 인생 경험도 없는 계급 하사란 친구가 엄청난 일을 방관하고 병사 머리를 스탠드로 찍고. 이런 부사관들은 엄벌 후에 전투부대 말단으로 보직발령해서 밑바닥 체험부터 시켜야 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부사관은 주특기가 무엇이건 보병분대부터 시작해야 한다.


바람이 있다면 모든 장교 부사관 병사들에게 '당신들은 잠시일지 몰라도 전시에 살아남아 적에게 총알을 박아야 하는 군인!...'임을 먼저 주입시켰으면 합니다.

 

그 개념이 약하니 이상한 짓들을 하지요. kctc 참가해 본 현역 출신들은 알 겁니다. 길지도 않은 군생활 반은 고참인데, 실제로 해보니 계급이고 개뿔이고 안 되면 못하면 정말 창피한 것이란 사실을... 

 

군인이 장교 부사관 병사 떠나서 저녁밥 든든히 먹고 오늘 목에서 노란물 안 넘어오고 발 뻗고 편안히 잘 수 있으면 고마운지 알아야 한다. 징집이다 나는 간부다 떠나서 상상하기도 싫은 전쟁 나서 체력부족 훈련부족으로 개죽음 당할 수 있다는 경각심이 있어야 한다.

 

내가 군인 답게 강해야 나를 지키고 적을 더 죽이고 그리고 국민을 지키는 것 아니겠습니까?

 

사고 내용으로 인해 옛날 기억도 나지만, 두 아까운 청춘 후배 하사들이 훈련준비 미흡으로 명을 달리한 것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고, 선배로써 미안하나, 남은 현역 후배님들은 기죽지 말고 더 열심히 열성적으로 군생활 보람차게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명을 달리한 전우 몫까지 열심히...


단결!!!?

 


출처 : 유용원의 군사세계, 잇빨중사
         http://bemil.chosun.com/nbrd/gallery/view.html?b_bbs_id=10061&pn=1&num=24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