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은 간다(4)
"1주일 한번씩 단독 무장한 채 천자봉 뛰어올라
당시를 떠올릴 때마다 다리에 힘이 솟는것 같아"
수년전에 해병대 출신 인기 만화작가가 모 월간지 기자와의 대담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자기는 조직에 얽매이는 것이 제일 싫다는 것이다.
특히 해병대에서 제대한 후에는 동창회에도 무슨 계 모임에도 나가지 않는다고 했다.
만화를 그리는 시간 외에는 오직 자유롭게 여행을 하는 것이 삻의 낙이라는 것이다.
만화예술가로서의 기질 탓도 있겠지만 해병대라는 조직의 울타리 속에서
얼마나 그가 자유분방한 생활을 그리워했겠는가 하는 짐작을 해 본다.
그 만화가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은 원초적으로 조직속에 얽매이기를 싫어한다고 본다.
그러나 새장 안에 있던 새는 창공을 비상하면서 옛날 자기가 살았던 새장 안의 평온함을
생각하고 그리워 할는지도 모른다.
난 이 천자봉 구보를 떠올릴 땐 그래도 다리에 힘이 솟는 것 같고 내 몸에 어느덧
푸른 군복과 빨간 명찰, 그리고 팔각모가 씌어져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주저 없이
『추억』을 택하겠다는 어느 노작가의 말이 인상깊다.
추억은 속박과 고통까지도 앗아가는가.
그렇게 숨가쁜 기억도 자유없는 조직의 일원으로 뛰고 또 뛰어던 천자봉 구보도
지금 여기 앉으니 너무나 아름다운 기억으로 되살아난다.
4.에미고개 눈물고개
안민 고개의 정상은 바로 경화동과 창원 성주사역 사이의 기차터널 윗 부분에 있는데
당시 우리 해병들은 이 고개를 「에미고개, 눈물고개」라고 불렀다.
40년 전 꼬불꼬불한 돌길이었던 이곳은 해병대를 거쳐간 사람들에게
땀과 눈물을 선사했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진해 신병 훈련소에서 3개월 정도 훈련을 받고 나면 산악전 훈련이라고 해서
상남훈련대(현 경남 도청 뒤편,창원대학 자리)로 이동하게 된다.
그리하여 상남훈련대에서 1개월간 각개전투니 침투사격 훈련이니 하는 교육과정을
이수하게 되어 있었다.
육상훈련을 받으러 이 눈물고개를 넘어 상남훈련대로 행군을 해 갔던 것이다.
이 과정을 마쳐야만 모든 훈련이 끝나게 되어 있었다.
행군 앞날 저녁은 행군 준비에 바쁘다.
우선 옷을 모두 손질해 배낭에 차곡차곡 넣어야 한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그 당시는 입대와 동시에 3년간 입을 내의 양말 침구까지
몇 벌씩 개인에게 한번에 지급 되었다.
그러니 그것만 배낭에 넣어도 짐이 많았다.
담요와 판초는 배낭위에 묶고, 식기와 삽은 배낭 뒤에 매달았으며
대검과 수통을 허리에 차고 철모를 쓰면 그것만 해도 한짐 잔뜩 되는데다
M1소총,... .분해한 경기관총 부품이나 탄통 등을 다 둘러메고 보면
짐의 무게만도 최소 50kg에서 70kg쯤 되지 않았나 싶다.
밤새 준비한 완전무장과 개인화기 공용화기를 둘러메고 이른 새벽 제2정문을 나선다.
그래도 후배기수들은 우리를 부러워 했다.
저 고개만 넘어갔다 돌아오면 훈련과정은 모두 끝나니 그럴만도 했다.
2정문에서 여좌동까지는 평탄한 길이다.
여좌동에서 꺽어 서서히 산고갯길로 오른다.
꼬불꼬불 몇 구비를 돌다보면 경기관총 다리와
AR 자동소총을 짊어진 전우들이 교대해 달라고 아우성이다.
이 코스는 신병 하사관후보생,장교후보생 할 것 없이 행군을 하도록 정해진 길이었는데
훈련 과정중 마지막 고비라고나 할까.
땀 범벅이 되어 드디어 고갯마루에 오르면『10분간 쉬엇!』하는 구령이 내린다.
멀리 내려다 보이는 진해만과 올망졸망 앉아있는 섬들이 보이는가 하면
먼 남쪽 하늘을 잠시 응시하면 어머님의 얼굴이 떠오른다.
땀이진 눈물인지가 눈앞을 가릴때면『행군 출발 15분전!』이란 구령이 벼락같이 떨어진다.
에미고개! 어머님 고개! 눈물고개!
『행군 출발 5분전』집합준비를 한다.
『집합! 행군 출발!』
출처 : 해병대인터넷전우회, 해병212기 박순갑 선배님 http://www.rokmc.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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