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일기/해병264기 박동규

춥고 배 고프고 졸립던 시절을 회상하며(4)

머린코341(mc341) 2015. 1. 6. 04:33

춥고 배 고프고 졸립던 시절을 회상하며(4)

(기습특공훈련 후에 남긴 나의 명언)


일병을 달고 첫 휴가를 나가 술로 몸을 버리고 귀대하여 보니,
전 중대가 도구해안으로 기습특공(IBS)훈련을 나가 있더군요.
귀대 당일로 저도 합류를 했는데,휴가기간 내내 술에 절어 보내서 그런지,훈련소에서의 훈련보다
더 힘이 들었는데 해병대 출신,그 중에서도 IBS교육을 받아보신 분들은 잘 알 겁니다.

도구 바닷바람에 날려오는 은빛 모래가루가 사근사근 씹히는 밥을 먹고,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밭에서
PT체조와 선착순으로 시작하여,역시 PT체조와 선착순으로 끝나는 그 훈련 말입니다.
훈련에 들어간 지 5일만에 겨우 똥이라고 쌌는데,염소똥이 몇알 떨어지고 말더군요.
하여튼 얼마 후에 훈련장소가 강릉 인근의 어느 해안으로 옮겨졌는데,
대통령이 참관하는 상륙작전에 투입되어 임무를 완수하였습니다.

당시 훈련 중에 제가 가장 힘들어했던 것은,바다 한 가운데에서 보트를 뒤집어
보트 안에 있는 물을 빼내고,다시 보트를 뒤집은 후에 그 보트에 올라가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원핑덤핑"이라 함-옮긴 이註)
보트 줄을 잡고 발로 물을 차서 그 반동으로 보트 위에 척 올라가야 되는데
다른 사람들은 비교적 쉽게 되는 그 동작이,전 유난히 안 되더라는 거지요.
몇차례 시도를 해 봤지만 번번히 실패를 했는데....

그 꼴을 보고 있던 수색대 조교가 저를 물속으로 끌고 들어가려 하더군요.
기합으로 바닷속에 처박으려는 거지요.
한번만 더 해보겠다고 사정을 한 후 다시 해봤지만 또다시 실패...
그러기를 몇차례 하다가,제가 스스로 조교 옆으로 갔습니다.

조교가 바닷속 깊이 저를 처박았습니다.
조교도 같이 들어갔다가 제가 충분히 물을 먹은 다음에,조교가 숨이 차면 바다 위로 끌어 올리길 몇차례
반복했는데,나중엔 코로 바닷물이 줄줄 흘러내리더군요.

그런데 사람의 의지는 참으로 대단합니다.
서너번째 잠수를 했을 때,제 머릿속에 문득
"나는 절대 여기서 죽지 않는다.이것은 훈련이다.이 ㅆ새끼가 나를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는 생각이 들자
숨이 멎어지면서 더 이상 바닷물이 입과 코로 들어오질 않더라는 겁니다.

아무튼 그로부터 일주일 정도는 국을 먹지 못 했는데,
그 짜고 쓴 바닷물을 배가 볼록해지도록 처 마셨으니 그럴만도 하지요.

참고로 말씀드리면,그럼 저는 영영 보트에 못 올라갔느냐?
그렇지 않습니다.다음에 조금 고참이 돼서 그 훈련을 받을 땐 단 한번에,쉽게 올라 타지더군요.

이제 제가 왜 "나의 명언 ~"하며 소제목을 붙친 연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동기모임이 있어서 금년에 처음 가 봤더니,저와 같은 중대에서 근무했던 이**동기가
그때,그 이야기를 하면서 제가 명언을 남겼다고 하던데 그 내용인즉,
"하면 된다!안 되면 되게하라!!"가 해병대의 신조이자 좌우명인 것은 여러분들도 잘 아시지요?
그런데 제가 제대말년에 그 사건에 대하여 이렇게 말을 했다는군요.
"안 되는 건,안 되는 거야!"

3. 멀고 먼 긴바이의 길


(5분대기 차량을 털기도)


해병대는 긴바이로도 유명합니다.긴바이라는 단어의 어원이 영어에서 나온 건지,
일본어에서 나온 건지는 잘 모릅니다만,고상하게 그 뜻풀이를 하자면
긴바이란"해병대가 작전상 필요로 하는 (타인의) 물품을 잠시 빌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으나
(일본어"均配"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이 다수설임-옮긴 이 註)
나쁜 말로 하면 그것은 남의 물건을 훔치는 것이 됩니다.

훈련소에서는 황당하게도 개인 보급품인 못 생긴 스푼이 없어진 적이 있습니다.
탄띠에 매달린 수통집에 밤낮없이 꽂고 다니던 건데,그게 그만 사라져버린 걸
저는 멍청하게도 스푼이 없어졌다고 교관에게 말했다가 ㅈ나게 맞기만 했습니다.

실무에 배치받은 다음 날,친절하게도 선임수병이 "네 보금품이 다 있는가 확인해 보라"고 해서
곤뽕과 관물대를 뒤져보니,훈련소에서 지급 받아 한번도 입지 않았던 작업복이 없어졌더라구요.
선임이 묻는 말이라 솔직하게 작업복이 없어졌다고 했더니,
한바탕 소란이 일었습니다.
잠시 후,월남전에 갔다 온 고참하사가 씩 웃으면서 그 옷을 내놨는데
그 뒤로 저는 한참동안 고로웠습니다.

묘한 일은 관물검사만 했다하면,의례히 소대의 물품 무언가가 꼭 하나씩 비는 겁니다.
모포라든가,야전삽이라든가...
일요일날 빨래를 해서 건조장에 널어놓고,감시병을 배치하는데도 옷이 없어집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목욕하러 갈 때 팬티만 입고 목욕탕엘 가는데,탕에 들어가가마자
"목욕 끝,5분 전!!"이라는 구령에,잠깐 물 묻히는 시늉만 겨우 하고 나와서 보면
팬티가 바뀌거나,아니면 팬티 한 두개가 꼭 없어지는데
그러면 그 팬티를 잃어버린 당사자는 하는 수 없이 알몸으로 불알을 덜렁거리며
중대로 돌아올 수 밖에 없습니다.
흰 광목 팬티에 매직펜으로 암만 크게 이름을 써놔도 별 수 없지요.
왜 물품이 부족하고 없어지는지,우리 해병대 출신들은 잘 알 겁니다.

소대의 물품이 없어지면,향도병 직책을 맡은 중고참 선임수병이
"오늘 순검 후,내 밑으로 ~!!"하는 식으로 집합을 시킵니다.
소대의 살림살이를 맡은 그 선임수병은 항상 침상 밑에다 여유 물품을 비축해 놓고
이런 불상사에 대비를 하기도 합니다만 대개의 경우는
"이런 ㄱ새끼들,물품 간수를 어떻게 했길래...."하면서 기수별로 조지니까
그걸 면하고자 옆 소대,옆 중대에서 본의 아니게 긴바이를 해다가 갯수를 채워놉니다.
그러다보니 나중에는" 같은 중대내에서는 긴바이를 하지말자"는 신사협정(?)을 맺기도 했습니다만...

긴바이는 주로 군대생활을 어느 정도 한 일병 고참급이 작전 지휘를 하는데
없는 물건이 있으면 어떤 식으로든 채워 놓아야 하니까 그야말로 물불을 안 가리고
어디서든 가져옵니다.

다른 부대가 5분대기 차량을 준비해 놓으면 그 차량마저도 터는데
5분대기 차량에는 완전무장이 주~욱 걸려 있거든요.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서,낮은 포복등으로 은밀히 접근을 하여 군용트럭 포장을 찢고 털어 오는데
완전무장 두어벌 집어 오면 제법 쏠쏠합니다.
당연히 긴바이를 당한 부대도 어디에선가 또 털어다 채워놓겠지요.

팀스피리트 훈련 때는 오키나와에서 온 미 해병대가 포항사단에 주둔하는데
미군 초병들이 실탄을 장전하고 보초근무를 선다고 합니다.
한국 해병대가 하도 극성스레 긴바이를 해서...
긴바이에 관한 얘깃거리는 두어개가 더 있는데,너무 심한 것 같아서 여기서 줄입니다.-4부 끝-

*원핑덤핑


고무보트로 침투시,적의 항공 관측등에 의하여 노출되는 위험을 줄이고자
보트를 뒤집어 그 속에 숨었다가,상황이 해제되면 다시 보트에 올라 페달링을 계속하는 훈련임.

글 옮긴 놈은 딴 건 몰라도 이건 잘 되던데....
그래서 지금도 바닷가에 가서 다정하게 보트 타는 년놈들을 보면,괜히 배알이 꼴려
"화~악 뒤벼"버리고 싶은 충동을 매우 강하게 느낌.

 

 

출처 : 해병대 인터넷전우회, 박동규선배님 http://www.rokmc.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