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실무부대/해병대 1사단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국가전략기동군 해병대 제1사단

머린코341(mc341) 2015. 3. 13. 00:07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국가전략기동군 해병대 제1사단 (자주국방네트워크, 2015.03.10)

 

귀신잡는 해병에서 국익 수호의 첨병까지!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국가전략기동군 해병대 제1사단

 

 

귀신 잡는 해병의 탄생

 

특수부대를 제외한다면 개개인의 전투 능력과 군기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정평이 나 있는 해병대, 그 가운데 해병대는 여수·순천 반란사건 이후 수륙양용작전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부대가 필요하다는 전훈에 따라 1949년 4월 15일 진해 덕산 비행장에서 창설되었습니다.

 

초대 사령관으로는 당시 해군참모총장이었던 손원일 제독에게 해병대 창설을 건의한 신현준 중령이 임명되었으며, 해군에서 전입해 온 장교 26명과 하사관 54명을 근간으로 300여 명의 병을 모집해 380여 명의 병력이 해병대를 만든 주역들이었습니다. 이듬해 병력을 증원 받아 2개 대대 규모로 확대 개편된 해병대는 6.25 전쟁이 발발한 뒤 각지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습니다.

 

불과 2개 대대 규모의 작은 부대였지만, 해병대의 용맹은 우리 군 수뇌부는 물론 UN군과 종군기자들까지 놀라게 했습니다. 장항과 군산, 통영 등지에서 북한군을 연달아 격파한 해병대의 무용에 미국 뉴욕헤럴드트리뷴 기자는 1950년 8월 23일자 신문에 “대한민국 해병대는 귀신을 잡을 정도로 용맹했다”는 기사를 쓸 정도였고, 이후 전쟁이 끝날 때까지 각지에서 연전연승을 이어가며 ‘무적해병’의 칭호를 얻기도 했습니다.

 

<연막차장과 함께 해안으로 접근하는 해병대 상륙돌격장갑차대대>

 

<상륙부대를 향해 기관총 사격을 퍼붓고 있는 대항군>

 

<대항군을 제압하는 AH-1S 공격헬기>

 

개전 초기부터 눈부신 활약을 보여주었던 해병대는 1950년 9월 1일, 각지에 흩어져 작전 중이던 대대들을 모아 제1해병연대로 통합되었고, 1952년에는 제1해병연대와 제5독립해병대대가 통합되면서 제1전투단으로 개편되었습니다. 제1전투단은 1954년 제1해병여단으로 증편되었으며, 다시 1년 후에는 사단급 부대로 확대 개편되면서 제1상륙사단이라는 명칭으로 개명하였습니다.

 

당초 제1상륙사단은 수도권 방어 임무를 수행하면서 서울에 배치되어 있었지만, 1959년 대통령령에 따라 포항으로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 예하 1개 연대를 제1여단으로 증편해 김포반도에 주둔시켜 서부전선 및 수도권 방어 임무를 수행케 했는데, 후에 이것이 해병 제2사단의 모체가 되었습니다.

 

베트콩도 두려워한 해병魂

 

베트남 전쟁이 격화되고 미국의 파병 요청이 거세지면서 1965년 제3차 파병연장이 결의되자, 해병대사령부 명령에 따라 제1해병사단 예하 11연대 부대를 차출, 여단급 부대로 증편해 해병대 베트남 파병부대인 청룡부대가 창설되었습니다.

 

당시 해병대 파병 결정에 대해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미국의 파병 요청을 받은 박정희 대통령이 주요 지휘관들을 모아놓고 파병 준비에 얼마나 시간이 걸리겠느냐 묻자 육군이 3개월, 특전사가 1개월가량이 필요하다고 보고한 것과 달리 당시 해병대사령관 공정식 장군은 “각하! 당장 내일이라도 출동하겠습니다”라고 답해 해병대가 파병의 선봉에 서게 되었습니다.

 

<연막과 함께 해안으로 올라오는 AAV-7A1 상륙돌격장갑차>

 

<상륙한 AAV-7A1 장갑차에서 튀어나오는 해병대 병사들>

 


<해안 둔턱에 엄폐해 사격자세를 취한 해병대원들>

 

1965년 10월 남베트남에 상륙한 청룡부대는 베트남 최북단에 배치되어 최전선에서 베트콩 및 월맹군과 맞서 싸웠습니다. 특히 짜빈동 전투에서 보여준 청룡부대 11중대의 활약은 전사에 길이 남을 정도였습니다.

 

1967년 벌어진 짜빈동 전투에서 월맹군은 무려 4개 대대 이상의 병력 2,400여 명의 병력을 동원해 280여 명의 병력이 지키고 있던 짜빈동의 제11중대 중대전술기지를 기습 공격했습니다. 월맹군은 10배에 가까운 대병력으로 11중대의 중대전술기지를 공격했고, 전투 초기에는 기지 일부가 월맹군에게 점령당하면서 11중대 병력이 전멸 직전의 상황으로 몰리기도 했었습니다.

 

미군은 AC-47 공격기를 보내 공중 지원을 해주려 했으나 기상이 좋지 않아 공중지원은 여의치 않았고, 증원 부대를 헬기로 긴급 투입하는 방안 역시 피아가 뒤섞인 상황에서 피해만 늘 것을 우려해 실행되지 못했습니다.

압도적인 병력 열세에도 불구하고 11중대는 특공대를 조직, 적의 측면을 치는 대담한 전술을 구사했고, 이것이 제대로 먹혀들어갔습니다.

 

일방적으로 몰리고 있어야 할 적이 갑자기 측면에서 튀어나와 돌격해오자 월맹군은 전율했습니다. 심지어 당시 돌격했던 2개 소대 병력이 죽기를 각오하고 소총에 착검하고 백병전을 걸어오자 월맹군은 집단 패닉 상태에 빠졌고, 무기를 내던지고 도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적의 전열이 무너지자 11중대는 참호 곳곳에 남아있는 월맹군들을 일방적으로 소탕하기 시작했고, 날이 밝자 증원 병력과 지원 포격이 이어지면서 베트콩은 완전히 패퇴하기에 이르렀습니다.

 


<AAV-7A1 장갑차 앞에서 사격자세를 취한 해병대 K-3 기관총 사수>

 

<해안을 향해 질주하고 있는 LSF-II 솔개 공기부양정>

 


<상륙 해안 정지 작업을 위해 양륙중인 KM9 ACE 공병전투장갑차>

 

해병대 11중대는 20배 병력의 월맹군을 맞아 300여 명을 사살하고 2명을 포로로 잡았으며, 막대한 양의 무기를 노획한 반면, 15명이 전사하고 33명이 부상을 입는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러한 전투결과를 보고 받은 연합군사령부는 경악했습니다. 민병대 게릴라 수준인 베트콩이 아닌 정규 군사훈련을 받은 월맹군 제2사단 정예 병력의 대공세에 맞서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 대승을 거둔 것에 대해 큰 충격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이 전투 이후 월맹군은 한국군과의 전투를 피하기 시작했고, 한국군, 특히 해병대와 조우하면 싸우지 말고 피하라는 지시까지 내려오는 등 해병대를 대단히 두려워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에도 해병대는 뚜이호아지구, 추라이지구, 호이안지구 등지에서 6년 4개월 동안 임무를 수행하면서 눈부신 활약을 보여주었고, 이를 통해 연합군과 세계 언론에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신화를 만들어가는 국가전략기동부대

 

베트남에서 철수한 뒤 해병대는 주로 경제적인 군 운용 논리에 의해 1973년 해병대사령부 해체 등 시련을 겪기도 했지만 국가전략기동부대로서 해병대의 위상을 되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어 1987년 11월 1일 해군 해병참모부에서 독립해 해병대사령부로 재창설되었습니다.

 

해병 제2사단과 제6여단이 서북도서에 배치되어 전방 경계 임무를 맡고 있는 것과 달리 해병 제1사단은 후방에 배치되어 언제 어디든지 공세적 상륙작전을 펼칠 수 있는 국가전략기동부대로서 그 전력을 육성해 나가고 있습니다.

 


<적 후방 강습을 위해 접근 중인 UH-60P 강습헬기 편대>

 


<해안에 접안한 전차 상륙함으로부터 진입로를 닦고 있는 KM9 ACE 공병전투장갑차>

 


<공병이 설치한 비치 매트를 따라 상륙하는 해병대 K1 전차>


해병 제1사단은 유사시 적의 후방에 상륙해 단독작전을 수행해야 하는 만큼 일반 보병사단들과는 차별화된 편제와 더 강력한 장비들을 갖추고 있습니다.

 

사단 예하의 3개 연대는 각각 임무에 특화된 공정대대와 기습대대, 유격대대 등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공정대대는 항공기를 이용한 공수 작전, 기습대대는 상륙돌격작전, 유격대대는 적 후방 침투와 후방 교란 작전에 특화되어 있는데, 이들 전력은 사단 예하의 포병연대와 상륙돌격장갑차대대, 전차대대와 항공대 등의 지원을 받아 일반 보병부대보다 더욱 강력한 전투력을 발휘합니다.

 

최근 대형 상륙함이 잇따라 전력화되고, 해병대 항공단 창설이 확정되면서 전력 증강에 속도를 내고 있는 해병 제1사단은 현재 차기 독도함과 상륙기동헬기, 차기 상륙함 등이 전력화되면 미군의 도움 없이 연대급 이상 전력이 항공기와 고속상륙정 등을 이용해 입체적인 초수평선 상륙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정예 상륙부대로써 입지를 굳건히 할 것이며, 국가가 부르면 언제 어디든 달려가 국익 수호의 첨병으로 활약할 수 있는 국가전략기동군으로써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해나갈 것입니다.
 
 
출처 : 자주국방네트워크, 관리자 kdn0707@daum.net
         http://koreadefence.net/detail.php?number=3405&thread=22r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