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역사/해병대와 5·16혁명

5.16혁명과 해병2여단

머린코341(mc341) 2016. 11. 8. 08:52

5.16혁명과 해병2여단


5.16군사쿠데타(예전 5.16혁명)는 당시 김포에 주둔중이던 해병2여단에 의해 거사가 이루어지고 또 성공했다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해병대의 역활이 지대했습니다


당시 상황을 정리한 수기중 일부입니다


5.16에 대한 역사적 평가나 정당성 여부와는 관련이 없는 글이므로 정치적 또는 역사적 해석은 삼가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자료출처 : 516과 해병대 / 청룡회


<중략>
김포 해병여단장 김윤근준장은 부관이 시간에 맞춰 깨우는 바람에 일어나 보니 밤11시였다.


인사참모 최용관소령, 통신참모 문성태중령이 기다리고 있다가 '출발준비가 끝났습니다'라고 보고했다.


여단내 미군고문단도 눈치채지 못하고 조용하다는 것이었다.


최소령은 전차중대의 출동문제를 제기했다.


원래 출동계획에는 전차중대를 출동시키면 그 굉음으로 한강다리를 넘기전에 폭로될 위험이 있다고해서 제외되어 있었다.


최소령은 주력부대가 서울시내로 들어가는 시간에 맞추어 전차중대가 출발하도록 하면 되지 않느냐고 했다.


자정을 넘어서 5월16일로 넘어간 뒤 드디어 오정근대대장이 전화로 보고해 왔다.


"지금 부대의 선두가 출발했습니다."..


지휘반은 주력부대의 후미에 붙게 되어 있었다.


<중략>


김윤근여단장은 지프를 타고 전차중대로 향했다.


이미 주력부대의 트럭종대가 엔진소리를 우르렁거리면서 김포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중대본부에 도착한 김윤근준장은 정문보초에게 "지금 중대장을 보러가니 전화로 깨우라"고 명령했다.


중대장막사에 들어가니 김현호대위가 옷을 입고 있었다.


김윤근준장은 그에게 또 거사 취지를 설명해주었다.


"여단장님이 나가신다면 기꺼이 나가겠습니다."
"오전 4시에 출발할 수 있소?".
"언제든지 명령만 내리신다면 출발할 수 있는 준비가 다 되어있습니다."
"좋소. 오전 4시에 서울로 출발하시오.".


김윤근준장의 후미에 붙은 60여대의 트럭종대는 대대병력을 태우고 김포가도를 달렸다.


달은 없었지만 별빛이 영롱한 밤이었다.


해병대가 염창교에 이르렀을 때였다.


길가에 박정희장군과 일행이 서있는 모습이 헤드라이트 불빛에 들어왔다. 김윤근여단장은 급히 차를 세우고 내렸다.


철모를 쓴 김장군은 박정희장군에게 뛰어오더니 거수경례를 붙이면서 보고했다.


"해병대 이상없이 출동했습니다."
"수고 많았소.".


박정희장군은 김장군의 손을 잡은채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김장군, 30사단에서 거사계획이 탄로가 났소.
그래서 30사단, 33 사단, 공수단 다 나올 수 없게 되었소.
이제는 해병여단만 가지고 강행 하는 길밖에 없게 되었으니 김장군만 믿소."
"그렇게 되었습니까. 하는 수 없지요. 해병여단만 가지고 강행해 봅시다.".


김윤근여단장은 담담하게 말하고 다시 차에 올랐다.


<중략>


박정희장군와 장교들은 염창교입구에 서서 지나가는 해병대차량들을 향해서 손을 흔들고 만세를 불렀다.


지축을 울리면서 출동하는 해병대는 박정희장군에게는 그야말로 기사회생의 기적이었다.


한때 "부대가 나와야 산속에 들어가서 게릴라전이라도 하다가 협상이라도 할 것 아닌가" 하고 생각했던 박정희장군은 이젠 성공의 확신까지 가질수 있게 된 것이다.


염창교에는 6관구사령부에 모였던 육군장교들 10여명이 와서 기다리고 있다가 박정희장군과 해병대를 만났다.


박정희장군은 이들 장교에게 "이제는 부평33사단으로 가서 출동을 독려하라"고 명령했다.


단호하고 자신감이 붙은 말투였다.


박정희장군차는 해병대를 뒤에서 따라갔다.


해병대뒤에는 출동이 늦었던 공수단트럭이 따라붙었다.


이로써 해병대는 선두부대가 되었다.


이는 김윤근준장이 피하고자 했던 상황이었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해병대는 육군으로부터 당할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던 것이다.


해병대와 공수단은 새벽 3시30분경 한강 인도교의 남단인 노량진쪽에 도착했다.


남한강파출소의 경찰관들이 무슨 일인가하고 나오는데 해병대병사들이 공포를 쐈다.


경찰관들은 달아났다.


해병여단의 선두인 제2중대가 한강 인도교로 진입했을때 트럭 두대를 여덟 팔자로 배치한 헌병들의 제지를 받는다.


중대장 이준섭대위는 참모총장도 이번 혁명을 지지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헌병들이 총장의 명령을 받아 자신들을 환영하러 나온줄 알고 헌병중대장 김석률대위와 반갑게 악수를 했다.


그런데 김대위는 "우리는 총장님의 명령에 따라 어떤 부대의 통과도 허용할 수 없다"고 말하는게 아닌가.


이 보고를 전해들은 오정근대대장은 김윤근여단장에게 뛰어갔다.


오중령도 참모총장이 혁명을 지지하고 있다고 알고 있었으므로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하고 따지듯 말했다.


김윤근준장은 박정희소장한테 들은대로 설명해준 뒤 "해병대만 가지고 혁명을 강행하기로 했으니 헌병이 계속해서 막으면 밀어버리시오" 라고 명령했다.


오정근중령은 "알았습니다. 밀어버리겠습니다"하고 시원하게 복창하고 앞으로 달려갔다.


오정근중령은 원래부터 해병대 단독거사를 꾀했던 이였으니 이런 상황에서도 주저할 이유가 적었다.


그뒤 앞쪽에서 총성이 들려왔고 곧 조용해지더니 오정근중령이 무전기로 보고했다.


"헌병을 쫓아버리고 지금 저지선을 통과해서 인도교로 들어갑니다.".


한강인도교 남단에 설치한 트럭 바리케이드를 넘는 총격전에서 헌병 3명, 이준섭대위 등 해병 6명이 부상했다.


해병대 후미쪽에 붙어있던 김윤근여단장이 탄 지프도 인도교로 들어갔다.


바리케이드로 놓아둔 트럭은 엔진이 꺼져 있어 치우는 데 시간이 걸릴 듯했다.


김윤근여단장은 지프에서 내렸다.


중지도쪽에서 또 총성이 들렸다.


오정근중령이 달려왔다.


"중지도에 제2저지선이 있고 헌병이 저항합니다.
혹시 이 다리에 폭파장치를 해두었을지 모르니 병력을 일단 노량진쪽으로 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폭파장치가 그리 쉽게 되겠소. 걱정 말고 밀어붙이시오. 그런데 저 저지선의 트럭 헤드라이트 불빛이 눈에 거슬려요. 저것부터 깨부숴버려요.".


오정근중령은 중지도지점에 설치된 제2 저지선의 헤드라이트를 겨냥해서 일제사격을 하게 했다.


불빛이 꺼지자 제2저지선도 돌파되었다.


김윤근준장은 한강 인도교의 반을 지나 이제는 용산쪽으로 걸어갈 수 있었다.


서서히 움직이던 해병대 차량종대는 다시 정지했다.


오정근중령이 다시 달려왔다.


"큰일입니다. 또 다른 저지선이 있습니다."
"큰일은 무슨 큰일이오. 저지선이 있으면 돌파해버려야지."


그러나 김윤근준장도 앞으로 저지선을 몇개나 더 돌파해야 할지를 생각하니 걱정이 되었다.


<중략>


그러다가 트럭을 탄 장병들을 보고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아니다. 내가 살아 있어야 아무것도 모르고 출동한 장병들에게는 책임이 없다는 것을 증언해줄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이때 박정희소장도 차에서 내려 한강다리를 걸어서 건너고 있었다.


박정희일행은 중지도, 즉 한강다리의 중간지점을 지나 북쪽으로 걸어갔다. 북단에는 제3의 저지선이 있었다.


트럭 4대를 동원하여 차단벽을 만든 것이다.


트럭들 좌우측에서 헌병들이 매복하여 총을 쏘고 있었다.


해병들은 상체를 숙이고 뛰어가 저지선 앞에서 엎드려 응사하고 있었다.


헌병들의 병력이 얼마인지를 알 수가 없었으니 불안감은 더했다.


<중략>


김윤근준장이 박정희소장에게 뛰어왔다.


"또 다른 저지선이 있습니다.
앞으로 저지선이 몇개나 더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날이 새기 전에 목표 점령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대로 밀어버리시오.".


박정희소장의 침착하고 단호한 태도에 김윤근준장도 용기를 얻었다고 한다.

박정희소장은 해병대가 작전하는 것을 바라보면서 난간에 기대어 담배를 피워물었다.


<중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