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찬의 軍] "쏠까요 말까요"…'北 미사일 10분 내 격파' 불가능한 이유
북한이 지난 12일 발사한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북극성 2형. 고체 연료를 사용하는 신형 탄도미사일로서 궤도형 차량에 발사관을 장착해 기동성을 높였다. 연료 주입 과정이 노출되기 쉽고 준비시간도 오래 걸리는 액체연료 시스템을 고체로 바꿔 은폐능력도 높아졌다.
이동식발사대에서 발사되는 북한의 무수단 중거리 탄도미사일. 노동신문
탄도미사일에 연료를 주입하는 과정을 이용해 북한의 미사일 발사 조짐을 사전에 파악해 선제타격하거나 방어하는 우리 군의 킬 체인과 한국형미사일방어체계(KAMD)의 효용성에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100여대로 추정되는 북한 이동식발사대(TEL)가 탄도미사일 기습 발사를 시도하더라도 연료 주입 시간을 이용하면 발사 전 파괴할 기회가 많아진다. 군 당국은 이를 최대한 활용하는 방식으로 킬 체인과 KAMD를 2023년까지 17조원을 투입해 구축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북극성 2형 발사로 킬 체인과 KAMD가 북한 탄도미사일 위협을 방어하는데 도움이 되는가를 놓고 실효성 논란이 벌어졌다.
이에 대해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14일 국회 국방위에 출석해 “킬 체인 계획과정에서 연료의 주입 문제 등을 감안하고 했기 때문에 (북한 미사일이) 액체 연료에서 고체 연료로 간다고 해서 킬 체인이 무력화 된다고 볼 수 없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북한의 고체 연료 탄도미사일과 같은 전술적 차원에서의 문제보다 더 큰 문제가 킬 체인을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 스커드 사냥 위해 탄생한 킬 체인
킬 체인은 탄생 과정에서부터 북한의 대표적 전략무기인 스커드 탄도미사일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1991년 걸프전이 발발하자 미군을 주축으로 한 다국적군은 압도적인 공군력을 앞세워 이라크와 쿠웨이트 일대를 공습했다. 이라크군의 주요 시설들은 지상이나 지하에 고정되어 있어 다국적군의 정밀유도무기에 쉽게 격파됐다.
하지만 이라크가 걸프전을 ‘서방 대(對) 아랍’ 구도로 만들기 위해 이스라엘에 스커드 탄도미사일을 발사하자 다국적군은 스커드 공격 저지에 나섰다.
우선 PAC-2 미사일을 사우디와 이스라엘에 배치해 스커드 공격을 방어했지만 PAC-2의 방어망을 뚫고 날아오는 탄도미사일에는 속수무책이었다.
설령 요격했다고 해도 탄두직격형이 아니었던 PAC-2의 특성상 탄두가 지상으로 떨어져 피해가 발생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결국 다국적군은 공군 전투기와 특수부대 등을 동원해 스커드 이동식발사대(TEL)를 탐지해 파괴하는 ‘스커드 사냥’에 나섰다.
발사 즉시 사라지는 이동식발사대를 파괴하기 위해서는 탐지에서 파괴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빠른 시간 안에 수행해야 했지만 기존의 작전개념으로는 불가능했다. 이에 따라 스커드 이동식발사대를 파괴하기 위한 별도의 시스템이 생겨났는데, 이것이 바로 킬 체인의 시초다.
초기의 킬 체인은 비효율적이었다. 이라크군이 야간에 미사일을 발사하면 사실상 탐지가 불가능했다. 그러나 네트워크 기술과 위성항법장치의 발달로 정보전달 속도와 미사일의 정밀도가 높아지면서 킬 체인은 서서히 미래전의 주요 개념으로 자리를 잡았다. 2001년 9.11테러 직후 시작된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은 킬 체인을 ‘스타워즈’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미사일 이동식발사대보다 훨씬 작은 테러리스트의 은신처나 차량 등을 공격하기 위해 미군은 E-8 조인트스타즈, RC-135 신호 정보기, MQ-4 무인기, MQ-1 무인기 등을 투입해 정보를 수집하고, 이 정보를 토대로 전투기나 특수부대를 투입해 표적을 제거했다.
실시간 영상의 전송과 공유를 가능하게 하는 지휘통신체계도 발달하면서 미군의 킬 체인은 2020년대에는 지금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가동될 전망이다.
◆ 수십조원 투입한 킬 체인, 무용지물 가능성 있어
우리 군도 미군의 킬 체인과 유사한 개념의 킬 체인 구축을 서두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군처럼 실시간에 가까운 형태로 작동하지는 않지만 2020년대에는 10분 전후로 킬 체인을 가동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개발된 철매-2 시험발사를 위해 북한 탄도미사일 역할을 맡은 표적탄이 발사되고 있다. 방위사업청 제공
하지만 정찰자산과 미사일 등 타격수단, 지휘통제체계를 확보했다고 해서 킬 체인이 완벽하게 작동한다는 보장은 없다.
킬 체인을 가동하려면 군 수뇌부와 정치권력의 의사결정이 필요한데 이 과정에서 정치적 고려가 작용하면 가동 시간이 늦어져 때를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양과 서양의 전쟁사를 살펴보면 선제공격은 진정한 의미의 기습으로 진행된 적이 거의 없다. 공격을 받는 측에서는 공격 시작 전 다양한 경로를 통해 공격이 시작될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한다.
1941년 6월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기 직전 소련의 스탈린은 독일에 침투해 있던 첩보원들과 영국 등 연합국의 전언을 통해 독일의 전쟁 의지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독일군의 침공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채 모스크바 인근까지 후퇴해야 했다. 6.25 당시 국군도 북한군의 남침 기미를 포착했지만 개전 3일 만에 서울을 빼앗겼다.
표적을 향해 발사되는 호크 대공미사일. 공군 제공
적의 선제공격 기미를 알면서도 대처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정보자산을 총동원해도 적군의 움직임이 선제공격인지 여부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수집한 정보를 분석해 적이 선제공격을 감행할 기미를 포착했다고 결론내려도 선제공격 확률이 100%라는 보장은 없다.
적군이 무력시위나 군사훈련에 그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섣불리 총동원령을 내려 전쟁준비에 돌입했다가 자신의 방어전략만 적에게 노출시킬 위험도 있다. 때문에 전시 체제로의 전환에 신중한 태도를 취하다 기습을 당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KN-14. 노동신문
북한 탄도미사일 위협 역시 마찬가지다. 전쟁 발발 직후 북한이 스커드나 KN-02 탄도미사일을 발사할 징후가 포착되면 최단시간 내 킬 체인을 가동해 이동식발사대를 파괴하면 된다.
하지만 북한이 전쟁의 첫 단계로 탄도미사일 발사를 준비한다면 우리 군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미사일을 우리나라 인근 공해상으로 발사하는 도발을 할 때도 킬 체인을 가동해야 할까.
한미 군 당국이 정찰자산을 총동원해 휴전선 일대 북한군의 공격 움직임을 포착했다고 해도 전쟁 발발 전 북한 탄도미사일 이동식발사대를 킬 체인으로 타격하는 것은 표면적으로는 대북 선제공격에 해당된다. 한반도 전면전으로 이어질 위험이 높은 대북 선제타격은 군 수뇌부가 결정할 수 있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 최고 지휘부의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다.
이 때 군사적 측면만이 아닌 정치적, 외교적 요소도 함께 고려하게 된다. 킬 체인 가동이 전면전을 촉발할 가능성도 살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킬 체인이 가동되기까지 최소 수 시간 이상 소요될 수 있다.
북한이 먼저 공격해야 정치적 명분을 확보하고 국제사회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판단되면 킬 체인은 가동되지 않을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는 킬 체인의 위력이 반감되거나 무용지물이 될 우려가 있다는 뜻이다.
선제공격처럼 비춰지는 것에 대한 정치적 부담에 관계없이 군사행동을 감행할 수는 있다. 이스라엘은 자국의 안보를 위협한다고 간주되면 시리아와 레바논 등 주변국을 상대로 군사적 대응을 주저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반도 전면전 과정에서 미국 외에 유럽 등 국제사회의 지원이 절실히 필요한 우리나라의 사정을 고려하면 선제공격은 쉽게 행동에 옮기기 어렵다.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는 과정에서 북한의 남침에 맞서는 것과 북한 위협을 사전에 제거하는 예방전쟁은 큰 차이가 있다.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군으로부터 쿠웨이트를 해방한다는 명분을 지닌 1991년 걸프전과 대량살상무기 위협을 앞세워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한 2003년 이라크 전쟁에서 국제사회의 반응이 극명하게 엇갈렸던 것이 대표적이다.
시험발사되는 현무-2 지대지 탄도미사일. 국방부 제공
우리 군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제기될 때마다 킬 체인을 앞세워왔다. 하지만 킬 체인을 어떻게 운용하는가에 따라 그 효력이 100% 혹은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1939년 2차 세계대전 이전 당시 프랑스는 독일과의 전쟁 위협이 높아지는데도 국경에 건설한 마지노 요새만 믿고 1차 세계대전 수준의 전술과 무기에 만족했다.
하지만 독일군의 허를 찌르는 전격전 앞에 막대한 예산을 들여 만든 마지노 요새는 무용지물이었고 프랑스는 굴욕적인 강화협상을 맺어야 했다. 킬 체인도 마지노 요새와 같은 운명을 맞이할 수 있다.
킬 체인 가동이 대북 선제타격으로 비춰질 경우 발생할 정치적 위험부담을 국가 최고 지휘부가 회피하면 우리나라는 북한 탄도미사일 1차 공격을 수수방관해야 한다. 수 조원을 들여 만든 킬 체인이 정작 필요한 순간에 뒷전으로 밀려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국민과 군인들이 목숨을 잃을 수 있다. 킬 체인 가동에 구멍이 뚫려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지만 군 당국은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는 것처럼 무인정찰기나 미사일 등 눈에 잘 보이는 무기만 갖추면 킬 체인이 문제없이 작동하는 줄 아는 듯 한 모습이다.
독자적인 핵무기 보유가 불가능한 우리나라 입장에서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맞설 유일한 무기인 킬 체인이 완벽하게 가동할 수 있도록 구축 초기 시점인 지금부터 국가적 차원의 의사결정체계를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을 군 당국과 정치권은 흘려듣지 말아야 한다.
[세계일보] 2017.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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