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충수 둔 사우디, 무한팽창 이란 … 중동 패권 지도 재편되나
카타르 단교 사태, 사우디 전략 실패
카타르 "영원히 이렇게 살 수 있다"
미국은 편들지 않고 국제 사회 눈총
이란, 정치·경제 전방위로 이라크 접수
시리아·예멘·레바논으로 세력 확장 중
IS 패망 덕에 요충지 탈환…팽창 가속
사우디·이란의 엇갈린 처지 중동에 영향
"중동 질서, 아랍-이란-터키 구도로 재편"
지난 5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첫 해외 방문 국가로 사우디아라비아를 찾았을 때 사우디는 기대감에 들떴다. 지역 패권을 놓고 이란과 맞붙는 와중에 트럼프 대통령이 노골적으로 사우디를 편들어줬기 때문이다.
당시 리야드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이 중동의 극단주의 테러 조직을 지원하고 있다. 고립시켜야 한다"고 역설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이 '반(反)이란 연대'를 주도하는 모양새가 됐으니,사우디가 숙적 이란을 완전히 제칠 기회가 열린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불과 두 달만에 상황은 완전히 역전됐다. 트럼프의 편들기는 사우디의 자충수로 이어졌고, 오히려 이란이 그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특히 사우디가 주도한 카타르 단교 사태가 결정타가 됐다.
자신의 발을 묶고 적의 입지를 강화시킨 사우디의 악수(惡手)가 그간 나름의 균형을 유지해 온 중동 지역을 흔들고 있다.
카타르 봉쇄, 효과는커녕 역효과만
“카타르 봉쇄는 실패하고 있다”
지난 17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는 카타르 단교 사태에 대해 이렇게 결론지었다. 사우디·아랍에미리트(UAE)·이집트·바레인이 카타르에 제시한 '외교 복원을 위한 13개 조건' 시한을 두 차례나 넘기고도 후속 조치가 나오지 않았을 때였다.
보도 이튿날인 18일 단교 4개국은 새로운 제안을 내놨다. 단교 해제를 위해 “카타르가 6대 원칙을 수용하라”는 것이다.
19일 BBC등 외신에 따르면 6대 원칙에는 ^극단주의와 테러리즘 방지에 전념 ^증오와 폭력을 유발하는 도발 중단 등이 포함됐다.
^위성방송 알자지라 폐쇄 등 카타르가 격렬히 반발했던 기존의 조건은 사라졌다. 압둘라 알 무알리미 유엔 주재 사우디 대사는 “카타르가 수용하기 수월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2일 카타르 단교 사태 중재를 위해 살만 알사우드 사우디 국왕(오른쪽)을 만난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 [EPA=연합뉴스]
사우디 국왕을 만난 다음날인 지난 13일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 카타르 국왕(오른쪽)을 만난 틸러슨 미 국무장관. [EPA=연합뉴스]
하지만 완화된 조건임에도 카타르의 입장엔 변함이 없다. 오히려 이랬다 저랬다 한다고 비판 수위를 높였다.
사이프 빈 아메드 알 사니 카타르 정부 대변인은 “(단교국가들이) 모순된 입장을 내놓는다”며 “불법적인 봉쇄가 위험하고 체계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이행됐다는 걸 보여주는 예”라고 밝혔다.
메샬 빈 하마드 알 사니 미국 주재 카타르 대사도 “우리 경제는 피해를 입지 않았다. 이렇게 영원히 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사우디,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했다”
양측 입장이 역전된 건 사우디의 기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사태가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이란과 패권 다툼에 불리한 방향으로 역효과만 나고 있다.
단교 사태 이후 카타르는 사우디와 멀어지면서 이란·터키와 더욱 가까워졌다.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생필품을 공수해 잘 버티고 있다.
우유가 모자라면 네덜란드에서 젖소를 수입해 에어컨이 가동되는 농장에서 길러 신선한 우유를 짜는 식이다.
걸프협력위원회(GCC) 회원국인 오만과 쿠웨이트는 사우디의 뜻과 달리 단교에 동참하지 않았다. 믿었던 미국은 카타르에 화해만 촉구할 뿐 사우디를 편들어주지 않고 있다.
조지워싱턴대학의 마크 린치 교수는 WP에 “사우디는 단교 효과를 과대평가했고 계획에 차질이 있을 때를 위한 플랜B 마련에 실패했다”며 “봉쇄와 고립에 대해 카타르가 느낄 공포를 과장했고, 자신들이 이웃국가에 해를 가할 수 있다고 능력을 과신했다”고 지적했다.
이런 와중에 WP는 지난 16일 이 모든 사태를 촉발한 카타르 국영 통신사 해킹 오보 사건의 배후에 UAE가 있다고 보도했다.
문제의 보도는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 카타르 국왕이 이란을 ‘이슬람 강대국’이라 부르고 무장단체 하마스·헤즈볼라·무슬림형제단을 두둔했다는 내용이었다.
UAE는 WP 보도를 부인했지만 카타르는 봉쇄로 인한 경제적 손실을 배상받겠다며 국제무역기구(WTO)와 논의 중이다.
국제사회의 시선도 곱지 않다. 종교·종파·민족이 뒤엉켜 늘 일촉즉발인 중동에서 온건 개방주의를 표방하는 카타르는 그동안 완충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포린폴리시(FP)는 “카타르는 종파간 대화와 갈등 완화는 물론, 아랍권 안팎의 소통을 위한 통로 역할을 했다”고 전했다. NYT는 “이달 초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살만 알사우드 사우디 국왕과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가 참석하지 않은 것도 국제사회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했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이라크 장악한 이란, 카타르 사태 어부지리까지
수니파 맹주의 체면이 구겨지는 가운데, 시아파 이란은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다.
지난 13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카타르 단교 사태가 이란에 새로운 전략적 기회를 주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이란의 싱크탱크 전략연구센터의 하산 아흐마디안를 인용, “사우디는 아랍국의 반(反)이란 동맹을 의도했지만 카타르 탓에 암초에 부딪혔고, 이란은 아랍국 들의 갈등을 즐기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라크 장악을 통한 세력 확장도 순조롭게 진행 중이다. 지난 15일 NYT는 “미국이 (통제권을) 이양한 이라크를 이란이 지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라크는 시아파가 다수인 국가다. 약 65%가 시아파, 수니파는 약 32%다. 그러나 2003년 미국 침공 전까지 소수 수니파가 국가를 통치했고, 이란과도 1980~1988년 전쟁으로 대립했다.
하지만 사담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린 미국이 완전 철수하고 IS가 기승을 부리는 새 이라크에 대한 이란의 영향력은 막강해졌다.
NYT은 “수퍼마켓의 모든 생필품은 이란에서 수입됐고, 이란의 자금 지원을 받은 새로운 채널들은 이란은 이라크의 보호자로, 미국은 기만적인 침입자로 묘사한다”고 전했다.
“테헤란에서 지중해까지” 이란의 팽창 야욕
지난해엔 시아파가 다수를 차지한 이라크 의회가 시아파 민병대를 합법화했다. 이란의 지원을 받는 세력이 정식 군대가 되면서 이라크 핵심부에 대한 이란의 지배력은 더욱 커졌다.
신문은 “이란은 적국이었던 이라크를 의존국가로 만들었다”며 “이란의 영향력은 군사·정치·경제·문화에 걸쳐 광범위하며 계획적으로 확대 중”이라고 분석했다.
NYT에 따르면 “이라크는 이란의 확장 프로젝트의 일부”다. 이라크를 발판으로 내전으로 혼란에 빠진 시리아와 예멘, 시아파 무장단체 헤즈볼라가 자리잡은 레바논으로 영향력을 확대 중이다.
더구나 IS가 패망하면서 이란의 팽창엔 더욱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이란에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모술 일대를 이라크가 IS로부터 탈환했기 때문이다.
이란은 모술 인근을 거쳐 시리아 정부군과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단체 헤즈볼라에 무기를 지원해 왔다.
IS가 밀려난 뒤 알리 아크바르 벨라야티 이란 최고지도자 수석보좌관은 “테헤란에서 모술·베이루트를 지나 지중해로 이어지는 저항의 도로가 재개된다”고 노골적으로 야망을 드러내기도 했다 .
지난 3일 프랑스 국영석유회사 토탈은 이란과 카타르가 공유하고 있는 천연가스전에 10억 달러를 투자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AP=연합뉴스]
지난 17일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은 17일 “예멘 내전에서 사우디와 협력해 전쟁을 종식시키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4년 째 수니파 정부와 시아파 민병대가 내전 중인 예멘은 사우디가 빠져든 수렁이다.
사우디는 2014년 시아파 후티 반군이 수니파 정부를 공격해 정권을 탈취하자 내전에 뛰어들어 정권 수호에 나섰다.
그러나 막대한 비용을 퍼붓고도 내전은 해결되지 않고 민간인 희생만 늘면서 사우디를 향한 국제사회의 비판이 커지는 중이다. 이런 상황에 이란이 보란듯이 해결사를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
"사우디 현재 노선 고수 땐 위상 더 축소될 것"
숙적인 양국의 엇갈린 처지는 지역 질서에 변화를 가져올 전망이다. FP는 사우디 등 아랍권 중심이었던 중동 질서가 이미 재편되고 있다고 봤다.
사우디의 힘은 아랍 국가들의 결속과 그 안에서 사우디가 지닌 위상을 통해 형성됐는데, ‘아랍의 봄’과 잇따른 이라크·리비아·시리아·예멘 내전이 아랍 국가의 결속을 약화시키고 사우디의 영향력을 축소시켰다는 것이다.
FP는 시리아 내전에서 이란이 지원하는 시아파 정부군과 민병대가 똘똘 뭉쳐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을 수호하는 가운데, 수니파 무장 단체들은 여러 분파로 쪼개져 제대로 힘 쓰지 못하는 상황도 그런 예라고 지적했다.
이어 “아랍권 중심의 중동 질서는 아랍-이란-터키의 3자 구도로 옮겨가고 있다”며 “사우디가 (카타르·예멘에서처럼 갈등을 조장하는) 현재의 노선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자신의 위상은 더 축소되고 이란만 더욱 강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
[중앙일보] 2017.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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