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일기/해병336기 고상호

실록 병영 일기 / 제25화 : 역사의 반곡점 [10.26 사태]

머린코341(mc341) 2017. 8. 21. 11:42

실록 병영 일기 / 제25화 : 역사의 반곡점 [10.26 사태]

 

박정희 장군을 중심으로 5.16 세력은 정권을 잡고 재선만을 허용한 그들이 만든 헌법을 허물고 국가 재건의 완수와 튼튼한 안보 확립을 이루겠다는 명분으로 딱 3번만 하겠다고 3선 개헌을 추진하고 이를 관철한다.

 

그러나 정권에 대한 욕심은 끝이 없어 드디어 1972년 유신 헌법을 채택하고 영구 집권의 토대를 마련하고 종신 대통령 시대인 유신 시대가 펼쳐진다.

 

유신 시대 이후 해병대는 경제적인 군 운용이라는 미명하에 해군에 예속되는 수난을 당하기도 한다.

 

해군 교육단에 속했던 신병 훈련소에도 유신의 흔적은 당시 암기 사항 중 하나인 '해군의 다짐' 에서 엿볼수 있다.

 

훈련소에서 암기 하도록 했던 해군의 다짐 전반부는 모두 잊어버렸지만 마지막 구호인 '유신에 앞장 서는 해군이 되자' 라는 구호만은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때려잡자 김일성......"으로 시작되는 멸공구호에도 마지막 구호는 '이룩하자 유신과업'이었으며 실무에 와서는 "나는 국가 전략부대의 일원으로서 선봉군임을 자랑하다...." 로 시작되는 [해병의 긍지] 라는 구호에도 네번 째로 '나는 국민에게 신뢰 받는 유신해병이다' 라는 구절이 끼어 있었다.

 

정치, 경제,문화, 군사, 다방면에 걸쳐서 유신이 만병통치처럼 투습되어 있었다.

 

그러나 아이러니컬 하게도 기합 빠진 군인들의 행태를 '유신군대' 라는 말로 회자되기도 했다.

 

1979년 10월 27일 새벽 근무를 마치고 내무실에 들어와 보니 식사 수령을 갖다가 온 후임 해병으로부터 박정희 대통령이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 의해 시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부대원들에게 알려 주었다.

 

10월 26일에 시해 되었으나 공식적으로는 10월 27일 발표한 것 같다.

 

부대는 즉각 전투태세에 돌입했다. 모든 외출 외박 휴가가 전면 금지되었다.

 

라디오와 텔레비젼은 정규 방송을 거의 중단하고 박대통령 애도방송에 집중했다.

 

부대 밖으로 이동시에는 실탄을 장진한채 어떠한 상황에서도 전투에 즉각 투입 할 수 있도록 조치가 강구되었다.

 

야간에도 일주일인지 열흘인지 정확히 기억이 되지는 않지만 완전 군장을 싸놓고 군화를 신은채 취침을 하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북한 해군의 P.G.M 이 N L L에 근접하여 초비상 상태에 돌입하기도 하여 긴장이 고조되기도 했다.

 

연평도에도 민, 관, 군 합동 분향소가 설치 되었다.우리 부대도 경계근무 인원을 제외한 병력이 교대로 분향소에 가서 조문을 하기도 했다.

 

긴장이 오래 지속되니 피로감이 가속도를 붙는듯 했다.나는 원래 전쟁론자는 아니다.병의 책무라는 구호에도 나와 있듯이 병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함을 그 책무로 한다는 것이 나의 군대관의 지론과 합치 한다고 늘 생각하기도 했다.

 

우리 국민 중에 일부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미명하에 실제로는 종교적 신념에 따라 총을 들 수 없다는 주장을 하는 자들을 보면 이해가 가지 않고 분노를 느낄때도 있었다.

 

우리 군의 목적은 침략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적의 침략에 대비한 방어적 개념임을 생각 할때 과연 그들이 주장하는 집총거부, 병역 거부는 그들로 인하여 누군가가 대신하여 희생을 치룬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않될 주장이며 희생이 동반되지 않는 사랑이라는 것도 한낱 울리는 굉가리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런데 딱 한 번 긴장감이 오래 지속되고 피로감이 넘쳐서 제대 2개여월을 남긴 싯점이지만, 오히려 전쟁이 한 번 터졌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 본 적이 있다.

 

사실 진정한 승자는 전쟁을 하지 않고 평화를 지키는 것이 최고의 전략이라고 하지만 그 당시 그마만큼 긴장감이 컸다는 사실을 반증 한다고 본다.

 

그래도 다행히 북한이 오판을 하지 않고 국내 정세가 안정을 찾아 전투태세도 낮은 단계로 변환되어 어려운 국면을 슬기롭게 극복 하기도 했다.

 

20 여년의 장기집권과 유신체제가 무너지는 경험을 군 생활 중 겪기도 하는 이색적인 군 생활을 체험 하기도 했다.

 

1979년 11월 3일 박 대통령은 9일장으로, 국장으로 온 국민의 애도속에 엄수되므로'유신시대' 라는 한 시대도 막을 내렸고, 유신군대 라는 용어도 사라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