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군 부대 아닌 공항에서 미사일을 쐈던 숨겨진 비밀코드
미국 보복 두려웠나? 방공망 촘촘한 순안공항서 발사
김정은 전용기 보관하고 있어 보안구역으로 관리
미사일 보관할 별도의 격납고도 설치하고 준비해
활주로 근처 군사 목적의 다목적 착륙 훈련장 포착
북한이 지난달 29일 탄도미사일 화성-12형을 평양 구역 내 순안공항에서 발사한 비밀을 공개한다.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은 일본 열도를 넘어 동쪽 태평양 해상 2700㎞ 부근까지 날아갔다.
국가정보원은 같은 날 국회에서 평양의 순안 국제공항을 발사장소로 지목했다. 북한이 30일 공개한 영상과 사진을 분석해 보니 국정원의 발표는 사실로 밝혀졌다. 북한이 평소 군 부대에서 미사일을 쏘던 행태와 다르게 공항에서 발사한 배경에는 세 가지 비밀코드가 숨겨져 있다.
북한의 대형 정치행사가 열리는 김일성 광장에서 순안공항까지 거리는 20㎞를 넘어간다. 미림 비행장은 비교적 가까운 곳에 위치한다. [사진 구글어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조선중앙 TV]
순안 공항은 정기노선이 있는 북한의 유일한 국제공항이다. 평양시 중구역에 위치한 김일성 광장에서 북쪽으로 21㎞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평양 도심에서 차를 타고 이동하면 공항까지 약 40분 정도 걸린다. 이번 발사는 공항 구역 내 보조 활주로에서 이뤄졌다. 공항 청사 건물에서 북쪽으로 7㎞ 더 올라가야 나온다.
미사일 실험과 같은 민감한 군사작전을 왜 국제공항에서 했을까. 순안공항도 사실 군 부대 못지 않은 보안시설이다. 평양에서 외국을 자주 다녀왔던 탈북자는 “공항에서 평양 시내로 들어갈 때 10호 초소를 지난다”며 “차량 트렁크도 모두 열어 확인하는데 평양에서 나올 때도 반드시 거치는 검문 절차”라고 말했다. 공항 부근은 감시가 집중된 민감한 지역이란 설명이다.
남쪽 활주로에는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전용기와 일반 항공기, 청사가 위치한다. 북쪽 보조 활주로에서 미사일 발사가 이뤄졌다. [사진 구글어스]
따라서 공항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참관해도 문제없는 안전한 장소다. 새벽에 이동해도 경호작전에 무리가 없다는 얘기다. 김정은의 전용기가 항시 대기하는 곳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실험이 이뤄진 보조 활주로는 평소에도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된 구역이다. 비행기가 이착륙할 목적으로 유도로를 통해 이동하는 방법 말고는 접근할 방법이 없다. 활주로 주변 민가도 최소 1㎞ 이상 떨어져 있어 군 부대처럼 격리된 공간이다.
이번에 순안공항을 발사장소로 정할 때 급박한 이유도 있었다. 군 관계자는 “북한은 동창리에서 발사하려다가 마지막에 장소를 바꿔 이동했다”고 말했다.
동창리에는 미사일 발사 시설과 연료가 저장돼 있다. 장소를 바꿔 공항을 찾는다면 평양에는 다른 시설도 있다. 각종 행사를 개최하고 군사용으로 쓰이는 미림 비행장이다. 그러나 평양보다 북쪽인 자강도 동창리에서는 순안공항이 미림 비행장보다 가깝다.
뿐만 아니라 순안공항은 미림 비행장보다 훨씬 크다. 단순히 활주로만 비교해도 알 수 있다. 미림 비행장은 활주로가 ▶길이 500m, ▶폭 20m 정도지만, 순안공항은 ▶길이 4㎞, ▶폭 70m 수준으로 미림 비행장보다 4배나 크다. 각종 장비를 움직이고 실험하기에 순안공항이 더 적합하다.
지난 29일 순안 공항 보조 활주로에서 실시된 북한이 미사일 실험을 재구성해봤다. [사진 구글어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조선중앙 TV]
북한이 공개한 사진과 동영상을 분석한 결과 미사일 발사는 보조 활주로 북쪽 끝에서 이뤄졌다. 해가 뜬 이후 김정은 왼쪽으로 그림자가 생겼다. 따라서 김정은이 북쪽을 향해 앉아 발사 순간을 지켜봤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발사 지점과의 거리는 약 1.3㎞ 정도다.
북한은 활주로 옆에 별도의 격납고를 만들어 실험을 준비했다. 과거 위성 사진에서는 발견할 수 없었던 건물이다. 비행기가 들어갈 정도로 크지는 않다. 미사일을 보관하려고 만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공개한 영상을 보더라도 발사 직전 이곳에서 미사일 이동 발사대가 출발했다. 정보 관계자는 “보조 활주로를 실험장으로 사용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사례는 밝히지 않았다.
김정은이 평양에서 미사일 발사를 시도한 다른 이유도 있다는 분석이다. 한ㆍ미 연합군의 선제공격과 참수작전이 신경쓰이는 김정은에게는 대공 방어망이 촘촘하게 구성된 평양이 비교적 안전하기 때문이다. 최근 고조된 위기 국면에 따른 부담을 의식했다고 풀이된다.
마침 미국은 지난 달 31일 전략자산을 한반도에 전개해 북한을 압박했다. 이날 휴전선 부근까지 날아간 F-35B 전폭기는 북한의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스텔스 기능도 갖췄다. 북한의 화성-12형 미사일 발사 준비는 사전에 미국 정보망에 탐지됐고, 미국이 마음만 먹으면 참수작전도 실시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김정은이 하늘을 두려워 하는 이유다. 따라서 북한은 앞으로도 중장거리 미사일을 순안공항에서 발사할 가능성이 있다.
순안 공항에서 정밀한 착지를 유도하는 표식이 발견됐다. [사진 구글어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조선중앙 TV]
위성 사진에 드러난 비밀은 한가지 더 있다. 미사일을 쏜 지점에서 불과 200m 북서쪽에 또 다른 군사작전의 흔적이 남아있다. 마치 사격 표적과 같은 거대한 원형의 지름 거리가 180m에 이른다. 북한은 지난 26일 특수부대의 백령도 점령 훈련을 공개했다. AN-2 수송기를 타고 날아온 뒤 뛰어내리는 장면도 있었다. 이에 앞서 지난해 청와대 점령 훈련에서도 낙하산 침투를 공개했었다.
김진형 전 합참 전략기획부 부장은 “특수부대 착륙 훈련장과 비슷하다”면서도 “다목적 착륙지점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반적인 착륙지점과 다르다는 얘기다. 김 제독은 “10m 단위로 세부 거리를 표시한 것을 주목해야 한다”며 “드론과 같은 비행체를 착륙시키는 훈련장으로 쓰여 질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위해 북한에 도착했던 순안공항은 더 이상 평화의 상징이 아니었다. 탄도 미사일과 특수전 부대와 같은 북한의 비대칭 군사위협이 다층적으로 쌓여 있다.
박용한 군사안보연구소 연구위원 park.yonghan@joongang.co.kr
[중앙일보] 2017.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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