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일기/해병740기 김동훈

실무생활-20 인계사항과 체질선임

머린코341(mc341) 2019. 10. 8. 11:09

실무생활-20  인계사항과 체질선임

 

말 그대로 인계사항은 업무를 담당하는 인력의 변동이 있거나 관장하는 업체의 변동이 있을 때 담당자간 혹은 회사대 회사간에 진행하던 업무에 대해 인계를 하고 인수를 하는 절차와도 같은 맥락이다.


직장생활을 한다면 누구나 한번쯤은 전임자에게 업무 인수인계를 받은 경험이 있으리라.


하지만 해병대의 인계사항은 공지사항과 비슷한 성격을 가진다. 윗선에서 어떤 지시가 내려오면 병장은 상병에게 상병은 일병에게 일병은 이병에게 이런 계급순으로 최고위급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일련의 과정으로 이해를 하면 빠르다.

(중대장을 제외한 위관급 장교가 사병에게.. 하사관이 사병에게 인계사항을 내리는 법은 없다.)


그런데 이런 과정들이 그리 민주적이지 (?) 않아서 인계사항을 전달하는 과정에서도 구타가 작렬하며 기압이 춤을 춘다.


쫄병집단인 일병과 이병은 인계사항 전달도 선임들 앞에서 대 놓고 내지르지 못하고 귀에서 귀로 아니면 은밀한 장소(짱박히기 좋은 장소)에게 아주 강압적이게 내용들이 전달된다.  거기에 간간히 쭐대치기가 시연이 되고..


바로 윗 선임이 조용히 다가와서 귓속말 수준으로 "야..개쫄들은 걷지 말고 항상 뛰어다녀라. 인계사항이다." 라는 식으로 전달이 되는데 이 내용을 잊어버리거나 지키지 않을 시에는 집단으로 개인은 물론 비슷한 기수, 같은 계급이 한사람의 실수로 인해 단체로 개박살 날 수가 있기 때문에 인계사항이라면 자다가도 일어날 정도로 학습에 공을 기울인다.


간혹 가다 윗선에서 타고 내려오는 인계사항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 전체가 해당 인계사항을 시연하지 못하는 경우가 가장 최악의 경우인데 이런 경우는 큰 실수로 인식되고 줄빠따 내지는 기수별로 차례차례 불려가서 마른날에 눈앞에 번개가 일도록 두들겨 맞은 것이다. 


타군이나(타군도 있겠지만) 민간인들이 생각할 때는 내용에 비해 과한 것 아닌가? 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이게 평시가 아니라 전시라면 지휘부의 명령과 지시를 잘 못 받아들여 병력이 위험에 그대로 노출되거나 몰살당할 수 있는 위험도 있는 것이다.


기수와 이름은 언급하지 않겠다. 그 선임으로 인해 위,아래 기수가 어지간히도 고생했던 기억이 있다.


상말이나 일말이 "난 분명히 OOO에게 인계사항을 내렸는데 못 들을 수 있어?" 하는 식으로 문제가 발생하고 개박살이 시작되는 것이다.  못들은 것을 못들었다 해야지... 못 들은 것을 들었다고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영문도 모른채 집합장소로 끌려가 박살이 나고 돌아와서야 내가 왜 맞고 왔는가를 알때도 많다. 그 중심에는 항상 그 선임이 있었는데 사람으로 따지면 좋은 사람이다. 하지만 군생활 (특히 해병대 생활)에서는 참으로 특화되지 않은 사람이었다.


한 선임의 실수로 인해 억울하게 박살나는 횟수가 잦아질수록 "기수열외" 라는 무시무시한 것들이 발생하게 되는데 내 기억으로는 그 정도까지는 가지 않게 되었고.. 그런 내용들을 접수한 대대장님의 특단의 조치에 의해 이제 완전히 그냥 갈호밖으로 분류가 되어 직접적으로 인계사항을 전달하는 일은 더 이상 그 선임이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니 더 이상의 Miss comm. 이 일어나지 않았고 인계사항은 단계별로 잘 내려왔고 잘 시행도 되었다.


개쫄 입장에서는 "참 씨바 별것도 인계사항이다" 라고 느끼기야 수십번이지만 인계사항 자체에 대해 불만을 갖거나 꼰티 (아니꼬운 표정을 밖으로 표출함)를 낸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기에 조용히 짱박혀서 그저 개쫄끼리 담배나 나눠피며 "씨발..씨발" 하는 것이 전부일뿐이다.


선임들 얘기가 나왔으니 마저 적는다.


"야..걔 존나 체질이야..니넨 좆됐어"
"OOO이 이 씨*놈 존나 체질이네 ㅎㅎㅎ"


처음엔 이 "체질" 이란 뜻이 뭔지 몰랐다. 선임들이 자꾸 체질체질 하길래 적응을 잘 하는 사람? 정도인가 생각을 했는데 나중에 짠밥을 먹어가면서 체질선임,체질쫄병 이란 걸 확실히 알게되었다.


일단 체질 이란 것에 등극하려면 여러 부분의 조건을 갖춰서 된다. 선임이 후임에게 붙히는 체질은 "너는 참다운 해병이야!!" 하는 인정을 해 주는 것에 가깝다.


체질이 되기 위해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될 요건들로는

1.작업을 잘한다.
2.운동도 잘한다. (특히 축구)
3.문제없이 구타를 시연한다. (잘 못 때리는 선임이 제일 위험한 선임이다. 고막,허리를 나가게 해버리는......)
4.선임들이 뭐라 하기 전에 문제 파악을 하고 대응을 한다.
5.선임들을 대우하고 후임에게는 추상같으나 잘해줄때와 갈굼에 논리가 있고 변별력이 있다.


대강 위의 조건들을 만족하면 체질선임,체질후임으로 분류가 되어 조직내에서는 칭송(?)을 받게 되는데 체질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해병들은 뭐든 시켜도 잘 한다. 이게 일반적인 평이다.


해병대의 기수문화는 자연스레 계급으로도 분류가 되지만 타군에서 부르는 O월 군번 같은 그런 명칭은 쓰지 않고 오직 기수로만 구분이 된다.


즉 이병이라도 기수로 분류가 되면 자연스레 질서가 잡히고 오히려 쫄병들의 세계.즉 그들만의 리그가 가장 빡시고 힘든 리그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난 739기 선임과 지원동기이다.


그러나 나이가 많은 인원들은 739기로 분류가 되고 나이가 적은 인원들은 740기로 분류가 되어서 15일차 선임과 후임이 되는 것이다.  15일차라고 해서 우습게 볼 수 있는 선임은 아니다.


오히려 한기수차이가 참 악랄하다. 난 다행히 참으로 여리고 좋은 바로 윗기수 선임을 만나서 좋았고 말년엔 거의 동급으로 지냈지만 기본적인 예우를 지키지 않거나 지시를 불이행 한 적은 없다.


체질선임 (위,아래가 인정하는)중에 기억하는 선임이 있다.경상도 사람에다가 키는 그리 크지 않아도 체격은 참 다부졌다.


펀치가 강해서 제대로 맞으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기절을 해버리는 광경을 목격한 후로는 공포의 대상이 되었고 경외의 대상이 되었다.


휴가를 다녀와 여친과 뭐 그랬는데 온 방안을 빙빙 돌아다니면서 하룻밤에 5~6번을 한다는 말을 듣고 웃었다가 아구창이 날아갈뻔 한 아찔한 기억이 있다. 그 때는 얼마나 웃기던지.. 그리고 잘해줄때는 한없이 잘해주고 누구보다도 쫄병을 챙겨준다.


1주일에 한번씩 종교활동을 갈 때면 항상 선임들이 후임들에게 과자파티를 열어주곤 했다. 민간인들이 가장 의아해 하는 것 중 하나가 험상궂고 머리도 살벌하게 깍은 해병들이  과자 박스 앞에 앉아서 정신없이  먹고 있는 모습이 그리 이상하고 웃겼다고 한다.


먹는 것도 쫄병은 악기 있게 먹었어야 했지만 1주일에 한번씩 원없이 먹어 보는 과자맛이 나쁘지는 않았다. 대신 정신없이 먹고 나면 항상 입천장이 까져서 따끔따끔했다.


또 지역별로 구분을 해서 전역을 할때나 기념할일이 있으면 챙겨주기도 한다. 전국 8도를 나누어 서울,경기는 뺀질이, 경상도는 보리, 전라도는 깽깽이, 강원도는 감자. 충청도는 멍청..


이렇게 분류를 해서 지역 출신들끼리 모여서 간혹 작은 회식 (회식이라 해봤자 과자와 앞서 말한 꽁꽁떡볶이,음료수가 전부지만) 도 열어줬고 그 비용은 모두 고참들 주머니에서 나왔다. 각출을 하더라도 항상 바닥은 열외였다.


지금 그 체질 선임은 울산에서 살고 있으며 노조가 빠이팅 하기로 유명한 그 회사에 다니고 있다고 한다. 예전 술 자리에서 한번 통화를 하고 전화번호도 교환하고 했지만 거리가 멀고 세월이 지나다 보니 연락이  뜸해졌고 핸드폰 번호는 저장되어 있지 않다. 조만간 연락처를 수소문하여 통화라도 해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