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일기/해병740기 김동훈

실무생활-26 진급식

머린코341(mc341) 2019. 10. 9. 13:11

실무생활-26  진급식


그렇게 힘든 완전무장 구보에서 느끼는 마약같은 쾌락을 경험하고 쫄병이라는 이유로 주계 대형 가마 솥에서 삶은 라면을 원없이 먹었다. 아니 마셨다.


고참들의 배려에 양은 많았지만 여전히 먹는 것 또한 악기가 있어야 하는 개쫄이기에 라면을 입에 넣고 오물오물 씹는 다는 것은 사치였고.. 그냥 후루룩~` 마셔버린다. 그래도 어찌나 꿀맛이던지~~


엄청난 포만감이 느껴질 줄 알았는데 다 먹고 뒷 정리를 하고 중대에 들어와서 쭈삣거리며 눈치보다 맨 나중에야 목욕을 한 뒤 이리저리 불러 다니니 금새 배가 꺼진다.


그 당시 목욕이라고 해봤자 중대 화장실에 있는 대형 독고다이에 받아진 찬물을 끼 얹는 정도이고 비누칠 하라는 오더가 있으면 머리고 몸이고 그냥 세숫비누로 쓱쓱 칠하고 물 두어번 끼 얹는게 전부였다.


고참들은 내무실 난로에 데워진 물을 뜨거울새라 찬물까지 타가며 닦았지만 개쫄에게는 그런 따뜻한 물이 돌아올 리 만무했다.


이제 속으로만 그리던 이병 생활의 종지부가 보였다.


중대에도 내무실에도 내 밑으로가 생겼으나 같은 개쫄이다 보니 선임들 있을 땐 쫄이 쫄을 갈군다는 건 상상도 못하고 그저 선임들이 자리를 비켜나 주면 그제서야 같은 개쫄끼리 누가 선임이고 누가 후임인가를 구분 짓고 나름 체질같이 관리하기도 했다.


15일 차이라 해도 해병은 기숫발이라 1기수 선임이 어떨땐 제일 어렵고 무서우며 구타에 능했다. 말년엔 같이 친구처럼 허물없이 지내기고 하지만 그건 까마득한 때고참때이고 지금은 그냥 너나 나나 개쫄일 뿐이었다.


중대 총기상 15분전 이라는 소리를 들으면 제일 먼저 기다렸듯이 튕겨져 나가 내무실 불을 켜고 화장실로 달려가 마대를 가지고 와야하는데 마대는 몇개 없으나 내무반은 여럿이라 그 사소한 마대 확보 경쟁에 지기라도 하면 어김없이 쭐때치기 였다.


내 바로 위 738기 선임이 마대 확보에 능했다. 총기상 15분 전에 미리 대기타고 있다가 기상 소리가 떨어지기 무섭게 후다닥 차고 나가 마대를 두개나 가지고 들어왔다.


그리고 이 양반은 본인 스스로를 "정신분열증 환자" 즉 조현병 환자라 칭하고 뼛속까지 해병 정신으로 무장한 자 였는데 나이는 나와 동갑이었지만 사회서 나름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은 양반이라 역시 구타에 능하며 가혹하며 한번 마음 먹으면 쫄들을 아주 처절하게 응징해주는 체질이었다.


그런데 나에겐 아주 관대했다. 앞서 말한 것 과 같이 둘이 개쫄로 지내면서 연대 PX까지 원정을 나가 꽁꽁 떡볶이를 사서 보일러 실에서 짱박혀 먹다가 725기 선임에게 불려가 개 맞듯 맞았고. 나중엔 전술훈련을 마치고 허락없이 주계 추례라에 탑승하여 중대로 복귀하다 대대장님의 눈에 띄어 중대장, 중대선임하사가 우리 들 때문에 욕을 오지게 먹은 적도 있었고 훈련중에 산속에 짱빡히면 더덕을 찾아내어 둘이서 그 알싸한 더덕향을 즐겼던 때도 많다.


제대 후 처음 찾아가니 그렇게 반기며 소주를 둘이서 얼마나 마셨는지 모를 정도로 마시고 기어코 날 미아리로 데려가 홍등가에 밀어 넣었다 ㅎㅎ


그렇게 가끔 만나고 늦게 한 결혼식에도 찾아가곤 하는 사이였지만 이 양반이 술만 먹으면 개가 되는 습성이 있어서 지금도 교류하고 지내는 중대 모임에는 참석을 하지 않는다. 식구들과 다 모인 모임에서 썅욕이 난무하면 그 모임은 남아 나지 않는다.


진급 인원이 확정되었고.


나도 이제 이병에서 일병을 달게 되었다. 노란 짝대기 하나가 그리 초라하고 없어 보였는데 이제 하나의 짝대기 위에 하나를 더 얹으니 개쫄을 면했다는 것이고 아주 작은 신분 상승이 되어 약간의 누릴 것들도 있었다.


대대장님에게 집단 진급 신고를 하고 중대장, 중대선하에게 신고를 한 뒤 각 내무실 오장에게 신고를 한다.


노란 일병 계급장을 하사받고 전투복 위에 붙히면 (오바로크나 꿔매지 않고 그냥 본드로 붙혔다) 그렇게 뿌듯하고 자세가 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각 내무실을 내무실 오장에게 진급신고를 하는데 이 때 부터가 곤욕이다. 진급은 처음이었으나 그간 우리 내무실을 거쳐간 진급자에게 선사된 그 훙칙한 것들을 보았으므로 저런 진급식이면 하지 않는게 나을 줄 모른다는 생각까지 했다.


그래도 그것은 찰나고 짝대기 하나는 7개월을 버틸 수 있게 한다. 


자주 하는 얘기지만 "정말?" 이라고 되물어 볼 수 있지만 팩트에 근거해서 적는 이야기이고 내용의 가감은 없다. 아마  지금은 이런 전통은 없어졌을 것이라 믿는다.  그때는 그냥 하나의 의식이라고 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분명한 가혹행위였다. ㅎㅎ


진급자 들과 우르르 각 내무실을 돌면서 신고를 하는데 각 내무실의 하리마우가 계급장을 선물하기도 하고 진급한 신분에 맞는 작은 기념품도 선물해주기도 한다. 대부분 진심으로 축하를 해준다.


1 내무실 부터 진급자들의 신고가 시작되었다. 내무실에 들어가니 그 내무실 하리마우가 계급장과 기념품을 나눠줬으며


"이야.. 가로지기. 이제 일병이야? 고참이네 가로지기 ㅎㅎㅎㅎ 고생했다. 고생했어.."


이런 식으로 덕담을 해준다.


자 그 담엔 준비한 걸 가지고 오라고 한다. 보아하니 바케스에 물이 찰랑 찰랑 넘치려 한다.


그 때 그 내무실 하리마우가 바닥을 찾더니 바닥의 양말을 벗게 했다. (아... 설마 저것을?) 언제나 불행한 예상은 적중을 한다.


방금 발바닥에 땀 나도록 뛰어다닌 바닥의 양말이 벗겨지는 순간. 악취가 대단했는데 그것을 바케스에 담그더니 행군다. 그리고 알뜰하게 물기가 없도록 짠다. 깨끗하게 찰랑이던 바케스 안의 물이 혼탁해 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난 다음..


아... 더 이상의 세부적인 표현은 아무래도 그만 적어야겠다. 적어도 "정말?" 이라고 되물을 것 같아 말이다.

여튼..


7내무실까지 돌면서 병장 진급대상인 선임은 비위가 약해서 인지 여러번 바케스에 대고 오바이트를 했다.


아.. 진급이란게 이렇게 고난을 넘는 행군이었구나.


뭐든 가벼운게 없고 뭐든 적당한게 없고 뭐든 모자란게 없는 것이 바로 이놈의 해병생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