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귀근의 병영톡톡] 폐교될 뻔한 간호사관학교, '코로나 의료' 중심에
국방부, 1998년 군개혁 일환 폐지 결정…거센 여론에 2001년 '존치'
한때 남자 입학 논란도…'코로나 최전선' 달려가 몸 사리지 않는 헌신
마스크에 쓸린 콧등 밴드 붙인 간호장교
(서울=연합뉴스) 국군춘천병원 소속 간호장교 김혜주 대위(육군 전문사관 16기)가 대구 동산의료원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격리병동에서 환자를 돌보고 있다. [국방부 SNS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김귀근 기자 = 오래 착용하는 마스크에 쓸려 상처가 난 콧등에 두겹의 밴드를 붙이고 그 위에 또 마스크를 쓰는 한 간호장교의 사진이 뭉클한 감동을 줬다.
이 사진은 바이러스라는 '보이지 않는 적'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수많은 간호장교와 간호사, 간호조무사 등 의료지원 인력의 활약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최일선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를 위해 자신의 몸을 사리지 않는 모든 간호인의 상처다.
많은 간호 인력 중에서도 지난 5일부터 국군대구병원에 투입된 새내기 간호장교 75명이 주목을 받았다. 국군간호사관학교(이하 국간사) 60기인 이들은 양어깨에 '은빛 다이아몬드 한 개'(소위 계급장)를 얹고 국군대구병원에 전원 투입됐다.
당초 이달 9일 임관 예정이었던 이들은 대구지역의 의료지원 상황을 고려한 정부 방침에 따라 지난 3일 앞당겨 임관했다.
일각에서 고참 간호 장교들도 있는데 왜 신참 장교들을 최일선에 투입하느냐는 지적도 있었지만, 정작 신임 간호 장교들의 얼굴에는 국가의 부름에 헌신한다는 비장함마저 감돌았다. 쌍둥이 자매, 6·25 참전용사 후손, 아빠와 오빠가 군인 등 사연과 면면도 다양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일 신임 간호장교 교육장에 들러 "안쓰럽고, 미안하기도 하다"고 격려했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이들의 임관식에 참석해 축사를 통해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을 함께 갖고 있다"고 다독였다.
소식을 접한 국민들도 온라인에 "진정한 애국자다", "우리 딸들아 고맙다", "건강도 잘 챙기고 돌아오라"는 등의 격려 글을 남겼다.
군인 신분인 간호 장교들은 한국의 나이팅게일로 불린다. 2학년 2학기 중에 다른 대학 간호학과와 마찬가지로 나이팅게일 선서식을 한다. '백의의 천사' 답게 흰색 간호복에 촛불을 들고 나이팅게일의 숭고한 희생과 간호 정신을 본받고 전문 의료인으로서 사랑과 봉사의 자세로 헌신의 삶을 다짐하는 의식이다.
자랑스러운 소위들
(경산=연합뉴스) 김주성 기자 = 임관식을 마친 뒤 곧바로 대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의료 현장에 투입된 신임 간호장교들이 3월 4일 의료지원 임무를 수행하게 될 경북 경산시 국군대구병원에서 식사를 마친 뒤 이동하고 있다.
국간사는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기생을 시작으로 올해 60기까지 배출했다. 휴전협정 무렵에 입교했어야 할 4기생은 없다. 당시 '죽을 사(死)'자를 기피해 3기에서 바로 5기로 건너뛰었다고 한다.
순항하던 국간사에도 아픔인 '흑역사'가 있다. 2000년(44기)과 2001년(45기) 연속으로 생도를 뽑지 못했다.
◇ 폐교 결정했다가 예비역 반발로 존치…남자 생도 허용 여부 한때 논란
국방부는 IMF(국제통화기금) 위기에 따른 국방예산 절감과 군구조 개혁이란 미명 아래 1998년 8월 국간사 폐교와 국군체육부대(상무) 폐지를 발표했다.
당시 국방부는 1999년부터 신규 모집을 중단하고 생도들이 모두 졸업하는 2003년에 폐교한다고 했다. "급변하는 국내외 안보 상황에 대비해 전투 위주의 군 본연의 임무 수행에 충실한 군구조로 개선하기 위해서"라는 것이 명분이었다.
실제 2000년과 2001년 신입 생도를 뽑지 않아 4년제인데도 2002학년도에는 2, 3학년이 없었고, 43기가 졸업한 2003학년도에는 1, 2학년만 다니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간호사관학교 캐릭터 '한나예'
(서울=연합뉴스) 국군간호사관학교 캐릭터 '한나예'는 한국의 나이팅게일의 후예라는 뜻이다. 2020.3.7 [국간사 홈피 캡처]
예비역 간호 장교들이 중앙일간지에 광고를 내는 등 들고 일어났다. 당시 이들은 "30년 넘은 간호사관학교 폐지 소식을 듣고 참담한 심정이다. 허리띠를 졸라매는 고통에는 동참하겠으나 학교 문을 닫으라는 명령만은 승복하고 싶지 않다"고 집단 반발했다.
폐교 논란이 정치권으로까지 번지며 사회 갈등 양상으로 비화하자 2001년 5월 정부와 당시 여당이던 민주당은 당정회의를 개최해 4년제 국간사의 존치를 결정했다.
당시 이해찬 정책위의장, 이낙연 제1정조위원장, 김동신 국방부 장관, 한명숙 여성부 장관 등이 참석했다. 이후 2002년 간호사관 생도 99명을 뽑았다.
만약 당시 국방부 결정대로 간호사관학교가 폐교했다면 현재와 같은 '의료 대란'에 필요한 숙련된 의료 인력은 더욱 부족했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2002년 1월에는 양승숙 대령이 준장으로 진급해 간호사관학교장을 맡았다. 양 대령의 진급은 창군 53년 만에 첫 여성 장군 탄생이란 기록도 남겼다.
이와 함께 국간사에 남자 생도 입학을 허용하는 문제도 한동안 논란거리였다.
육·해·공군사관학교가 여자에게 문호를 개방한 마당에 국간사의 남자 생도 입학 불허는 남녀 차별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육사는 1998년(58기), 해사는 1999년(57기), 공사는 1997년(49기)에 각각 '금녀의 벽'을 허물었다. 물론 국방부는 반대했다. "남학생이 입학하게 될 경우 학교의 남녀 시설을 보완해야 하고 군에서 남성 간호 인력이 필요한지 등 점검해야 할 과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라고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간호사관생도 나이팅게일 선서식
[국간사 홈피 캡처]
그러다가 국방부는 2005년도 신입생부터 정원의 10%를 남자 생도로 선발키로 하고 간호사관학교 설치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고 2003년 발표했다.
각 군 사관학교가 이미 여자 생도를 선발하고 있는데 간호사관학교만 남자 생도를 뽑지 않는 것은 역차별이라는 군 안팎의 지적에 따른 것이었다. 그해 정부 규제개혁위원회는 단기사관학교(육군3사관학교)와 간호사관학교가 남녀 구분 없이 학생을 선발하도록 국방부에 권고했다.
이후에도 찬반 논란은 계속됐고, 국방부 발표 9년 만인 2012년 1월 간호사관학교 60년 역사상 처음으로 선발된 남자 생도 8명이 '금남의 문'을 넘었다.
56기생으로 입교한 이들은 94.3대1의 높은 경쟁률을 뚫고 선발됐다. 학교는 남자 생도 입학 전 부랴부랴 남자 화장실과 샤워실을 만들고, 남자 생도실도 새로 마련했다. 정복도 남자 생도의 몸에 맞춰 주문했다.
그간 남자 생도 몇 명이 중간에 학교를 그만둔 사례는 있었지만, 남자 간호 장교들도 임관 후 국군병원 등에서 군 의료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이번에 임관 직후 국군대구병원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60기 간호장교 중 남자는 7명이다.
간호사관학교 입학식
[국간사 홈피 캡처]
김귀근 기자 three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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