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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해병대

머린코341(mc341) 2014. 7. 13. 17:28

대한민국 해병대

 

대한민국 해병대(大韓民國 海兵隊, 영어: Republic of Korea Marine Corps/ROK Marines, ROKMC)는 대한민국 해군 예하에 편성되어 있는 해병대이다. 국가 전략 기동군으로서 해병대는 상륙작전을 수행한다.

 

현재 K1 전차와 K9 자주포 등의 기갑 장비와 상륙돌격장갑차(KAAVP7A1) 상륙 장비를 갖췄으며, 미국 해병대를 본따 국가 전략 기동군으로서 발전을 진행하고 있다. 독도함도 이런 해병대의 미래 발전계획을 뒷받침하기 위해 건조되었다.


개요

 

처음 대한민국 해병대는 해상에서 육지으로 전력을 전개하기 위한 목적으로 출발하였으나, 현재는 헬기와 항공기를 통한 공중 진입이 가능해지면서 해병대는 과거의 해상투사 이외의 공중강습과 공수작전이 가능토록 편성되고 훈련되지고 있다.

 

현재 해병대의 이러한 임무는 국가전략기동부대라는 용어로 쓰이고 있으며 해상투사 이외의 공중강습과 공수작전개념이 도입되면서 상륙작전에도 반영되어 초수평선상륙작전 개념이 도입되었다. 해병대 항공단을 신설하였다.

 

2012년 현재 2개 사단, 1개 여단, 연평부대, 제주방어사령부 예하 해병부대, 진해 해군기지사령부 육상경비대대, 부산 가덕도 해병경비대 및 사령부, 교육훈련단, 지원부대들로 구성되어 있다. 참고로 해병대를 포함한 대한민국 해군은 병력 약 69,000명, 잠수함 약 20 척, 전투함정 약 140 척, 지원함정 20 척, 헬기/해상초계기 약 50 대를 보유하고 있다.

 

역사

 

초기

여수 10.19 사건의 결과에 따라 상륙전을 담당할 부대의 필요성을 검토하여 미국 해병대를 모방하여 1949년 4월 15일 경상남도 창원군 진해읍에 위치한 덕산 비행장에서 대한민국 해병대가 창설되었다. 5월 5일, 대통령령 제88호로 해병대령이 공포되었다.

 

그들을 지휘할 최초의 해병 사령관은 신현준 중령, 해병 참모장은 김성은 통제부 교육부장이었다. 그리고 부대원은 해군 장교 26명, 부사관 54명, 병[2] 300명으로 구성되었다. 8월 1일 해군에서 장교와 부사관을 증원받고, 해군 병 14기 중에서 440명을 해병대 병 2기로 특별모집받아? 2개 대대 규모로 편성되었는데, 이들은 8월 15일 광복절 4주년 기념식에서 사열하면서 최초로 모습을 대외적으로 드러내었다.

 

그리고 같은 해 9월, 신영철과 김행래에 의해 작사·작곡하고 이병걸이 편곡한 〈나가자 해병대〉가 해병참모장 김성은 대령을 위원장으로 한 군가제정위원회에서 공식적으로 해병대의 군가로 제정되었다.(추후 "해병대가"로 변경되었다.)

 

8월 29일, 진주에 전개한 김성은의 대대가 4개월간 지리산 공비를 토벌하고 같은 해, 12월 29일 제주도에 상륙하여 옮겨가 이듬해 1950년 7월까지 약 약 7개월 동안 제주읍과 모슬포를 근거지로 하고 공비를 토벌하였다.

 

한국 전쟁

1950년 8월 17일 통영 상륙 작전에서 해병대 1개 중대는 조선인민군 대대 병력을 격파하고 통영을 탈환하는데 성공하였다. 1950년 8월 23일 최초의 퓰리처상 여성 수상자인 뉴욕 헤럴드 트리뷴지 마거릿 히긴스 기자는 이 성과를 보도하는 《귀신잡는 해병》(Ghost-catching Marines)이라는 기사에서 "한국 해병대는 악마조차도 잡을 정도였다."(They might even capture the devil)고 썼고, 그 이후로 '귀신 잡는 해병대'라는 별칭이 붙었다.

 

같은해 9월 1일에 제1연대가 창설되었다. 1연대는 9월 15일 미국 1 해병 사단와 같이 미국 10(X) 군단에 편성되어 인천항에 상륙하였다. 9월 27일 서울로 진격하여 중앙청에 태극기를 개양하고 다음날 9월 28일 조선인민해방군의 잔여병력을 소탕함으로써 대한민국의 수도를 되찾았다.[7] 이후, 전세가 기울어 국제 연합군이 혜산진까지 진격하자, 대한민국 해병대는 각각 원산과 함흥 지역에 상륙하여 전투를 수행하였다. 그러나, 10월 25일 중국 인민해방군이 증원되어 한반도로 진입해오자, 각 지역에 있던 해병대는 일제히 철수하여 진해로 집결하였다. 12월 20일, 5 독립대대를 창설하였다.

 

1951년 6월 4일, 미국 5 해병 연대가 도솔산을 탈환하는데 실패하자, 1 연대는 그들과 임무를 교대하여 중국 인민해방군 5 군단 예하 12 사단과 32 사단를 상대로 6월 20일까지 전투를 지속하여 2개 사단을 격파하였다. 1 연대는 "무적 해병" 칭호와 8월 19일 대통령 부대표창을 수여받았다. 8월 30일에는 김일성 고지에서 3 군단 예하 1 사단를 상대로 부터 9월 4일까지 4일간 공방전을 벌여 924 "김일성" 고지와 1026 "모택동" 고지를 탈환하였다. 전후, 미국 측에서는 이 전투를 단장의 능선 전투로 명명하였다.

 

1952년 1 연대와 5 독립대대가 합병하여 1 전투단으로 재편성되었다.

 

전쟁 이후 ~ 해체

한국 전쟁이 휴전되자 해병대는 정비에 돌입했다. 1 전투단은 경기도 파주군 아동면으로 이동하고 1954년 2월 1일 1 여단으로 증편한 뒤, 3월 14일 미국으로 귀환하는 미국 1 해병 사단에게서 책임진술지역(TAOR)의 작전지휘권을 인수하였다. 그리고 이듬해 1955년 1월 1 상륙사단으로 증편되고, 3월 26일 사령부가 경상남도 부산시에서 서울특별시 용산구 후암동 남산 기슭로 옮겨졌다.

 

1959년 2월 26일, 1 사단은 1연대를 차출하여 1 임시여단으로 증편한 뒤, 김포 반도의 경비를 맡기고 3월 12일 포항시로 이동하였다.

 

재창설 이후

1987년 11월 1일 14년간 해군에 통합되어 운용되면서 나타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해병대 사령부를 재창설하였다. 그러나, 권한과 책임사상 등이 보완되지 않아, 해병대 인사관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90년 8월 1일 법률이 개정되면서 해병대 사령관의 지휘권한이 회복되었다. 1992년 12월 1일 한미연합사령부 예비 전력 부대로서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연합 해병대 사령부(Combined Marine Component Force Command; CMFC)가 창설되었다.

 

2005년 노무현 대통령이 제시한 국방개혁 2020 계획이 재정되어 6해병여단과 연평부대가 해체되고, 백령부대와 제주부대를 창설하고 정보단과 통신단을 정식으로 편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비용 등의 문제와 조선인민군 4군단에 의한 연평도 포격으로 해병대의 신속 대응에 문제가 제기되고 계획이 폐지됨으로써 취소되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제시한 국방개혁 307계획에 따라 해병대 사령관 겸임 지휘하는 서해5도에서의 조선인민군의 위협에 빠른 대응을 이끌어내기 위해 합동 사령부인 서북도서방위사령부를 설치하였다. 그리고 국방개혁 2020의 일부 계획안인 제주부대, 정보단과 통신단의 창설 계획을 되살리고, 신속대응과 공중, 지상 기동작전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로 바꾸기 위해 사령부 직할 항공단의 창설을 추가하였다.

 

2017년 도입 예정인 상륙기동헬기 32대를 직접 운용 여부는 김관진 국방장관 주재 군무회의에서 최종 확정되었다. 해병대는 1973년 해병대사령부 해체 이후 해군에 통합된 이후 44년 만에 항공 전력을 갖추게 된다. 해병대는 1973년 10월 해군에 통합되면서 12대의 헬기와 125명의 운용요원 모두 해군으로 소속이 바뀌었으며 1987년 11월 해병대 사령부가 재창설 됐지만 헬기는 돌려받지 못했다.

 

2013년 국회 국방위의 해병대 국정감사에서 해병대 전투병의 사격량이 육군 전투병 사격량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고, 인가된 교탄의 일부만 사용해 왔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등 해병대의 부실한 사격훈련 실태가 지적되기도 했다.

 

해군과 분리 독립

해병대가 2013년 하반기부터 예산과 관련한 사실상 일체의 권한을 해군으로부터 넘겨받게 될 예정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국방부는 방위사업법 시행령과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것으로 확인했다.

 

국방부에 따르면 2013년 4월 4일 방위사업추진위원회 위원에 해병대 부사령관을 포함하고 무기체계 등의 `소요요청기관`에 해병대를 해군과 분리해 별도로 명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방위사업법 시행령과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시행령ㆍ시행규칙이 개정되면 해병대 사령관이 직접 방위사업청장이나 합참의장에게 필요한 무기체계 소요를 제출할 수 있다. 그동안 해병대는 법적으로 해군에 소속돼 있어 해군을 통해서만 필요한 장비나 무기에 대한 소요를 제기할 수 있었다. 또한 국방장관이 2012년 6월 군무회의에서 상륙기동헬기 32대를 해병대에서 운영하도록 결정했다.

 

장교양성

2012년 6월 27일 해병대 사령부는 단국대학교와 대한민국 최초로 해병대군사학과의 신설을 위한 협약을 체결하였고[16], 2013년 해병대군사학과 1기 신입생을 선발하였다. 해병대군사학과는 대한민국 유일의 해병대 장교 양성 학과다. 신입생은 전원 군 장학생으로 선발돼 4년간 등록금 전액을 지원받는 것은 물론,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하며 기숙사비 역시 면제를 받는다. 또 졸업 후에는 해병대 장교(소위)로 임관해 의무복무기간(7년)을 거치게 된다.

 

병과 


보병과
포병과
항공과
공병과
보급수송과
통신과
병기과
경리과
정훈과
헌병과
 

당초 해병대는 항공병과의 부활을 원했지만 허가가 나지 않아 현재 해병 조종장교는 보병과의 병과를 부여받고 있다. 해병대의 병과부호는 17번 부터 시작하며 1번부터 16번까지는 해군의 병과번호로 국방부 전체로 보면 해군의 병과번호를 사용하고 있다.

 

사령관

해병대 사령관은 중장 계급의 고위 장교가 국군조직법 제10조 3항에 따라 해군참모총장의 명령을 받아 해병대를 지휘통제한다. 현재 사령관은 이영주 중장이며, 서북도서방위사령관 또한 겸임한다.

 

 

 

조직 편성

 

대한민국 해병대 편제 구조

 

사령부 - 경기도 화성시

교육훈련단 - 경상북도 포항시 (1953년 2월 1일 창설)


군수지원단 - 경상북도 포항시


1 해병사단 (해룡, 경상북도 포항시)
    2 해병연대 (황룡)
    3 해병연대 (킹콩)
    7 해병연대 (맷돼지)
    1 해병포병연대 (불사조)
    1 공병대대
    1 상륙돌격장갑차대대
    1 수색대대
    1 전차대대
    1 정보통신대대
    1 지원대대
    1 정비대대
    1 정보통신대대
    1 보급수송대대
    화생방지원대
    항공대
    포항특정경비지역사령부

 

2 해병사단 (청룡, 경기도 김포시) 
    1 해병연대
    5 해병연대
    8 해병연대
    2 해병포병연대
    2 공병대대
    2 상륙돌격장갑차대대
    2 수색대대
    2 전차대대
    2 정보통신대대
    2 지원대대

 

6 해병여단 (흑룡, 인천광역시 옹진군 백령면)
서해 5도 주둔지
    61 대대
    62 대대
    63 대대
    65 대대[18]
    포병 대대
    6 수색중대


연평부대 (공룡, 인천광역시 옹진군 연평면) 
    90 대대
    9 포병 대대
    우도경비대[19]


부산 가덕도 해병경비대


제주방어사령부 
    9 해병연대 (예비대)


해군 진해기지사령부 
    육상경비대대


해군 제주방어사령관은 해병 준장이 지휘하고 있으며, 사령부 예하에 예비군과 일부 실무병으로 구성된 해병 9연대가 있다. 제주에는 해병 9연대의 1대대(91대대) 2대대(92대대) 3대대(93대대)가 있지만 예비군과 소수의 병력으로만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해병대 대대급 혹은 중대급 부대가 신속대응군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분기별로 파견을 나가 주둔한다. 그러나 제주해안경계임무는 해병대에서 맡지 않고 경찰에서 맡고 있다.

 

그리고 해군 진해기지사령부를 방어하기 위해 마찬가지 사령부 예하 해병부대가 주둔 하고 있는데, 이 부대는 육상경비대라고 불리는 대대급 해병부대가 주둔하고 있으며 약칭 육경대라고 부른다. 이 외에 부산 가덕도에도 해병경비대가 주둔하고 있다.

 

해병 부대의 명칭은 1973년에 사령부가 폐지된 후에는 해병대라는 명칭을 공식적으론 못쓰고 "해군 제1해병(상륙)사단"과 "해군 00해병대대" 등으로 호칭되었다가, 1987년 해병대사령부기 재창설된 이후엔 다시 '해병대'라는 명칭을 사용하게 되었고 예하 부대명도 해군을 해병으로 대채한 "해병 제1사단", "해병 제00대대" 등으로 부대 공식표기명이 바뀌었으며 공식문서와 부대깃발에도 표식을 변경하였다.

 

복장 및 상징

해병대는 붉은 명찰과 팔각모로 상징된다. 붉은 명찰은 피와 정열, 용기, 신의, 약동하는 젊음를 의미하며, 글자색인 황색은 땀과 인내를 의미한다.[20] 미 해군과 해병대 작업모에서 유래한 팔각모는 신라시대 신라인의 정신이기도 하였던 화랑도 정신인 《오계》와 세 가지 ‘금기’를 포함하며 ‘팔계’의 뜻을 가지고 있다. 구체적인 의미는 다음과 같다.

 

국가에 충성하라(事君以忠)
뜻 없이 죽이지 말라(殺生有擇)
효도하라(事親以孝)
벗에게 믿음으로 대하라(交友以信)
전투에 후퇴하지 말라(臨戰無退)


또한 세가지 금기는 다음과 같다.

욕심을 버려라(禁慾)
유흥을 삼가라(愼遊興)
허식을 삼가라(愼虛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