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사나이 영원한 해병 (4) - 구축함 실습
출처 : 해사1기, 예비역 해병중장 공정식 제6대 해병대 사령관님 회고록 "바다의 사나이 영원한 해병" 중에서
우리가 부산항에서 조별로 배정된 구축함에 올랐을 때 일제히 소동이 벌어졌다. 우리가 신고 있던 일본군 군화 바닥에 박혀 있던 쇠못(징)이 문제였다. 날카로운 쇳소리의 출처가 우리의 군화라는 것을 알게 된 미군 장병들은 기겁을 했다. 갑판 바닥의 페인트가 벗겨지는 것은 물론 날카로운 금속성 소음 공해도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싯다운! 에브리 코리언 싯다운!”
그러나 어쩌랴.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 처하면 예기치 않은 반응을 일으키는 것이 사람 몸의 생리가 아닌가. 연안을 항해할 때는 배가 파도에 흔들리는 것이 재미있기도 했다. 그러나 큰 바다에 나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좌우로 흔들리는 롤링(Rolling)과 아래위로 흔들리는 피칭(Pitching)이 동시에 일어나면 처음 겪는 사람은 예외 없이 주저앉게 된다. 어지럼증을 견디지 못해 난간을 붙잡고 이겨보려고 애쓰다가 속에 있는 것을 다 내놓게 되면 완전히 탈진하게 된다. 생지옥이 따로 없다. 한 순간만이라도 그 괴로운 어지럼증에서 벗어 나고 싶어진다.
“저기, 저기에 좀 내려주세요.”
그렇게 한 차례 호된 ‘신고 의식’을 치르고 나서부터는 누구나 고추장 같은 비상식품을 숨겨 배를 타게 되었다. 그게 늘 말썽이었다. 사물함 깊숙이 숨겨 두고 필요할 때 조금씩 꺼내 먹으며 속을 달래는 것까지는 좋다. 그런데 날씨가 더워지면서 냄새가 진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함장은 부하들에게 우리 생도들 주머니를 뒤지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주머니 속에 그걸 넣고 다닐 사람은 없었다. 의심스러운 물건이 발견되지 않자 미군 장교들은 우리의 옷을 모두 벗기고 샅샅이 뒤졌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렇다고 포기할 미군이 아니었다. 그들도 고약한 냄새를 참기 어려웠을 것이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침실을 모두 뒤진 끝에 사물함 깊숙이, 또는 백 속에 감춰 뒀던 고추장 항아리를 찾아내고야 말았다. 그것들은 모두 압수돼 바다에 버려졌다. 아깝지만 규칙이 그러니 도리 없는 일이었다.
어깨가 으쓱해지는 자랑스러운 순간도 있었다. 1946년 12월 어느 날이었다. 구축함이 잠시 부산항에 입항한 틈을 타 손원일 제독이 감사의 인사를 하려고 배에 올랐다. 손제독을 반가이 맞은 함장은 뜻밖에 우리를 칭찬했다는 것이다.
“한국 사관생도들은 배우려는 열의가 대단합니다. 우리가 몇 년을 두고 익힌 것을 한국 생도들은 몇 달 사이에 터득해 버렸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김교장의 완곡한 거절에 머쓱했던 프라이스 대령은 며칠 뒤 다시 찾아와 같은 얘기를 꺼냈다. 그러자 김교장은 말없이 자신의 책상 위에 모자를 올려놓았다.
“한국 해군사관학교가 이런 곳인 줄 미처 몰랐습니다. 미안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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