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사령관 글/6대사령관 공정식

바다의 사나이 영원한 해병 (10) - 바다의 왕자(王子) 박옥규

머린코341(mc341) 2014. 10. 2. 21:29

바다의 사나이 영원한 해병 (10) - 바다의 왕자(王子) 박옥규

 

일제 때 진해 고등해원양성소를 나온 박옥규 함장은 나와 인연이 깊은 사람이었다.

 

손원일 제독의 뒤를 이어 제2대 해군참모총장을 역임하신 분은 내가 1차 함정 인수 때부터 연을 맺었고, 2차 때는 PC 704함 직속상사로 모셨던 박옥규 제독이다. 그는 ‘호랑이’라는 별명으로 통했다. 그만큼 부하 장병들에게는 엄하고 무서운 사람이었다. 매사의 기준이 원리 원칙, 바다 사나이의 의리, 그리고 인간의 도리 같은 것이었다.

 

박 함장에게는 귀여운 딸이 있었는데 그가 제2대 해군참모총장으로 있을 때 사윗감을 추천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나는 그때까지 결혼을 하지 않았던 동기생 이종철 소령을 추천했고, 일이 성사돼 더 깊은 연을 맺게 됐다.

 

그는 해군으로서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노련한 항해술을 가진 사람이었다. 아무리 엄하게 굴어도 불평을 말할 수 없는 실력과 권위를 겸비한 선배였다. 해군 창설 초창기 미국에 가서 처음 사들인 PC 백두산함을 몰고 올 때도 그가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

 

일제 때 이미 갑종선장 자격을 취득하고 5~6천톤급 상선을 몰고 태평양을 여러 번 건넌 경험이 있는 사람은 당시 한국에서는 박제독 한 사람이었다. 그것도 경쟁 선사 선박보다 훨씬 빠른 기간에 태평양을 건너다닌 사람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박옥규 선장이라면 가능할 것"

 

정전회담이 한창이던 1953년의 일로 기억된다. 미국에서 군수품을 가득 싣고 들어온 1만 톤급 수송선이 부산항에 입항하다가 큰 곤경에 처했다.

 

부산항의 좁은 수로를 타고 들어온 그 배가 막 지정된 부두에 접안하려는데 돌풍이 불어 뜻대로 배가 움직여 주지 않았다. 선장은 잠시 후진했다가 다시 시도해 봤다. 그러나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어쩌다 전진도 후진도 할 수 없게 됐다. 잘못하면 큰 사고를 일으킬지도 모를 상황에 빠져 체면을 구기게 됐다.

 

“부산에 누가 이 배를 안전하게 접안시킬 사람이 없을까?”

 

초조해진 선장은 선원 가운데 선장 고문 역할을 하던 일본인에게 비상 타개책을 하소연하기에 이르렀다. 그 일본인도 태평양 노선 취항 경험자였다. 그러나 상황이 너무 어려워 나서지를 못하고 “박선장이라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선장이라는 사람은 박옥규 당시 해군참모총장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연락을 받은 박제독은 즉각 부두로 달려갔다. 해군본부가 부산에 있던 시절이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부두에서 보트를 타고 외항에 떠 있는 수송선에 올라간 박제독은 그들의 운전이 너무 서툴다는 것을 첫눈에 알 수 있었다. 바람이 거세게 부는 날 그런 식으로는 도저히 접안시킬 수 없다고 생각한 그는 먼저 배를 충분한 거리로 후진시켜 놓고 전진조작을 시작했다.

 

선수를 좌우로 돌리면서 양쪽 엔진을 번갈아 전진 또는 후진시키고, 정지와 회전동작을 적당히 섞어 배 방향을 조작했다. 수송선 선원들과 부두를 가득 메운 구경꾼들이 탄성을 연발했다. 박수가 터져 나왔다.

 

큰 배를 움직일 때는 엔진의 전진 후진, 회전과 정지, 이런 기능을 적당히 배합해 조절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노련한 항해사가 아니면 그런 기술을 가질 수 없는 법이다. 지금은 대부분의 국가에 ‘파일럿(도선사) 제도’가 정착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어떤 항구에 큰 화물선이나 여객선이 도착하면 반드시 자격증 있는 파일로트가 작은 보트를 타고 나간다. 그리고 외항에 정박한 배에 올라 직접 배를 몰고 내항으로 들어가 부두에 접안시켜 주는 것이다. 이 일로 미국은 한국 해군의 실력을 다시 보게 됐다.

 

그는 유명한 애주가였고, 해군에서 대작(對酌)할 사람이 많지 않은 대주가였다. 나는 그에게 술 대작 상대로 불려 다니다가 개인적으로 친해졌다. 해군사관학교 첫 졸업생이라는 이유로 특별한 배려를 받기도 했지만 더 큰 이유는 술이 아니었나 싶다.


 

출처 : 해사1기, 예비역 해병중장 공정식 제6대 해병대 사령관님 회고록 "바다의 사나이 영원한 해병"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