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사나이 영원한 해병 (12) - 전투함 구매와 6·25
704함 부장으로 함을 인수한 후 통영,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해 함포지원임무를 지원했다.
백두산함 얘기 다음으로 PC 702·703·704정 구매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초창기 해군의 전력증강 사업에 묻어 있는 애환은 우리 해군 발전사의 중요한 한 대목이다.
뉴욕에서 백두산함을 구입해 고국으로 보낸 손원일 총장은 군함 몇 척을 더 살 욕심으로 샌프란시스코로 달려갔다. 아직 수중에는 그만한 돈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장면 주미 대사를 통해 함정 추가 구입 의사를 보고해 이승만 대통령 재가도 받은 후 손 제독은 인수단 본대 요원 75명을 파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때 나는 또다시 인수단 요원으로 선발됐다. 백두산함을 인수해 돌아온 지 며칠 안 됐을 때였다. 새로 들여올 704함 부장 발령이 났다.
너무 오래 배를 타서 육상근무가 그리웠던 내가 불평을 하자, 인사장교는 “참모총장과 함장의 지명이라서 어쩔 수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도리 없는 일이었다.백두산함 인수 경험이 있는 나를 믿고 선발했다는데 편한 보직만 찾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다시 미국에 파견된 본대는 1950년 5월 17일 미국에 도착해 전원 함정 도색작업에 달라붙었다.
이제 주포와 기관포, 그리고 대잠수함 무기인 해치호크만 장착하면 어엿한 전투함이 될 PC에 702·703·704라는 번호 명도 새겨 넣었다. 일렬종대로 롱비치 항을 떠난 세 척의 PC는 다음날 샌프란시스코 미 해군 예비함대 전용 발레이오호(VALLEJO) 부두에 도착해 주포를 장착했다.
주포와 탄약고 6세트를 용접해 장착하는 일은 일주일 이상 걸렸다. 미 해군으로서도 예정에 없던 갑작스러운 일이어서 무기·자재 공급과 기술자 수배에 일주일이나 소요됐던 것이다.
주포를 장착한 한국 해군 PC 세 척은 6월 23일 하와이에 도착해 교민들의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 때마침 미국 참모대학 유학을 끝낸 정일권 준장이 그곳에 머무르고 있을 때여서 손원일 제독과 반갑게 회동했다.
손 제독과 정 장군, 그리고 손 제독을 수행한 나, 이렇게 세 사람은 호놀룰루 시내 아이스크림 집에서 모처럼 여유 있는 시간을 즐겼다. 난생 처음 먹어보는 아이스크림의 달콤하고 차고 부드러운 맛은 평생 잊어지지 않는다.
호놀룰루에서 맞은 6·25
그 달콤한 맛에 취한 군인들에 대한 경고였을까. 아이스크림 집 앞에 뿌려진 미국 신문 호외에는 놀라운 뉴스가 실려 있었다. 북한 인민군이 탱크를 앞세우고 서울을 향해 진격 중이라는 날벼락 같은 소식이었다. 라디오에서도 똑같은 소식이 긴급뉴스로 보도되고 있었다.
대통령 훈령에 따라 정 장군은 서둘러 비행기 편으로 귀국하고 손 제독은 인수단을 계속 지휘하게 됐다. 그는 703함장 박옥규 중령에게 PC 편대 지휘관을 겸하게 하고 바로 함장회의를 소집해 귀국을 서둘렀다. 일체의 외출과 관광이 중지됐음은 물론이다.
6월 25일 호놀룰루 항을 떠난 편대는 진주만에 입항해 PC 세 척에 기관포를 장착했다. 25일 아침에 시작된 작업은 전광석화 같았다. 밤을 새워 27시간 만에 기관포 장착을 끝낸 편대는 26일 오전 10시 진주만을 떠나 진해로 향하면서 라디오 뉴스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출력이 낮은 한국의 HLKA 중앙방송은 물론 들리지 않았다. 일본 방송과 미국방송 뉴스를 종합하면 김일성 군대가 서울을 점령하고 부산을 향해 쾌속 진격 중이라고 했다.
인수대원 모두는 빨리 가서 공산군을 무찌르고 싶은 마음에 조바심이 났다. 그런데 배에 고장이 생겨 속도가 더 늦어졌다. 하필이면 그 배는 내가 탄 704함이었다.
하와이를 떠나 태평양 횡단 항해에 나선 지 하루가 지났을 때였다. 기관실에서 갑자기 요란한 폭음이 울리면서 왼쪽 기관이 정지됐다. 원인 모를 사고로 원양 항해가 불가능해져 진주만으로 돌아가 수리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702·703은 마셜 제도 콰잘린에서 기다리기로 하고 704만 침로를 되돌렸다. 그때 웃지 못 할 해프닝이 벌어졌다.
박옥규 편대장으로부터 고장 수리비 2천 달러를 704에 전달하라는 명령을 받은 경리국장 이민석 소령이 빈 깡통에 돈을 넣어 704를 향해 힘껏 던졌다.
통상적으로 두 배를 계류시키고 직접 전달하는 것이 확실한 방법이다. 그러나 기상이 안 좋아 최대한 가까이 접근시켜 던진 것이다. 깡통은 50야드도 못 가고 바다에 빠져 버렸다.
급한 사람이 샘물을 파는 법이다. 704함 최봉림 기관장이 뛰어내려 거센 파도와 싸우며 깡통을 건져 왔다. 기관고장에 가장 마음이 급한 사람은 역시 기관 책임자였던 것이다.
이번에는 태풍 때문에 골탕을 먹었다. 기관을 수리해 다시 항해를 시작한 지 사흘 만에 704는 태풍권에 들게 됐다. 태풍을 피하려고 남쪽으로 침로를 돌렸지만 미처 폭풍권역을 벗어나지 못했다. 함수갑판의 탄약상자가 넘어지는 경미한 피해가 발생했다.
704함을 인수해 오던 중 함상에서. 필자(가운데)와 인수단원들
704함이 진해에 입항한 것은 702·703함이 들어온 지 열흘 만인 7월 25일이었다. 6·25 동란 발발 1개월이 지난 때였다.
오랜 항해와 작업으로 몸이 지쳤지만 쉴 수가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모든 걸 잊고 한 며칠 먹고 자고 놀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전황이 날로 급박해져 부산이 위태로운 지경이었다.
704함이 제일 먼저 몸값을 한 것은 해병대의 통영상륙작전 지원이었다.
호남지방을 유린하고 서부 경남지역으로 동진해 온 인민군이 낙동강 방어선을 위협하며 밀고 내려오는 주력 부대와 함께 부산을 압박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통영마저 내놓으면 부산은 하루아침에 무너지게 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704함은 진해에 들어왔다.
출처 : 해사1기, 예비역 해병중장 공정식 제6대 해병대 사령관님 회고록 "바다의 사나이 영원한 해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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