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사나이 영원한 해병 (13) - 704함의 비운
나는 704함의 부장으로 진해항에 입항하자마자 김성은 부대의 통영상륙작전을 지원하였다. 곧이어 급박한 전황 때문에 휴식
도 취하지 못한 채 우리 704함은 UN연합함대의 일원으로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하여 혁혁한 전공을 쌓았다.
특히 인천상륙작전 직전인 9월 9일 최호영 함장이 해군 본부 작전 국장으로 발령됨으로서 미처 후임자가 결정되지 않은 상태가 되었다. 따라서 나는 함장 대행으로서 인천상륙작전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이처럼 통영과 인천상륙작전에서 나와 함께 큰 공을 세운 PC 704함은 1950년 12월 말 원산 앞바다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인민군 해군이 부설한 기뢰에 접촉돼 배가 산산조각이 나고 승조원 70여 명이 모두 전사한, 한국 해군에게는 그야말로 최악의 참사였다.
나는 시고 2개월 전 704함을 떠나 목숨을 부지했다. 그러나 미국에서 배를 몰고 올 때부터 동고동락한 형제같은 승조원들을 잃은 슬픔은 너무 큰 충격이었다. 더구나 704함장 이태영 소령은 나와 친했던 사관학교 동기생이다.
작전 중 기뢰지역으로 밀려 침몰
오랜 함상생활을 한 나는 1950년 10월 마침내 오래 염원하던 해군통제부로 육상근무 발령을 받았다. 그로부터 2개월 후 중공군 참전으로 전황이 급전되었다. 성탄절 전야를 기해 유엔군과 국군의 흥남철수 작전이 끝난 뒤 적은 맹렬한 반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완전한 제해권을 행사하고 있던 미 해군과 한국 해군은 원산·흥남을 감싸고 있는 천혜의 항만인 영흥만을 적에 내줄 수가 없었을 뿐더러 영흥만의 여러 섬을 장악하고 있던 우리 해병대 부대도 철수하지 않았다.
일찍부터 영흥만의 전략적 중요성을 인식한 적은 그 해역에 수많은 기뢰를 부설해 원산상륙작전과 흥남철수작전을 방해했다. 미 해군과 한국 해군은 온갖 지혜를 동원해 기뢰 제거작전을 벌였으나 3천개나 된다는 기뢰를 다 제거할 수는 없었다.
유엔군 함정들은 공격을 피해 외해로 이동하는데 적탄을 뚫고 해안을 향해 돌진하면서 적진에 주포를 쏘아대는 함정이 있었다. 기관포 소리와 함께 소총소리까지 들렸다. 바로 해안에서 제일 가까운 황도반도 근해에서 경비임무를 수행 중이던 704함이었다.
다들 “저 배가 미쳤나”했다. 그래도 704함은 돌아서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적진의 포성이 잦아들었다. 이윽고 적진이 조용해지자 유엔 해군함정들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때부터 704함은 ‘고추함’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작은 고추가 맵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용명을 떨친 704함도 기뢰에는 어쩔 수가 없었다.
“그날은 무척 추웠습니다. 폭풍에 폭설이 겹쳐 항해가 불가능한 날이었는데도 704함은 작전에 나갔다가 풍파에 떠밀려 기뢰지역으로 흘러간 겁니다. 한밤중 해안초소에서 경계근무를 서고 있는데, 들어보지 못하던 엄청난 폭음이 들려 이상한 예감이 들었어요. 뒤에 알고 보니 704함이 기뢰에 폭파된 것이었습니다.”
존 웨인을 닮은 명사수 변인철(해병 1기) 상사. 그는 1950년 6월 26일 북한 공군 야크기(YAK) 5대가 서울에 내습했을 때 해군본부 옥상(일제 때 三井백화점)에서 캘리버50 중기관총으로 대공사격을 한 전설적인 인물이다.
당시 영흥만 여도에 주둔했던 해병대 변인철 수병(예비역 해병상사)에 따르면 704함은 무모할 정도로 용감한 것이 화근이었다. 변수병은 날이 새기를 기다려 해안을 순찰하다가 704함 승조원들의 처참한 주검들을 발견했다.
해안에서 수습된 시체는 30구가 넘었다. 변수병의 해군 입대동기생, 같은 고향 출신인 주계사(취사병), 그리고 함장 이태영 소령 시체도 확인됐다.
돌섬 앞바다에서는 너무나 처절한 최후가 발견됐다. 승조원 시체 3구가 로프로 연결된 채 표류하고 있었다.
아마도 배가 폭파된 뒤에 표류하면서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자”고 로프로 서로의 몸을 묶은 모양이었다. 악전고투 끝에 뭍에 올랐지만 영하 20도 아래의 혹한에 동사한 사람도 여럿이었다. 그렇게 발견된 시체가 50여 구였다.
출처 : 해사1기, 예비역 해병중장 공정식 제6대 해병대 사령관님 회고록 "바다의 사나이 영원한 해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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