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전시작전권 무기한 연기,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조선일보, 2014.10.24)
한·미 국방장관은 23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에서 연례 안보협의회(SCM)를 갖고 한반도 전시(戰時)작전통제권을 미군에서 한국군으로 넘길 시기를 2015년 12월에서 사실상 무기한 연기하기로 합의했다. 양국은 또 서울 용산의 미군 기지가 2016년 경기도 평택으로 옮겨가더라도 한미연합사령부는 용산 기지 안에 그대로 남기기로 했고, 경기도 동두천의 주한미군 210 화력 여단(旅團)도 2020년 무렵까지 잔류시키기로 했다.
한·미가 전작권(戰作權) 문제를 공식 논의하기 시작한 것은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부터다. 해외 주둔 미군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세계 차원의 미군 재편 작업을 진행 중이던 미국도 적극적이었다. 이렇게 해서 나온 게 2007년 전작권 1차 합의다. 한국군이 2012년 4월 전작권을 넘겨받고 한미 연합사령부를 해체하기로 했다.
당시 노 정부는 전작권을 전환해야 자주국방인 것처럼 몰아가면서 합의를 서둘렀다. 결국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결과가 되고 말았다. 전작권을 넘겨받는 데 필요한 군 현대화 필요 자금으로만 2020년까지 67조원이 들 것으로 계산했지만 이 계획은 거의 실천되지 않았다. 수십년간 대북 억지와 국가 안보의 골간을 이뤄온 한미연합사를 해체하기로 해놓고 이를 대신할 안보체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준비는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다.
결국 한·미는 이명박 정부 때인 2010년에 전작권 이양 시기를 2015년 12월로 1차 연기했다. 이번에 또 그 시기를 2020년대 중반 이후로 10년 이상 늦추기로 했다. 이번 합의에선 전작권 이양 시기를 구체적으로 못박지 않았다. 사실상 무기한 연기다.
중요한 것은 전작권이 어디에 있느냐가 아니라 전쟁 억지와 유사시 전승(戰勝)이다. 북핵이 고도화되고 있고 북의 미사일 능력도 강화되고 있는 만큼 전쟁 억지에 새로운 변수가 생겼다고 볼 수 있다. 그런 만큼 전작권 전환 무기 연기로 안보상의 불확실성을 줄이는 효과는 의심할 수 없다. 이번 전작권 합의를 보면서 안도하는 국민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2007년 1차 합의 때 이미 북은 1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시험을 마친 상태였다. 노무현 정부 때 1차 전작권 합의를 이끌었던 주역들이 지금 박 정부에서도 안보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중 일부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 전작권을 예정대로 2015년에 넘겨받는다는 내용을 넣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이처럼 군 주요 간부들의 말이 정권에 따라 바뀌면 전작권이 군사적 관점이 아니라 정치 문제로 흘러갈 위험이 있다.
향후 전작권 전환은 북 핵미사일을 막기 위한 KAMD(한국형 미사일 방어)와 '킬(kill)체인'의 완성 여부에 따르게 됐다. 모두 엄청난 돈이 들고 중국과의 마찰 우려도 있는 사안이다. 그러나 우리 안보에 도움이 된다면 누구의 눈치도 보지 말고 단행해야 한다. 다만 실제 북의 핵미사일을 막을 수 있는지에 대한 엄밀하고 냉정한 평가가 반드시 전제돼야 한다.
한미연합사의 서울 잔류는 필요하다. 그러나 그 장소가 반드시 용산공원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이미 정부가 용산공원과 관련해 국민과 서울 시민에게 한 약속이 너무 많다. 서울 시민과 지역 주민의 의견을 비롯해 한·미 연합 전력 운용의 효율성, 수도 서울의 장기적 이미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애초 검토됐던 국방부 내 신청사 일부를 사용하는 방안 등을 포함해 여러 대안을 폭넓게 찾을 필요가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 국방부는 한국군의 전작권 전환 준비가 예정대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해 왔다. 그러다 갑자기 '준비 부족'이라고 한다. 결국 우리 군이 미국에 매달렸다는 얘기가 된다. 지금 세계에서 순전히 혼자의 힘으로 국방을 하는 나라는 거의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그러나 동맹을 활용해 안보 능력을 배가하는 것과 아예 동맹에 생존을 의탁하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다. 전작권 무기 연기로 그러지 않아도 흐릿해졌다는 우리 군의 각오와 결의가 더 약해지는 것만은 용납할 수 없다. 정부는 물론이고 국민 모두가 전작권 전환 무기 연기가 문제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란 인식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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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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