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일기/해병264기 박동규

춥고 배 고프고 졸립던 시절을 회상하며(1)

머린코341(mc341) 2015. 1. 6. 04:30

춥고 배 고프고 졸립던 시절을 회상하며(1)

* 연재를 시작하기에 앞서...
아래에 올리는 글은 수년 전, 중앙회 싸이트에 264기 박동규 선배님께서 직접 올리신 글입니다만
그 싸이트가 재편되는 바람에 현재는 '다시읽기'가 불가능해진 글입니다,
다행히 그 당시에 "해병대 추억록"이란 단행본이 발간되었는데,
엊그제 우연히 책장에 꽂힌 그 책을 발견하게 되어, 이곳에 옮겨 싣습니다.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선배님이신 것은 물론, 글솜씨도 아주 뛰어나신 분으로,
사실 제가 게시판등에 글나부랭이라고 가끔 올리면서 언제나 본 받고 싶은
저의 "큰 바위의 얼굴"이십니다만 어느 세월에,
선배님의 발뒤꿈치만이라도 따라갈 수 있을런지 두렵습니다.

모쪼록 우리 이 싸이트만이라도 이처럼 불행한 역사의 단절이 없이,
아주 아주 오랫동안 그 명맥을 유지했음하는 바람입니다. ---- 註)311기 몰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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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성!!
안녕하십니까? 해병 264기, 군번 9389***, 박동규입니다.
1973년 11월 6일은 저희 264기 444명이 진해훈련소에서 손을 들고 선서를 한 날입니다.
당초 지원은 초여름에 했는데, 해군과 통합되는 바람에 11월에 입대했습니다.

제가 입대했던 그 계절이 되니, 그동안 머리 속에서만 맴돌던 옛날 일들을 써 보고 싶습니다.
참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이제라도 제가 1973년 11월부터 1976년 6월 15일까지
32개월 보름의 현역생활 중에 겪었던 개인적인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오래 전의 일들을 단지 기억에만 의지하여 쓰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과 다소 간의 차이도 있을 수 있고,
아무래도 제 주관이 반영될 것이기 때문에 비판적인 부분이 있더라도 널리 양해해 주시길 바라며
하실 말씀이 있으시면 꼬랑지를 달아 주세요.
글 재주는 없지만 가능한한 재미있게 써보도록 노력하겠으며
참고로 요즘에는 경례 구호가 "필승!"인 모양인데, 제가 군대생활을 할 때는 "충성!"이었습니다.

1. 훈련소에서


(이빨을 부드득 갈던 교관)

가입대를 했던 날로 기억됩니다. 진해훈련소 소대장, 교관들이 길 양쪽으로 갈라서서
입대하는 훈련병들에게 박수를 치며 환영하더군요.
그때, 시커멓고 얼굴이 둥그런 하사관 한명이 "이 새끼들 잘 들어왔어!!"하고 크게 외치면서
이빨을 부드득 갈더군요,
그런 쌍스러운 말을 그렇게 크게, 여러 사람 앞에서 함부로 말할 수 있다는 것에 우선 놀랐습니다.
그런데 아~, ㅆ팔!! 그 인간(미안합니다. 사실은 별로 미안하지도 않지만...)이 하필이면
우리 소대 교관으로 오다니...
이렇게 가끔 이빨을 갈아대더니 우리가 훈련을 마칠 때쯤엔 아예 이빨이 통째로
뿌아졌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가입대 첫날 밤의 취침나팔 소리)


황량한 진해 바닷가 바람소리와 함께 들려온 첫날 밤의 구슬픈 취침나팔 소리에
눈물 한방울을 찔끔 흘렸습니다.

(한겨울 밤의 빤쓰바람 선착순!!)


손을 들고 선서를 한지 일주일쯤 지난 어느 날, 순검을 마치고 막 잠이 들려는데
갑자기 들려온 구령은 "빤쓰바람, 연병장에 선착순!!"이었습니다.
빤쓰바람에 통일화(농구화 비슷한 발목까지 덮는 국방색의 신발이었는데 발목부분은 두꺼운 천으로
만들어져 있었습니다만 발꿈치와 발목을 이어주는 부분은 딱딱하기 그지없는 고무로 만들어져
발뒤꿈치에 상쳐가 많이 났었습니다)를 신은 놈, 맨발인 놈, 바지를 입고 나온 놈 등...
그야말로 가관이었습니다.

차가운 진해 바닷바람이 몰아치는 초겨울 한밤 중의 첫 빤쓰바람,
그러나 그때는 그래도 괜찮았지만, 12월의 빤쓰바람은 거의 죽음입니다.

허나 빤쓰바람도 하도 여러번 당하다보니 나중에는 나름대로 요령이 생겨
순검 시 지적사항이 많았다 싶으면 통일화 끈과 작업복 단추를 미리 풀어놓은 상태에서 기다립니다.
그러면 그날 밤은 어김없이 "빤쓰바람~"구령이 들립니다.

오랫만에 빤쓰바람 선착순 구령 한번 해 볼까요?
"휘~익, 휘~익(호루라기 부는 소리). 가~악 소대 들어~!! 지금 병사 떠나면, 연병장에 빤쓰바람
총원 집합한다, 빤스바람 선착순! 총 병사 떠나!!" "초~옹 병사 떠나!!"
동작이 느려 선착순 후미에 줄을 서게 된 동기들은 그 추운 밤에 빳다 맞고, 꼬라박고,
쪼그려 뛰기하고, 연병장에서도 또 선착순 돌려지고...

거의 기진맥진할 즈음이 되면 좁은 간격으로 집합을 시켜 쪼그려 앉게 하는데
이날 밤의 진짜 하이라이트는 여기서부터 입니다.
교관들이 몇개의 바께스에 물을 가득 담아 미리 준비하고 있다가, 그 얼음보다도 찬물을 바가지로 퍼서
빤쓰바람으로 잔뜩 웅크려 앉은 훈변병들을 향해 쫘~악 뿌리는데.
오른쪽에 왼쪽에, 앞에 뒤에, 빈틈없이 골고루 몇차례씩 뿌립니다.

이때, 물이 뿌려지는 대열에서 들리는 비명소리는 그야말로 귀곡성(鬼哭聲)입니다.
이쪽에서 아흐흐흐흐~, 저쪽에서 아흐흐흐흐~
거기에다 눈보라까지 몰아치는 날이면 참으로 뼛속까지 추위가 엄습합니다.

군대생활, 특히 훈련소에서의 생활은 춥고, 배 고프고, 졸립기만한데
한겨울 밤에 빤쓰바람으로 찬물세례를 맞으며 진해 앞비다에서 불어오는 맵디매운 찬바람을
두어 시간씩이나 온몸으로 맞는 맛, 상상이 되십니까?
어느 날은 바닷속으로 밀려 들어가기도 했는데, 차라리 그 한겨울 바닷물 속이 더 따뜻하더군요.

빤쓰바람의 마지막 순서는 악을 쓰고 구호를 외치거나, 악에 받친 목소리로 군가를 부르며 연병장을
몇바퀴씩 돌게 하는 것인데, 그래야만 감기나 동상이 걸리지 않는다더군요. -1부 끝-

 

출처 : 해병대 인터넷전우회, 박동규선배님 http://www.rokmc.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