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179기 황석영의 해병이야기 -
[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 4. 땡볕 <193>
장편 `무기의 그늘`서 전속 가는 장면 그렸듯 …
나는 그때에 다른 병사들과 함께 총기 손질을 하고 있었다.
헬리콥터로 투입되는 병력과 트럭을 타고 육상으로
시 외곽에 도착하여 진격할 병력으로 나뉠 예정이었다.
105밀리 포가 계속해서 강 건너편을 강타하고 있었다.
그러나 소리만 요란했고,
비어 있는 모래 벌판과 철조망과 선인장 숲 위에는
새하얀 햇빛만이 보일 뿐이었다.
물 위에 뜬 조각배처럼 정글의 일부분이 드문드문 남아 있는 사이로
양쪽에 철조망과 낮은 모래주머니의 벽으로 막힌
좁다란 군용도로가 여러 중대와 대대를 연결시키고 있었다.
도로의 교통 통제소마다 설치된 높다란 망루에서
밀림 쪽을 향해 가끔 위협사격을 퍼붓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프 차 한 대가 모래 먼지를 일으키며
우리 중대로 오는 모래주머니 방벽 사이의 좁은 통로로 달려들어 왔다.
나는 장편소설 '무기의 그늘'에서 내가 전선을 떠나
전장의 보다 깊숙한 국면을 보여 줄 시장 속으로
전속을 가는 첫 장면을 이렇게 썼다.
차가 중대 방어진지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철조망 앞에서 급정거를 했고,
초병이 바리케이드를 옆으로 밀어젖혔다.
먼지가 가라앉자 차에 타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정글복 차림이 아니었다.
베트남 민간인들이 입는 검은 파자마에
차양이 넓은 버마형 특수부대 정글모를 쓰고 있었다.
운전수도 같은 차림이었는데 지프 뒷자리에
사수 없는 기관총좌가 있었고 탄창을 빼어버린 기관총이
비스듬히 매달려 흔들거렸다.
-뭡니까?
벙커에서 나온 중대장이 그들 계급장도 없고
군복도 입지 않은 민간인 차림에게 물었다.
그들은 짙은 선글라스를 벗지 않았다.
경례도 붙이지 않고 민간인 차림이 서류 한 장을 건네주면서 말했다.
-전입자를 인수하러 왔소.
중대장이 서류를 재빨리 훑어보았다.
이름을 불린 병사가 호 속에서 엉거주춤 일어났다.
그는 철모 자국으로 울퉁불퉁해진 머리를 두리번거리며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중대장에게 걸어 나왔다.
그는 철모만 벗었을 뿐 빈틈없는 단독무장을 하고 있었다.
병사는 정글복의 바짓가랑이를 잘라
군화 위로 무릎을 드러내고 있었고
꿰매어 넣지 않은 천의 올들이 풀어져서 술처럼 너덜거렸다.
중대장이 서류를 흔들어대면서 말했다.
-곤란한데 이거….
고참들만 빼가면 전투는 누가 하지.
첨병을 설만한 애들두 이젠 없는 형편이오.
중대장은 지프 위의 민간인 차림이
인사 참모라도 된다는 듯 호소했다.
민간인 차림은 버마식 정글모를 벗어서
가슴에 활활 부채질하면서 말했다.
-사선을 넘으면 누구나 고참이 됩니다.
나는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방금 지옥을 빠져나오고 있는 중이었다.
전선에서는 그 누구도 내일 아침의 운명을 짐작할 수 없게 마련이다.
그날 오후의 호이안 탈환 시가전에서
여단이 이동한 이후 가장 많은 사상자가 나왔다.
병력이 투입되기 한 시간 전에
나는 아슬아슬하게 작전 중대를 벗어났다.
그림=민정기
출처 : 중앙일보,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ctg=12&Total_ID=1626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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