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전 참전수기/해병179기 황석영

"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35회>

머린코341(mc341) 2015. 8. 31. 22:25

해병179기 황석영의 해병이야기 -

 

[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 4. 땡볕 <195>

신무기 나왔다 하면 몇 개는 적에게 팔려

 

다낭은 북베트남군과 해방전선에 의해서 포위된 섬이었고

그 속에서 일어나는 일상적인 생활은

특수한 경제 체제에 의해서 유지되고 있었다.

 

가장 위력 있는 재화는 달러이지만

미군 사령부가 발행한 군표가 시장을 통제하고 있었다.

 

점령군과 그 주변의 살림살이는

미국식 소비를 흉내 내기 마련이고

PX는 사치품과 소비재의 원천이었다.

 

또한 보급창은 생필품인 야채와 고기에서 차와 커피

또는 초콜릿에 이르기까지 다낭시의 생존을 쥐고 있었다.

A레이션은 조리를 하지 않은 야채, 과일과 고기 등의 식품이었고

B레이션은 일차적으로 조리된 식품이나 기름, 양념

또는 통조림화한 생식품 등속이었다.

 

그리고 C레이션이 모두 통조림화하고 조리된 전투식량이었다.

시장 안에서는 적과 아군이 따로 없이 서로 거래하고

함께 이 질서에 공모할 수밖에 없었다.

가장 치밀하고 어둠에 묻혀 있는 것이 무기의 거래였다.

 

그러나 이 모든 다양한 물품은

시장의 치밀한 먹이사슬과 연결되어 있었다.

보급부서나 PX에서 근무하는 미군 개개인이

부정을 저지르는 경우도 많지만

경제공작을 하는 재무부서도 따로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이들은 주로 A, B레이션이나 맥주, 담배 등속의

기호품으로 물가를 조절했다.

작전이 계속해서 한 두어 달 진행되면

시 외곽 농촌에서 들어오는 야채와 식품의 유통이 끊기고

시장 가격이 몇 배씩 오르게 된다.

 

다낭 시내에 사는 이들은 군인가족이나 군속

또는 관리와 상인들 그리고 일반 서민들이었다.

 

이들도 암거래에 가담해서 이익을 보고

미군이 누리는 소비의 일부분을 맛보며 살아간다.

미군은 암거래의 이윤으로 현지 노무자들의 임금을 해결하고

가끔씩 군표를 바꾸어 지하로 스며든 달러를 회수하거나 말소시킨다.

 

제삼국의 군인과 기술자들도 암거래에 끼어든다.

남베트남 군인과 관리들은 전투식량에서

무기까지 거래하는데 상대는 물론

상인들에게서 세금을 걷는 해방전선 측이다.

 

우계가 오면 연합군과 해방전선이 함께

깡통 C레이션을 까먹으며 전투를 한다.

 

 

이를테면 남베트남군에 새로 유탄 발사기 같은 신형 무기가 지급되면

그 중 몇 자루는 시장에 나와 팔려 나간다.

미국의 베트남 평화정착 사업으로 '신생활촌' 건설이 진행되면서

수많은 원조물자가 시장으로 풀려나왔다.

 

집을 지을 시멘트나 슬레이트, 각종 곡물 가루와 사료, 식량,

그리고 마을의 민병대를 무장시킬 무기와 탄약 등속이 쏟아져 나왔다.

나는 이 모든 정보를 선임자에게서 인계받거나 스스로 시장 속에서 터득했다.

- 양놈들두 그런 짓 합니까?

 
영규의 서투른 질문에 강 수병이 코웃음을 날렸다.

- 여태 뭘 들은 거냐? 경제공작두 한다니까.
그 애들은 정식으로 사령부의 작전지시를 받아 가지구 나오는 거야.
앞으로 자주 부딪치게 될 거다. 절대루 참견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저쪽의 불랙마켓 상대가 공작 팀인가,
아니면 그냥 해먹는 놈들인가를 재빨리 알아차려야 한다.

- 그럼…한국군은요?

강 수병이 시들하게 웃어넘겼다.

- 원칙적으로는 아무도 못한다. 싸우러 왔지 돈 벌러 왔냐?
 
[황석영 글/민정기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