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전 참전수기/해병179기 황석영

"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37회>

머린코341(mc341) 2015. 8. 31. 22:33

해병179기 황석영의 해병이야기 -

 

[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 4. 땡볕 <197>

PX는 초강력 무기달콤함 맛보면 못 헤어나

 

-왜 당신들은 베트남 농촌의 아이들을 죽이는가?

-나는 그런 일 처음 알았는데?

-며칠 전 우리 영자신문에 나왔다. 모두들 분개하고 있다.

-당신은 베트콩을 지지하나?

-누구든지 양민을 죽이는 자들은 싫어한다.

교사와 나의 대화는 그렇게 맴돌게 마련이었다.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그런 대화를 나누고 나서 본대로 돌아와

침대에 누우면 어쩐지 잠이 오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베트남에 온 것을 잠깐씩 후회하고는 했다.

그와 나는 가끔 오후에 찻집에서 우연히 부딪치곤 했는데

서로 속을 털어놓게 되자 미군에 대해서 비판하기 시작했고

그 편이 훨씬 견디기가 쉽다고 서로 생각했는지 모른다.

 

신생활촌 계획은 농민들에게서 땅을 빼앗고

살림의 터전에서 몰아내 유력자를

새로운 지주로 만드는 일이라고 그는 말했다.

나는 시장 속에서 차츰 이 전쟁의 진면목을 알아가게 되었다.



PX란 무엇인가.

큰 함석 창고 안에 벌어진 디즈니랜드.

그리하여 지친 병사는 피묻은 군표 몇 장으로

대량 산업사회가 지어낸 소유의 꿈을 살 수가 있을 것이다.

오리도 토끼도 요정도 기계가 되어 뛰고 웃는다.

포장지와 상자에서는 느끼한 기름냄새가 나고 그것은 꽃보다 아름답다.

PX란 무엇인가.

CBV 폭탄 한 개로 길이 1마일,

너비 4분의 1마일에 걸쳐서 100만 개 이상의 쇠 파편을 뿌릴 수 있고,

300에이커를 단 4분 동안에 동물과 식물이

살지 못할 고엽(枯葉)지대로 만들 수 있는

기술을 가진 나라의 국민이 사용하는 일상용품을 파는 곳이다.

PX란 무엇인가.

아메리카는 세계에서 가장 크고 가장 위대한 나라입니다, 라는

표어가 적힌 방패를 들고 로마식 단검을 들고,

성조기의 옷을 입고 낯선 고장마다

나타나는 엉클 샘의 지붕 밑 방이다.

원주민을 우스꽝스러운 어릿광대로 바꾸고

환장하게 만들고 취하게 하며 모조리 내놓게 하고,

갈보와 목사와 무기 밀매업자가

사이좋게 드나들던 기병대 요새의 잡화점이다.

그리고 PX는 바나나와 한 줌의 쌀만 있으면 오순도순 살아가는

아시아의 더러운 슬로프 헤드들에게 문명을 가르친다.

우윳빛 비누로 세수하는 법과,

가슴을 시원하게 하는 코카콜라의 맛이며,

향수와 무지개색 과자와 드롭스와,

레이스 달린 잠옷과 고급시계와 보석반지를

포탄으로 곤죽이 되어버린 바라크 위에 쏟아낸다.

 

아시아인의 냄새 나는 식탁 위에 치즈가 올라가고

소녀들의 가랑이 속에서 빠져나간 콘돔이

아이들의 여린 손가락 위에서 춤춘다.

한번이라도 그 쾌락과 냄새와 감촉에 도취된 자는

 결코 죽어서라도 잊을 수가 없다.

상품은 곧바로 생산자의 충복을 재생산해낸다.

아메리카의 재화에 손댄 자는

유 에스 밀리터리의 낙인을 뇌리에 찍는다.

 

캔디와 초콜릿을 주워 먹고 팝송을 흥얼거리며

자라나는 아이들은 저들의 온정과 낙천주의를 신뢰한다.

시장의 왕성한 구매력과 흥청거리는 도시 경기와

뒷골목에서의 열광과 도취는 전쟁의 열도에 비례한다.

PX는 나무로 만든 말(馬)이다. 또한 아메리카의 가장 강력한 신형무기다.

그림=민정기

 

출처 : 중앙일보,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ctg=12&Total_ID=16301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