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전 참전수기/해병179기 황석영

"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36회>

머린코341(mc341) 2015. 8. 31. 22:31

해병179기 황석영의 해병이야기 -

 

[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 4. 땡볕 <196>

`미군 암거래는 현장 덮쳐 나눠먹어도 무방`

   

  

- 정말 싸우러 온 겁니까?

- 말 시킬 거야? 가난한 나라 먹구 살아야지.

원칙의 반대로는 누구나 할 수 있다.

한 구찌 먹구 봐줘두 되구, 같이 뛸 수도 있구….

임마, 그런 일은 니가 알아서 하는 거야.

민간인으로는 우리 기술자들이 있지만,

그치들 고작해야 술값이나 외입값 정도니까 봐줘라.

큰놈들은 따루 있어.

현지 제대자와 불법체류한 실업자들이 암거래 회사를 차리구 있다.

다낭에는 회사가 셋이나 있지.

그중에 홍콩패가 제일 세다.

사장은 중령 출신인데 그 밑에

돼지라는 녀석이 부산서 대마도 뛰던 놈이다.

보통 단수가 아니니까 넘어가지 않도록 조심해라.

또 도꼬다이가 한 네댓 명 된다. 모두 암거래 귀신들이지.

그 사람들 월남 민가에 세들고 월남 여자들과 살림한다.

용궁이나 뱀부에 나가 있으면 자연히 파악하게 될 거다.

우리 원칙은 이렇다. 한국군의 암거래는 대강 봐준다.

그 대신 큰 구찌는 못하게 하고 나서 우리가 맡는다.

한국 민간인들 것은 파악만 해둔다.

큰 걸 봤으면 거래현장까지 방임해 두었다가 덮친다.

그 애들 것은 절대루 먹어선 안 된다.

나중에 약점 잡히면 허수아비가 되니까 무조건 본대로 연행한다.

미군들의 것은 경제공작 팀이 개입해 있을 적에는

정확한 물품 내역과 거래인 및 거래 일시를 기록해서

본대에 보고해 두면 끝난다.

그건 크라펜스키와 우리 파견대장이 서로 협의할 문제거든.

그 대신에 공작팀이 아닌 미군들의 거래는

현장을 덮쳐서 나누어 먹어도 무방하다.

제삼국인들의 것은 반반씩 먹는다.

- 제삼국인들이라뇨?

- 필리핀이나 말레이시아나 인도의 민간인들 말이다.

간간이 일본인들도 있다.

- 월남인들은요?

- 거기가 가장 중요하고 미묘한 근무다.

나는 그쪽을 파악하는 데만 두 달이나 걸렸다.

대략 세 종류로 보면 된다.

즉 사치품과 생필품과 군수물자로 나뉜다.

우리가 끼어들어도 되는 건 사치품과 생필품에 한한다.

PX 물건이 대개 사치품이고, 보급창 물건이 생필품이다.

군수물자는 민족해방전선과 월남군부의 거래품목이다.

미군과 우리는 바로 이 월남인들 상대의

근무사항을 서로 극비에 부치고 있다.

 

우리는 전우이지만 이 부분에 있어서는 극히 폐쇄적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하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 내막을 소상하게 알고 있는 한,

우리는 다낭에서 어떤 거래에 뛰어들어도 무사하기 때문이다.

거기가 바로 미군과 월남군의 급소이기 때문이다. 알아듣겠나?

나는 시장 모퉁이에서 어느 날은 군속처럼

계급장 없는 군복에 맨머리로 돌아다녔다.

내가 마르고 베트남 사람들보다는 키가 큰 편이라

행상 아이들은 나를 '필룩탄'이라고 부르며 쫓아다녔는데

필리핀 사람이라는 소리다.

또는 티 셔츠에 면 바지 차림이나 베트남 사람처럼

검은 파자마 바지에 흰 셔츠를 걸치고

시장 부근의 찻집이나 주점에 나가 앉아 있곤 했다.

어느 찻집에서 다낭 시내의 중학교 교사와 알게 되었다.

그는 내가 한국인이라는 걸 알고는

아마도 민간인 기술자로나 알았는지

당시의 영자신문에 나왔던 기사를 들어 한국군을 비판했다.

그림=민정기

 

출처 : 중앙일보,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ctg=12&Total_ID=1629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