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전 참전수기/해병178기 최종상

청룡의 추억여행(1)--진해에서 군하리로...포항까지

머린코341(mc341) 2015. 9. 10. 14:10

청룡의 추억여행(1)--진해에서 군하리로...포항까지


인간은 나쁜 기억은 되도록 잊어 버리고, 좋은 것들로 추억을 만들려는 속성이 있다한다.


내 삶의 소중했든 한 부분, 젊음을 불태웠든 軍시절의...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1966년6월7일부터
1968년 12월31일까지의 해병대의 추억들.....


까마득히 깊은 기억의 沈淵에 가라 앉아있든 아픈 기억들을, 빨간 명찰을 달고 해병대 복무를 시작했든 때의 힘들었든 시기를, 나보다 나를 더 잘 안다는 동기(서정훈군)와 함께, 청룡부대의 5대대 창설요원으로 이국 땅 월남전선에 참전했든 전우들을 만나며 서로의 조각난기억을 더듬어 사실적 접근으로, 이제 추억으로 남기려 기억을 되살리는....작업을 하려한다.

6.25전쟁후의 혼란기와 어려웠든 時代를  살다가  24개월의 짧은 복무기간인 해병대 입대를  결심하고
지원,1966년 6월7일 진해훈련소에 입소하여 힘들었든 해병 만들기와, 무더운 여름 날씨에 연 이은
상남에서의 보병훈련은 극한의 인내를 요구하는 지옥훈련의 연속이었다.


배고픔을 못이긴 훈련병 중에는 자존심도 팽개친 모습으로 훈련소 식당의 하수구에서 건진 음식찌꺼기로 허기를 달래는 모습도 볼 수 있을 정도로 힘들었든 나날들...


기어 오르듯 힘들게 오른 천자봉구보도....상남에서의 보병훈련을 위한 서막에 불과했으니...... 체력의 바닥까지 요구하는 훈련중 낙오하여 되돌아 간 훈병도 여럿 있었다.

바닷가에 있든 화장실의 드럼통 절반을 잘라 만든 변기통.....조교들은 만조가 지난 때의 시간에 턱밑까지 바닷속에 밀어넣어 단체 기합을 주고, 물결따라 떠다니는 X덩어리를 피하려 뛰어 오르든....


함께 했든 동기들과 이제는 웃으며 회상 하지만 모진 훈련을 거쳐야 해병으로 거듭날 수 있었나 보다.


포기하고 싶을 정도의 고된 하루하루였기에 다른 상념에 잠길 여력도 없이 파김치가 되어 내무반에 돌아와도 그 유명한 " 해병대 순검" 으로 편안한 잠도 허락하지 않든 생활.....


무엇을 위해 그래야 했는지는 청룡부대원으로 월남전에 참전하고서야 깨달았지만.....

함께 고생한 동기들과 헤어져 김포의 대대작전병으로 시작한 이등병시절, 하루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시간들....기수빳다...엄동설한의 눈밭에서의 팬티바람으로 기합받든 일...


이를 악물고 견딜 수 있었으나, 대구(고향)의 후배가 (나보다 한해  후배로 고향에선 말도 못하든...)
작전하사로 새로 배치되며 시작된 밤마다의 괴롭힘으로 참을성을 바닥내고 ....(그 일이 아픔으로 남아
그 후 하사관들에 대한 인식이 오늘날까지 내겐 부정적으로 남아 있다.).


차라리 영장을 받아 육군에 다시 가면되지 하고 자포자기로 휴가후 귀대일을 넘겼을때 대구집으로 찾아와 이런일도 극복하지 못하고 인내하지 못하면  앞으로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 가겠냐며 ....형같이 나를 다둑이고 위로해 준 작전보좌관은(당시 해사출신의 중위) 오늘의 내가 존재하게 해준 귀한 은인이다.

보좌관과의 귀대후 호시탐탐 노리는 작전하사의 눈에서 대대 의무실로 입원조치시켜 하사관들의 집단기합을 피하는 것도 오래갈 수 없어 보좌관에게 상의하여 월남으로 보내주면 生死를 운명에 맡기겠다고 결심, 대대의무대에 있든 동기생, 서정훈군과(독자인데 내가 꼬득였다 한다) 함께 5대대 창설요원으로 둘이서 포항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서정훈군은  27중대로 파월된 후 41년만인 2007년 여름에야 오랜 수소문끝에 만나게 되어 나로 인하여 파월했기에 살아 돌아와주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열차 편으로 대구를 지나가며 살아 돌아오면 열심히...최선을 다하여 주어진 나의 인생을 살겠노라..다짐했고, 아무런 소식을 전하지 않고 전쟁터로 가게 된 부모형제에 대한 이별의 슬픔만 밀려 왔었다.

포항에서의 5개월여 월남전 교육대에서의 기나긴 훈련....나는 훈련소 3개월 등 8개월여를....국내에서의
근무기간의 대부분을 힘든 훈련만 했었나보다.


포항에선 선,후배의 규율이 전쟁터에 간다는 강박감과 동류의식으로 심하지 않았고 전쟁터에 간다는 두려움으로 심심잖게 일어난 이탈사고 때문에  철조망으로 담을 쳐놓은 막사에서 삼엄한 경비속에 생활했든것 같다.


아무런 상의없이 몰래 파월을 지원한 터라 출발일이 임박하여 민간인편에 부친 편지를 본 어머니가 유격장까지 면회 온 일.....음식을 함께 나눈 분대원들을 어루 만지며 눈물 훔치며 돌아서시든 모습....


그렇게 내 조국의 전쟁을 겪었든, 나는 이국 땅 越南戰線으로 떠나게 되었다.




兵 178기    최   종  상


  註: 老兵의 넋두리 일수도....부담없이 뒤를 돌아보니 이젠 말할수 있는 ......
       나의 개인적인 얘기 일뿐, 母軍이나 피밭의 戰場을 같은 時代를 함께 했든
       戰友들에 누를 끼칠까 염려 되지만, 아직도 이국땅을 떠돌고 있을 원혼들에게
       늘 빚진 마음을 지울 수 없기에 글로 남기니 보는 이의 오해가 없으시기를 당부 합니다.

 

 

 

출처 : 해병대 178기 빚진 자 선배님 블로그,  http://blog.daum.net/debtorcjs/158661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