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수작전의 세계 (2)
美, 대상 확인서 공격까지 10분대 2025년 수십 초대 단축 목표
▲ B-52 전략 폭격기 photo 미 공군
북한의 지뢰도발로 인한 남북 간 군사 긴장이 해소된 지 이틀 뒤인 지난 8월 27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주최로 안보학술세미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조상호 국방부 군구조개혁추진관(육군 준장)은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할 징후를 보일 경우 핵사용 승인권자를 선제적으로 제거한다는 이른바 ‘참수(斬首)작전’ 개념을 제시했다. 이 발언은 즉각 파문을 일으켰다.
왜 이 시기에 군 고위 관계자가 참수작전을 언급했느냐는 배경에서부터, 과연 북한을 상대로 한 참수작전이 현실적이냐는 의문을 비롯해, 참수작전이 무엇이냐는 소박한 궁금증에 이르기까지 적지 않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남북 간에 극적 협상이 겨우 이뤄진 마당에 이런 식의 발언은 상대를 자극할 수 있다는 비난까지 나왔다.
조상호 추진관의 당시 발언 내용을 자세히 보면 언론들이 전하는 것처럼 그렇게 큰 무게가 실려 있지는 않다. 당시 발표는 ‘창조국방’이라는 한민구 국방부 장관의 국방정책추진 현황과 추후 추진방향을 보고하는 내용이었다. 창조국방에서 창의적 군사력 운용개념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우위를 추구할 것인가를 설명하면서 제시된 예시 중의 하나가 참수작전이었다. 참수작전 이외에도 심리전, 정보우위, 정밀타격능력이 거론됐다. 조 추진관은 발표하면서 참수작전이라는 단어를 한 번 사용했을 뿐이다. 국방부도 참수작전과 관련해서는 아무런 구체적 내용이 없다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참수작전은 한·미연합 당국의 새로운 작전계획인 ‘작계5015’ 수립 사실까지 더해지면서 의미가 증폭되는 분위기다. 작계5015는 북한의 핵·미사일, 생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WMD)를 공격적으로 제거하는 계획으로 유사시 선제 타격 방안을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의 WMD 능력과 사용의지를 크게 반영하지 않던 과거의 작계들과는 달리 공격적이다. WMD가 사용되기 전에 제거해야 대한민국 국민을 보호할 수 있다는 게 기본 취지다.
참수작전은 섬뜩한 용어에서 보듯 북한은 물론이고 한국도 대놓고 얘기할 수 없는 민감한 사안이다. 한국과 미군의 작전 계획에 이미 포함돼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북한을 압박하고 움직이는 수단이 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이번에 한국은 이례적으로 북한에 대한 강경한 군사대응을 펼쳤다. 북한이 협상에 응한 것도 한국의 이런 대응이 통한 결과라고 본다. 그런데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인 데는 한국의 일관되고 강경한 대응을 뒷받침한 미군의 힘이 있었음을 부인하기 힘들다. 한·미동맹의 요구에 의해 괌으로 전진 배치시킨 B-2 스텔스 폭격기와 B-52 전략폭격기, 토마호크 미사일을 장착한 핵잠수함 등의 전력이 이번에 북한에는 커다란 압박이 되었다. 사실상 이 무기들은 북한 수뇌부를 일거에 제거할 수 있는 참수전력이다.
참수작전(Decapitation Operation)이란 적의 지휘부를 제거하는 작전을 가리킨다. 인류의 전쟁사를 살펴보면 고대 전쟁에서는 적장이나 왕을 사로잡으면 그 전쟁을 이긴 것으로 간주했다. 그래서 그리스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가우가멜라 전투를 이겨놓고도 죽어라 다리우스 3세를 쫓아다니며 페르시아의 왕권을 물려받으려 했다. 역사 속의 책략가인 손자나 마키아벨리도 적국 지휘부만을 제거하는 암살의 유효성을 인정해왔다.
특히 참수작전은 현대전쟁에서 그 가치가 더욱 빛나게 되었다. 현대전에서 참수작전은 핵심 전쟁지도부와 통신시설을 공격하는 것을 가리킨다. 과학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각국 군대는 전투기나 폭격기, 미사일 등의 3차원 수단을 갖게 되어 더욱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적 수뇌부를 타격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전쟁지도부가 마비되면 아무리 대규모의 부대라고 해도 손쉽게 무너진다. 1991년과 2003년의 걸프전이 그 실례이다. 특히 가장 많은 참수작전의 노하우를 가진 것은 우리의 동맹군인 미군이다.
미군은 이미 20세기가 시작할 때부터 다양한 수단을 통해서 자국에 위협이 되는 적 지도부들을 제거해왔다. 미국·필리핀 전쟁(1899~1902)에서는 필리핀 독립군의 핵심 지도자인 에밀리오 아기날도를 체포한 후에 회유함으로써 독립의 의지를 꺾었다. 1943년 미군은 P-38 전투기 18대를 보내어 진주만 공습의 주범이자 태평양 전선의 총사령관인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을 제거했다. 특히 1980년대에는 두 번이나 적의 지휘부만을 노린 군사작전을 실시했다.
1983년 10월 25일 미국은 베트남전 이후 최대의 군사작전을 실시했다. 쿠바의 지원을 받은 공산정권이 유혈쿠데타로 카리브해의 영연방 도서국가인 그레나다를 장악하자, 미국은 자신의 뒷마당에 제2의 쿠바를 허락할 수 없었다. 미군은 작전명 ‘긴급한 분노(Urgent Fury)’ 아래 7000여 명의 병력을 파견하여 그레나다를 침공했다. 레인저 연대가 공항과 주요거점을 장악하고, 해병대가 해안에 교두보를 구축하는 가운데, 델타포스와 네이비실 등의 특수부대는 적 지휘부를 체포했다.
1989년에는 파나마의 독재자인 마누엘 노리에가를 노리는 참수작전인 ‘대의명분(Just Cause)’ 작전을 실시했다. 자신들이 훈련시킨 제대로 된 정규군대인 파나마군을 상대로 미군은 약 2배에 달하는 2만7000여명의 병력을 파견했다. 공항과 활주로를 레인저 연대가 점거하고 그린베레와 실팀은 노리에가의 관저를 급습하고 도주 수단인 요트와 전용기를 파괴했다. 도주를 계속하던 노리에가는 결국 바티칸 대사관으로 피신했다가 열흘 만에 투항하고 말았다.
또 다른 성공 사례로는 2003년의 이라크 침공인 ‘이라크 해방(Iraqi Freedom)’ 작전을 들 수 있다. 미군은 3월 20일 침공을 시작하여 4월 30일까지 이라크 전역을 석권하여 침공을 마무리했다. 침공 과정에서 사담 후세인 일가를 노린 동시다발적인 공격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7월 22일에는 아들인 우다이와 쿠세이를 사살하고, 12월 13일에는 사담 후세인을 체포했다. 미군 특수부대의 손으로 직접 참수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낸 사례이다. 이런 성공을 바탕으로 현재 테러범에 대한 참수작전은 HVT(High Value Target·고가치 표적) 작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미군 정규작전으로 자리 잡았다.
▲ GBU-57A/B 수퍼벙커버스터. 14t의 무게로 200m 지하로 관통하여 적 지휘부를 격파할 수 있다. photo 미 공군
다른 성격의 참수작전도 있다. 2011년 리비아 공습작전인 ‘오디세이의 새벽(Odyssey Dawn)’ 작전이다. 이 작전에서 미국은 지상군을 직접 파견하지 않고 전투기의 공습과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공격만으로 리비아 반군을 지원했다. 목표는 카다피 정권의 제거, 즉 참수작전이었다. 미국이 주도하여 공격의 장을 연 이후 NATO(북대서양기구)가 꾸준히 반군의 항공지원임무를 수행해 왔으며, 결국 2011년 8월 23일 무아마르 알 카다피는 반군의 손에 잡혀 무참히 사살되었다. 참수작전이 스스로 일어나도록 도운 사례이다.
참수작전을 수행하려면 몇 가지 사전 조건이 필요하다. ISTAR(정보·감시·조준·정찰)능력과 타격능력이다. 우선 적의 수뇌부를 치려면 먼저 수뇌부가 어디 있는지 알아야 한다. 즉 정보력이 관건이다. 특히 참수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누가 적국의 전략적 중심인지 확고한 정보가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북한이 핵미사일을 쏠 수 없도록 김정은을 제거한다고 할 때, 과연 김정은 하나만 제거하면 끝나는 것인지 혹은 김정은 다음의 권력승계서열 몇 위까지 제거해야 할 것인지 판단해야 한다.
이런 정보력은 하루아침에 생겨나지 않는다. 꾸준히 현지 첩보원을 관리하는 HUMINT(인간정보) 네트워크를 십수년에 걸쳐 양성해야 한다. 각종 첨단 정찰센서시스템도 개발하든지 수입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SIGINT(신호정보)와 IMINT(영상정보)를 갖춰야 한다. 물론 이렇게 수집된 정보를 재빨리 분석해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건 더욱 중요하다.
이렇게 목표가 확인되면 이제 때리는 능력이 중요하다. 핵무기를 사용해서 선제공격할 수 있다면 모를까, 특정한 인물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매우 정밀한 타격능력이 필요하다. 달리는 차 안에 있거나 건물에 있는 경우는 물론이고 지하 벙커에 숨어 있는 경우에도 제거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JDAM 같은 스마트폭탄은 물론이고 벙커버스터처럼 지하의 목표도 타격할 수 있는 무기를 운용해야 한다. F-16이나 F-15 같은 전투기는 물론이고 F-22, F-35 등의 스텔스 전투기는 반드시 갖춰야 할 자산이 된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타이밍이다. 참수작전의 대상이 언제나 노출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최근 가장 많이 활용되는 것이 무인기이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이나 파키스탄, 이라크, 시리아에서 MQ-1 프레데터나 MQ-9 리퍼와 같은 무인기를 항상 띄워두면서 실시간으로 정보수집과 공격을 동시에 수행한다. 이렇게 상시적인 감시가 가능한 상황이라면 참수 대상을 확인하고 공격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십 분대에 불과하다. 미군은 2025년에는 수십 초 이내로 시간을 단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북한은 이미 2005년부터 6자회담 참가를 보이콧하면서 핵보유국임을 선언해왔다. 김정은이 정권을 잡은 이후 3차 핵실험까지 마치면서 미사일에 핵탄두를 탑재할 능력도 갖췄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북한은 줄곧 ‘제2의 조선전쟁’ ‘핵 선제타격’ ‘핵찜질’ 등을 운운하면서 대남협박을 해오고 있다. 핵을 가지고 덤비는 상대에게 똑같이 핵으로 대항할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북한과 ‘공포의 균형’을 이루는 방법은 제한되어 있다. 그래서 북한에 대해 우위를 갖는 대북심리전력, 정밀타격전력, 그리고 참수전력이 중요해진다. 그중에서도 북한 정권 중심부에 가장 큰 영향을 가할 수 있는 것이 참수전력이다.
대북심리전의 효과는 이번 확성기 위기를 통하여 온 국민이 실감했다. 우리에겐 확성기뿐만 아니라 전광판도 있고, 북한 내륙까지 날려 보낼 수 있는 전단도 있다. 정밀타격능력도 꾸준히 증강 중이다. 정확하게 목표를 타격하는 레이저유도폭탄이나 JDA, KGGB 같은 GPS 유도폭탄은 이제는 보편적인 무기로 자리 잡았다. 동북아 최고의 전투기라는 F-15K는 도입을 완료했고, 우리 군 최초의 스텔스 전투기인 F-35도 2018년부터 40대가 도입될 전망이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참수작전능력이다.
북한에 대한 참수작전이 효과가 있으려면, 앞에서 본 바와 같이 북한 내부를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단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번 확성기 위기에서 본 것처럼 우리 군은 정보수집을 대부분 한·미연합 정찰자산에 의존한다. 즉 미군에 심하게 기대고 있다는 말이다. 직접 보지를 못하니 판단도 늦을 수밖에 없다. 귀중한 타이밍을 잃게 된다는 말이다.
여기에 더하여 북한의 수뇌부가 몸을 사릴 정도로 무서워할 만한 ‘커다란 한 방’이 아직 한국엔 없다. 북한이 두려워한다는 미국의 전략자산인 B-2 스텔스 폭격기나 B-52 전략폭격기는 14톤의 무게로 지하 200m까지 공격할 수 있는 GBU-57A/B ‘수퍼벙커버스터’ 폭탄을 운용할 수 있다. 3시간이면 평양을 때릴 수 있는 괌의 앤더슨 공군기지에 이런 무기들을 배치해 놓는다면 북한으로서는 두려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실 현재 국방부가 계획하고 있는 국방력 건설 과정 중에서 참수전력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은 무궁무진하다. 특히 북한의 핵위협에 대한 맞춤형 억제전략으로 제시되고 있는 킬체인은 근본적으로 참수전력을 전제하고 있다. 킬체인이란 북한이 이동식 미사일 발사대나 장사정포·방사포 등으로 우리에게 피해를 가하기 직전에 이들 위협을 제거하는 작전을 가리킨다. 즉 미사일·포격의 도발원점을 타격하는 것이 킬체인이다. 이 킬체인의 대상을 도발원점 대신 북한 수뇌부로 치환하면 곧바로 참수작전이 된다.
[주간조선] 2015.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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