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정글전 실록 - 스콜(Squall) 21 - 한심한 사람들
언제인가 전우들끼리 "너는 먹기 위해 사는 거냐, 살기 위해 먹는 거냐?" 하며 이야기를 주고받은 적이 있었다.
요즘 아니 이곳 월남에 도착하던 그 순간부터 '나' 라는 인간은 살기 위해 먹는 인간이 되어 버린 것 같았다.
고국에서는 그런 대로 갖가지 종류의 음식들을 골고루 먹어 보았지만 이곳 열대 전선의 음식은 깡통음식인 C-레이션이 주식이었다.
사람마다 식성이 모두 다르겠지만 A, B, C-레이션으로 나누어져 있는 레이션 중 우리 같은 전투병은 A, B-레이션은 먹어볼 수 없었고, 일년 내내 C-레이션만 먹을 수밖에 없었다.
싱싱한 고기와 야체가 들어있는 A, B-레이션은 전투지역을 헤매고 다녀야 하는 우리들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었다. 부피와 신선도도 문제였지만 기동에 불편하기 때문이었다. 배낭에 짊어지고 다니면서 끓여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러다 보니 통조림으로 된 깡통을 따서 간단하게 홀짝 먹어버릴 수 잇는 C-레이션이 주 식량이 되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
나마 전투를 마치고 중대진지에서 방어를 할 때는 기름기 없는 이국쌀(알랑미)이나마 밥을 지어 고국에서 보내준 K-레이션(김치, 생선 등으로 된 식품, 2개월 전부터 조금씩 전투지역에 보급되었음)으로 식사를 할 수 있어 식생활이 덜 불편했다.
그렇지만 전투지역에서는 C-레이션만으로 식사해결을 해야 하니 이만저만한 고통이 아니었다.
원래 육식을 좋아하지 않는 식성인데 C-레이션의 깡통에는 닭고기, 칠면조고기, 말고기, 돼지고기, 쇠고기 등 고기만 잔뜩 들어 있었으며 거기에 과자와 쨈, 파인애플 등도 조금씩 들어 있었다.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연히 고기류는 입에 대는 둥 마는 둥 하고 겨우 파인애플만 먹으니 고통이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전투할 때마다 콩이나 호박 등을 따서 배낭에 넣어 다니며 틈이 나는 대로 고체연료를 사용해 콩과 호박을 끓여 먹었다.
어쩔 수 없이 살기 위해 먹는 경우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야전열매(파인애플, 바나나 등)나 곡식(콩, 감자, 고구마, 호박, 고추 등)을 먹으며 전투를 했던 추라이에서의 생활을 잊어버릴 수 없었다.
밀가루로 튀김을 만들어 점심을 대신했다.
재보급 헬리콥터 편으로 밀가루가 보급되었다. 고국에 있을 때 어머니께서 밀가루로 수제비를 만드는 것을 몇 번 보았던 기억이 나 보급되어 온 밀가루로 솜씨 없는 재주였지만 튀김과 수제비국을 만들어 고국 생각을 하며 대원들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어떤 병사는 식사 때가 되면 C-레이션 1인 1식 분량을 다 먹고도 모자라 더 먹는 형편인데 어찌된 영문인지 내 식성에는 C-레이션이 전혀 맞지 않았다.
중대장에게 보고하고 호이안 강변에 위치한 시장으로 갔다. 한국의 여느 시장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언제 치열한 전투가 있었냐는 듯 시장은 상인들과 물건을 사러 온 주민들로 붐비고 있었으며 고기, 채소, 피복, 과일 등이 질서 없이 나열되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월남 고추와 호박을 샀다. 고추는 10개에 1$를 받고 있었다. 고추 50개와 호박을 들고 시장을 벗어나려고 하는데 30m 정도 떨어진 지점에서 폭음이 나며 건물에서 사람들이 뛰어 나왔다. 가보니 극장이었다. V.C가 극장안에다 수류탄을 던진 모양이었다. 부상자들이 업혀 나오고 죽은 사람도 있는 것 같았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영화 상영을 하며 또 구경온 사람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인가. 엇그제까지만 해도 이곳 일대에서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죽고 부상당했는데, 정말 한심스러운 인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장을 나오는데 방금까지 떠들어대던 상인들이 널어 놓았던 물건들을 봇짐에 싸기 시작했고, 북적대던 주민들도 바쁜 걸음으로 제각기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V.C의 재공격이 시작되나 하는 생각이 들어 주민 한사람을 붙잡고 저 사람들이 지금 어디 가느냐고 물었더니 잠자러 간다고 했다.
월남에는 오래 전부터 가장 더운 시간인 오후 1시부터 3시 까지는 모든 주민들이 낮잠을 즐기는 버릇이 있었다.
이때가 되면 모든 상점은 물론 관청에서도 열 일 제쳐놓고 잠을 자는데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이들은 엊그저께에 있었던 피비린내 나는 치열한 전투도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당장 오늘 저녁에 또 어떠한 상황이 닥칠지도 모르는 전쟁의 와중 속에서도 잠을 자러 가다니, 밤잠을 자지 않고 싸워도 평화가 찾아오기 힘들 것인데 습관과 버릇 탓으로 잠을 자다니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민족이었다.
V.C와 월맹군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주위에서 기습의 기회만을 노리고 있을 텐데... 시장을 지나 시가지로 나오니 분주하게 지나다니던 이곳 주민들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어 버렸고 길에는 개들만이 이리저리 뛰어 다니고 있어 흡사 이 낯선 도시에 혼자 남겨진 것처럼 느껴졌다. 상점이란 상점은 모조리 문을 닫아 버렸고, 정말 조용하기 이를 데 없었다.
중대 숙영지에 돌아오니 또 다른 모습이 나를 멍하게 만들었다. 중대원들이 야단법석이었다. 고국에서 온 종군기자가 뉴스에 나갈 장면을 촬영한다는 것이었다.
시나리오는 시가지의 폐허가 된 집과 숲속을 배경으로 V.C와 교전이 붙고 난 뒤 V.C를 생포하는 장면이었다.
중대는 전투준비를 한 다음 허물어진 집터에서 사격을 하고 한편에서는 연기를 묘사하기 위해 연막을 터뜨렸다. 사격하고 있는 해병들 주위로 연막이 자욱하게 번졌다.
바나나 나무 밑에는 얼굴에 흙투성이가 된 한 해병이 L.M.G 기관총을 고정시켜 놓고 정신없이 쏘아대고 있었다. 한심한 짓이었다.
저 기자는 왜 엉터리 전투장면을 찍고 있는 것일까? 저것을 찍어 가지고 고국에 가서 해병대의 진짜 전투장면 인양 뉴스 시간에 방영을 하며 청룡부대는 이렇게 싸우고 있으며 이것은 어떤 작전의 장면인데 종군기자가 위험을 무릅쓰고 촬영한 것이라고 선전하겠지? 이곳에서 엉터리로 찍지 말고 우리 중대와 같이 행동하면서 실제상황 그대로 찍으면 얼마나 값진 것이 될 것인가.
추라이의 바탄강 전투시에 있었던 일이다. 중대가 바탄강 제1목표, 제2목표를 탈환하고 호지맹의 고향인 바탄강 제3목표 지점을 향해 공격하고 있을 때 헬리콥터 편으로 종군기자가 왔다. 청룡부대의 전투장면을 직접 생생하게 촬영하여 고국의 국민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왔다며 의기양양해 했다.
종군기자가 도착하고 몇 분 뒤, 월맹정규군과 치열한 대공방전이 시작되었다. 정규군의 61m/m박격포탄이 날아와 터지고 수류탄이 터지고 소화기와 자동화기가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그때 그 종군기자는 처음의 당당한 기세는 찾아볼 길이 없었고 엄폐된 호 속에 들어가 고개를 처박은 채 줄곧 고함을 질러댔다.
그리고는 중대장(문수장 대위)을 부르며 빨리 헬리콥터를 요청해 달라고 애원했다. 결국 그 기자는 진짜 전투장면은 한 컷도 찍어보지 못한 채 중대의 부상병과 함께 헬리콥터 편으로 떠났다.
어쨌든 그 기자는 그래도 전투지역에까지 와서 촬영을 하겠다고 했으니 그나마도 용감한 기자였다.
아무리 실제의 전투장면을 찍고 싶다고 하지만 잘못하면 자신의 생명을 위협받아야 하니 그 기자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저녁 식사시간이 되었다. 시장에서 사 온 호박과 대대에서 보급된 된장으로 호박찌게를 만들고 기름기 없는 이국 쌀밥이지만 K-레이션에 들어있는 고추장에 된장을 섞어 고추를 찍어 먹으며 오랜만에 맛있는 식사를 했다.
신문과 라디오는 월맹 정규군이 월남 전지역 시가지를 대대적으로 동시에 공격한, 구정 공세 기사로 메워졌다.
2개 사단 규모의 병력이 사이공, 다낭, 후예, 호이안 등의 도심지를 집어삼킬 듯이 공격을 했으며 이 전투로 월맹군이나 우군 쌍방간의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 보도의 요지였다.
이번에 구정 공세로 인한 전투에서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숨졌으며 그 생명의 대가로 과연 무엇이 남았는가? 마음이 무척 착잡하다.
상급 부대로부터 새로운 작전 지시를 받고 중대는 아침 햇살을 받으며 기동했다. 26중대가 보호하고 있는 피난민 200여명을 인수받아 호이안 비행장까지 데려와서 안전하게 인계하라는 명령이었다.
숲을 뚫고 개활지를 지나 중대는 26중대가 위치한 지점으로 계속 진출했다. 지도상에 나타나 있는 촌락이 실지형에서는 공동묘지였는가 하면 어떤 곳은 촌락으로 표시된 지점이 개활지로 변해져 있어 수분간 기동이 중지되었다. 목표 지점을 찾기 위해선 많은 시간이 걸렸다.
작열하는 태양은 쉴 사이 없이 내려 쬐고 작업복은 오늘도 예외 없이 땀으로 흠뻑 젖어 버렸다. 추라이에 있던 많고 많은 산들이 이곳에서는 두 눈을 씻고 봐도 찾을 길 없었고 보이는 것은 개활지와 숲, 모래밭뿐이었다. 지도와 실제 지형은 너무 차이가 났다.
26중대와 우리 중대는 무전 교신과 쏘아 올린 신호탄으로 서로의 위치를 확인하면서 가까스로 만날 수 있었다. 26중대의 보호를 받고 있는 피난민들은 대부분 어린아이들과 늙은이와 여자들이었다. 전쟁에 시달려 그런지 아니면 굶주림 때문인지 보기 흉하게 여윈 참담한 모습이었다.
200 여명의 피난민을 인수받아 보호하면서 호이안 비행장까지 갔다.
26중대로부터 200여 명의 피난민을 완전 인수받고 난 우리는 피난민 사이사이에 위치한 채 호이안 비행장으로 진출했다. 이동을 하면서 피난민들에게 배낭에 들어 있던 C-레이션을 나누어주었다.
어린아이들과 노인네들은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들처럼 무척 느리게 걸었으며 젊은 사람들은 전투 지역으로 떠나고 집은 불타 버렸으며, V.C들의 기습으로 끼니마져 거른 이들 피난민들의 모습은 전쟁의 참혹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참혹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었다.
속도가 너무 느렸으므로 걸음을 걷지 못하는 노인네들은 업고서 기동하기로 했다.
이따금 피난민들의 대열에서 빠져 걷지 못하겠다고 손을 흔드는 노인들을 버려두고 갈 수는 없었다. 우린 교대로 이들을 업고 부축하면서 호이안 비행장에 도착했다.
"감온옹, 감온옹." 하면서 손을 흔드는 피난민들을 월남인 관리자에게 인계하고 숙영지로 돌아왔다.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러야 저들은 옛날과 같이 평화스러운 날들을 맞아 살아갈 수 있을까. 하루속히 월남에 평화가 오기를 그리고 신의 가호가 있기를 진심으로 빌었다.
출처 : 청룡부대 1대대 3중대 작전하사 권동일 선배님의 월남전 참전수기 "스콜(Squall)"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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